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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저주의 공녀님-124화 (12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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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다 볼 겁니다. 배도스 공작은 꽤 권력이 있던 귀족 아니었습니까?”

발레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포크를 들고 부지런히 음식을 먹었다. 음식이라도 먹어야 그나마 앞으로 어떻게 할지 부지런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발레린은 정찬실을 나가자마자 루네스에게 말했다.

“루네스, 요즘 배도스 공작은 어때?”

“왕궁에 잘 들어오지 않는대요. 그분을 따르는 귀족들도 왕궁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심각한 거 아니야? 그건 노골적으로 왕자님을 무시하는 거잖아.”

“배도스 공작의 재판이 곧 열리잖아요. 그분들은 이제 자기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닫는 거겠죠.”

하지만 발레린은 그 말을 듣고서도 머릿속이 명쾌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발레린이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루네스가 호기심을 가지며 물었다.

“왜요?”

“배도스 공작 옆에 있는 사람들은 배도스 공작처럼 권력만 탐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잖아. 그 사람들이 지금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가만히 있어서.”

“하긴 그건 그래요. 안 그래도 재판 결과가 배도스 공작이 몰락할 만큼 안 좋게 나올 거라고 예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발레린은 『천년 왕국사』에서 본 폭풍 전야가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꼭 이렇게 조용하면 무슨 일이 생겼다. 거기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천년 왕국사』에서는 항상 당사자가 죽곤 했다.

발레린은 아무래도 불안해서 루네스에게 말했다.

“루네스, 나는 왕궁을 잠시 둘러볼게.”

“왕궁이요?”

“응, 혹시라도 이상한 게 있는지 보려고.”

이전에도 독을 발견하거나 제르딘에 대한 뒷말을 들었으니 혹시나 모를 일이었다.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루네스가 눈을 빛내며 말하자 발레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너는 우선 왕궁에 있어.”

“그래도 왕자비님 혼자 가시기에는…….”

“어차피 왕궁이잖아. 그리고 날 죽일 사람도 없을 거야.”

발레린은 빙긋 웃었다. 누군가 화살을 쏘지 않는 이상 발레린은 죽을 위험이 없었다. 어차피 독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있었고 누군가 다가오더라도 입김을 불어서 위험을 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긴 요즘 왕자님께서 왕실 친위대를 더욱 보강하셨어요. 그래서 이상한 사람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럼 루네스, 너는 왕궁 안을 살펴봐. 그리고 왕자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내게 말해 주고.”

루네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린은 빙긋 웃고는 그로프와 함께 왕궁을 나섰다. 안 그래도 음식을 먹었으니 운동을 하긴 해야 했다.

발레린은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발레린의 머릿속에는 제르딘의 안전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제르딘이 무사히 배도스 공작의 재판을 마친 뒤 생각하는 게 맞는 듯했다.

우선은 제르딘이, 배도스 공작이 몰락하는 것을 온전히 보기를 바랐다. 제르딘이 무척이나 열심히 증거를 모아 왔던 것을 봐서 더 그랬다.

발레린은 우선 왕궁 앞 정원을 살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하인도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고 정원사도 가끔 살피고 있을 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발레린은 고개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하지만 코를 자극하는 특유의 독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발레린이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그로프가 말했다.

“주인님, 이 정원 주변에는 딱히 새로운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발레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원 뒤쪽을 가 보자.”

“그곳도 왕자가 이미 관리를 하는 중인데 특별한 게 있을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마력탄이라도 심어 놓았을지 누가 알아?”

“마력탄이요?”

“『천년 왕국사』에서 봤는데 왕궁에 그런 걸 심어 놓은 사람이 몇 명 있었대. 특히 지금 상황처럼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그냥 다 죽자는 식으로 그런 일을 한 거지.”

배도스 공작 상황이 그랬다. 이미 배도스 공작이 몰락할 것처럼 재판 결과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고 모두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발레린이 생각하기에도 제르딘이 어떻게 증거를 모았는지 보여서 배도스 공작에 대한 재판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까 지금 배도스 공작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리라는 생각을 아예 배제할 수 없었다.

발레린은 역사책에서 봐 온 틀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왕궁 뒤쪽 정원으로 걸어갔다.

