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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저주의 공녀님-111화 (111/130)

111화

눈이 마주치자 루네스가 의아한 듯 물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왕자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일정이요?”

“왕자님이 너무 바쁘다고 하셨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서.”

사실상 제르딘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만약 소문대로라면 독살 위험은 없겠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제르딘을 죽일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헬릭스까지 직접 이야기하러 온 것을 보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전에도 헬릭스가 미리 말한 내용 그대로 일이 진행된 적이 있으니까.

루네스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친절히 말했다.

“제가 보좌관님께 물어보고 알려 드릴게요.”

발레린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크를 들었다. 그로프는 귀뚜라미를 잡아먹고 있었다. 빠르게 먹고 있어서 혀를 이용해서 먹는 게 아니라 입으로 잡아먹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발레린은 그로프를 잠시 보다가 앞에 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다 먹어 갈 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들어와.”

루네스는 밝게 미소를 짓고는 발레린에게 다가왔다.

“제가 보좌관님께 알아 왔는데요. 요즘 왕자님께서는 왕정 회의를 위해서 대회의실에 계시거나 집무실에 계신다고 들었어요.”

“그럼 왕자님께선 두 곳밖에 다니지 않으시는 거지?”

“네, 요즘은 특히 왕자비님 독살 미수 사건에 대해 알아보시느라 가끔 감옥에도 내려가신다고 들었어요.”

“감옥?”

“얼마 전 루티스 백작까지 감옥에 갇혀서 말이 많거든요.”

“루티스 백작까지 감옥에 갇혔다고?”

루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린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루티스 백작은 배도스 공작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잖아.”

“왕자님이 공격적으로 나오시고 여기저기 증거도 찾으니 배도스 공작 쪽에서 꼬리를 잘랐다는 말이 많아요.”

“그럼 루티스 백작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워낙 루티스 백작이 배도스 공작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직 확증될 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발레린은 새로 안 사실에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배도스 공작이 감히 왕자님을 없애겠다고 했구나.’

이제야 발레린은 배도스 공작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를 이해했다. 발레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루네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왕자님은 배도스 공작과 루티스 백작 사이의 일을 모두 알고 있겠지?”

“네, 그런데 루티스 백작은 아무리 조사관이 조사해도 입을 열지 않았대요. 그리고 왕자님께서도 직접 찾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왕자님께서도?”

루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루티스 백작은 배도스 공작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대요. 그래서 왕자님이 답답해서 내일 곧바로 재판 결과가 나오게 하고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말도 있고요.”

“내일 재판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일에 발레린이 놀라자 루네스가 조심스레 말했다.

“왕자님이 이번 일은 특히 빨리 해치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왜?”

“궁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거든요. 그것도 배도스 공작이 퍼뜨린 소문이라는 말도 있어서 그 일 때문에 그러신 것 같아요.”

발레린이 흥미롭게 쳐다보자 루네스가 눈치를 보았다.

“저도 최근에 안 소문인데 말씀해 드릴까요?”

발레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네스, 전에도 말했잖아. 안 좋은 소문이라도 알려 달라고.”

루네스는 잠시 뜸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왕자비님, 정말 소문일 뿐이니까 정확한 건 아닐 수 있어요. 왕자님이 이름 모를 왕국의 청혼서를 받아들이고 왕자비님과의 결혼 서약서를 대신전에 제출하는 걸 일부러 미룬다는 소문이에요.”

발레린이 가만히 있자 루네스가 황급히 덧붙였다.

“물론 정말 뜬금없는 소문이지만 그래도…….”

“나도 들었어. 심지어 나는 대신관에게 직접 들었는걸.”

발레린이 빙긋 웃자 루네스는 잠시 멍한 얼굴이었다. 그때 그로프가 발레린에게 속삭였다.

“이번 소문은 주인님 측근에게는 꽤 늦게 도는 소문인 것 같습니다.”

순간 발레린은 제르딘이 생각났다. 일부러 그런 소문을 듣는 것을 막지 않았나 할 정도로 이 소문은 다른 곳에는 많이 퍼진 소문이었다. 대신관까지 알 정도였으니까.

“왕자비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게 말씀드렸네요.”

“아니야.”

발레린은 대수롭지 않게 미소를 짓고는 지금 가장 문제인 루티스 백작에 대해 생각했다. 내일 당장 재판이 열린다면 배도스 공작과의 일은 모두 밝히지 않고 죗값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루티스 백작은 왕자를 모욕했으면서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이 있었나? 그 사실에 발레린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가 만나 봐야겠네.”

루네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굴요?”

“루티스 백작 말이야.”

“왕자비님이 직접요?”

발레린은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발레린은 할 일도 없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습득한 대화 기술을 생각해 보았다.

그나마 발레린이 여러 사람과 싸우지 않고 대화할 수 있었던 건 탑에서 읽었던 『웃으면서 남에게 침 뱉는 법』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옛날 책이긴 했지만 지금도 발레린은 그 책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를 했고 여러 귀족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다.

그때 루네스가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왕자님도 루티스 백작님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가능할까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잖아.”

그러다 문득 발레린은 이렇게 나서는 것이 제르딘에게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 나서지 않으면 루티스 백작은 그동안 저지른 죗값을 받지 못하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발레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루티스 백작은 무슨 혐의로 감옥에 갇힌 거야?”

“배도스 공작님과 왕자님을 엮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다고요.”

“증거는 있는 거야?”

“겔렌트 남작이 증거를 모두 제출했다고 했어요. 조만간 루티스 백작은 재산과 영지를 모두 잃고 쫓겨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겔렌트 남작이 증거를 모두 제출했다고?”

“네.”

발레린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루티스 백작과 겔렌트 남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마침 그로프도 이상한지 발레린을 쳐다봤다.

“주인님, 아무래도 배도스 공작 쪽에서 서로 세력 싸움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발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겔렌트 남작이 배신했나 봐.”

그때 루네스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왕자비님, 정말 감옥에 가시게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그리고 루티스 백작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

“네, 겔렌트 남작이 증거까지 다 제출하니까 자신 혼자 한 증거는 모두 명백하다고 하지만 배도스 공작에 관련된 일은 하나도 입을 열지 않는대요.”

“그런데 원래 배도스 공작과 루티스 백작은 정말 친했잖아.”

“그렇죠. 전에 우연히 들었는데 두 분은 귀속 관계라고 했어요.”

“귀속 관계?”

발레린은 문득 『천년 왕국사』에서 본 귀속 관계가 생각났다. 엘른 남작과 오링거 백작의 유명한 일화였는데 그들은 서로 귀속 관계를 맺고 도와주는 사이였다.

엘른 남작이 술주정하면서 왕에게 욕을 했다는 혐의로 재산을 빼앗길 처지에 처하자 귀속 관계를 맺은 사이였던 오링거 백작이 그 재산을 그대로 받은 뒤에 다시 엘른 남작에게 전한 일이 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이런 제도를 통해서 다시 재산을 갖는 것을 보면서 『천년 왕국사』에서는 귀속 관계라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적었다. 거기다 요즘은 돈 세탁으로도 유명하다며 귀속 관계 제도에 대해서 많이 비판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귀속 관계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제도는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발레린은 책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루네스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그런데 왕자비님, 감옥에 가셔 봤자 소용없을 거예요.”

“왜?”

“당장 내일이면 루티스 백작의 재판 결과가 나오거든요. 이미 재판 결과가 어떨지 뻔하긴 하지만.”

“그럼 말할 날이 오늘밖에 남지 않았네!”

“그렇긴 하지만…….”

“루티스 백작이 어디 갇혀 있는지 안내해 줘.”

“하지만 왕자비님, 감옥은 무척이나 더럽고 불쾌해서 왕자비님께서 가실 환경이 아닐 거예요. 차라리…….”

“어차피 그건 책에서 많이 봐서 알아. 오히려 어떻게 존재하는지 실제로 보고 싶기도 해.”

발레린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루네스는 당황한 듯 쳐다봤다.

“정말 괜찮으세요?”

발레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 위에 앉은 그로프도 개꿀개꿀 울었다. 루네스는 할 수 없다는 듯 복도로 안내했다.

감옥은 제르딘의 왕궁에서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대체로 궁에서 조사할 사안이 있으면 이곳에서 조사를 한 뒤, 재판 결과가 나오면 수도 외곽의 감옥으로 보내졌다.

발레린은 부지런히 루네스를 따라갔다. 감옥은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발레린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곧 폐쇄적인 건물이 나왔다. 문지기는 발레린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켜섰다. 특이하게 감옥은 지하로 바로 통했는데 감옥의 계단은 왕궁과 다르게 무척이나 습하고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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