왕궁 뒤쪽은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정말 왕자님이 이곳까지 관리하라고 명령했나 봐.”

군데군데 기다랗게 자란 풀은 아예 보이지 않았고 정원수도 매일 관리하는 것처럼 싱싱하고 길이가 맞았다. 발레린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길을 따라 걸었다.

점점 걸어갈수록 햇빛은 잘 들지 않고 어두워졌다. 서늘한 기운이 물씬 풍겼지만 발레린은 개의치 않고 계속 걸었다.

그때 그로프가 발레린에게 속삭였다.

“주인님, 그런데 이전보다 분위기가 많이 서늘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게. 꼭 마력탄이 있는 것처럼.”

그 말을 하자마자 발레린은 그로프를 쳐다봤다. 그로프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인님, 설마 여기에 마력탄이 있는 것 아닙니까?”

발레린은 곧바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동안 발레린이 읽었던 책에 따르면 마력탄은 마력을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데 주변에 있는 열기를 다 빨아들여서 주변을 은근히 서늘하게 바꾼다고 했다. 그 성질 때문에 마법사만 있다면 마력탄을 발견하기도 쉬워서 회수율이 꽤 높은 편이었다.

“배도스 공작은 정말 틀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네.”

새삼 발레린은 역사책에서 본 사람의 특성이 다 같은 건가 싶었다. 발레린은 주변을 둘러보며 부지런히 찾았다. 점점 서늘해지는 곳으로 가자 마침내 검은 마력탄이 보였다.

발레린은 서두르지 않고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마력탄이 강력한 독에 흰 연기를 내며 녹았다. 발레린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주변을 걸었다. 그렇게 서늘한 곳을 찾아다닌 결과 마력탄 2개를 더 발견했다. 이후에는 서늘하지 않았다.

발레린은 기분 좋게 돌아가려고 나서던 참이었다.

그로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런데 주인님,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로프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자 누군가 서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발레린은 천천히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점점 다가갈수록 누군지 더 명확해졌다.

지나치게 화려한 옷에 고개를 빳빳이 든 모습은 분명 배도스 공작이었다. 발레린은 문득 멈춰 서서 배도스 공작을 쳐다봤다.

그는 혼자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고 그저 앞에 있는 정원수를 보고 있었다.

“배도스 공작이 여긴 웬일이지.”

발레린이 경계하며 중얼거리자 그로프가 속삭였다.

“마력탄이 잘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 아닙니까?”

“원래 배도스 공작은 직접 움직이지 않았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제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저렇게 온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발레린은 아무리 생각해도 배도스 공작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 의아했다. 그는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무슨 꿍꿍이일까.’

심지어 루네스의 말을 들어 보면 배도스 공작은 요즘 궁에도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묘하게 등장한 배도스 공작에 발레린은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처럼 보이긴 했다. 여태껏 발레린은 배도스 공작과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그가 제르딘에게 가장 악질이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이왕 배도스 공작이 나타난 김에, 발레린은 그동안 제르딘을 위해 참았던 질리게 하기 수법을 생각했다. 배도스 공작이 여태껏 제르딘에게 한 행동만 봐도 이렇게 가만히 둘 순 없었다.

거기다 지금은 배도스 공작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떠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여태껏 제르딘을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다면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내일은 배도스 공작의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고 진실은 밝혀질 따름이었다.

발레린은 기분 좋게 걸음을 서둘렀다.

“배도스 공작님!”

배도스 공작은 갑자기 들린 소리에 거슬리는지 뒤를 돌았다. 그의 뱀 같은 눈매가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차분히 발레린을 쳐다봤다.

발레린은 배도스 공작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여기서 뵙네요!”

“어쩐 일이십니까?”

“잠깐 산책을 하고 있었어요. 원래 저는 음식을 먹은 뒤에 운동하거든요. 그나저나 공작님은 여기에 어쩐 일이세요?”

“내일 제 재판이 열린다는 말은 듣지 않으셨습니까?”

“네, 들었어요.”

발레린이 미소를 짓자 배도스 공작은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내일 저에 관한 아주 억울하고 지독한 재판이 열리니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원래 여기 자주 오시나요?”

“자주 오지는 않지만 이곳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배도스 공작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발레린은 호기심이 들어 재빨리 물었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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