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캑캑!”
개구리가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발레린을 똑바로 쳐다본 것이다. 발레린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어머니 말씀이 맞았어.”
“…….”
“내 입김이 닿아도 죽지 않고 오히려 살다니.”
독 개구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산 겁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에 발레린은 놀라며 뒤로 주저앉았다. 그 탓에 독 개구리가 땅에 떨어졌고 그녀의 엉덩이에는 진흙이 묻었다. 하지만 발레린은 개의치 않았다.
“개구리가 말을 해?”
“제 말이 들립니까?”
“그래, 잘 들려.”
그러자 빨간 개구리는 펄쩍 뛰어서 발레린에게 다가왔다. 발레린은 놀라서 헐레벌떡 일어났다. 그때 독 개구리가 고개를 들어 빠르게 말했다.
“제 이름은 그로프입니다. 여기를 얼른 벗어나고 싶은데 혹시 저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실 수 있습니까?”
“다른 곳?”
“네, 마지막 기억이 개구리들에게…….”
그때 개굴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빨간 개구리들이 점점 다가왔다. 꽤나 많은 숫자에 발레린은 서둘러 그로프를 들고 달렸다. 다행히 개구리들은 더는 오지 않았다.
우선 발레린은 그로프를 방으로 데려왔다. 그로프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이곳에서 제가 살아도 됩니까? 절대로 귀찮게 굴지 않겠습니다.”
안 그래도 발레린은 외로웠던 참이었다. 이제 어머니도 없으니 말동무조차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말하는 독 개구리라도 발레린은 괜찮았다.
“좋아, 여기서 살아도 돼. 그리고 내 이름은 발레린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로프는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발레린은 그로프를 한참 지켜보다가 문득 침대 옆에 있는 협탁을 보았다. 협탁 위 기다란 유리병에는 노란 튤립 하나가 꽂혀 있었다.
발레린은 유리병을 들어서 그로프에게 보여 주었다.
“인사해. 여긴 내 한숨에도 안 죽는 이상한 노란 튤립이야.”
“개꿀개꿀.”
생각지도 못한 울음소리에 발레린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무슨 울음소리가 그래?”
“태어날 때부터 이랬습니다. 그래서 여러 개구리들에게 무시를 당했죠.”
“아, 미안해.”
“아닙니다. 그래도 전 발레린 님 덕분에 살아났는걸요.”
“그나마 다행이야. 내 능력이 너에게도 통하고 말이야.”
그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디디카 호수 개구리는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전 이번 생에 번식하는 일은 글렀으니 그저 주인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인님이라는 말에 발레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다 호수에 디디카라고 이름이 붙은 줄도 몰랐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독 개구리끼리 호수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다.
발레린이 그저 보고만 있자 그로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주인님도 제 울음소리가 이상합니까?”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로프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발레린을 봤다. 발레린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인간 세계에서는 개꿀이 얼마나 좋은 말인 줄 아니? 개가 가져다준 꿀이라는 뜻으로 거저 얻은 행운을 말해.”
“개꿀개꿀.”
그로프의 소리는 조금 낮았지만 그래도 발레린은 활짝 웃어 주었다. 어쨌든 그로프는 발레린이 살리긴 했지만 조금은 괴상한 개구리였다. 마치 자신과 비슷한.
그리고 며칠 뒤, 발레린은 곧바로 탑에 갇혔다. 제 처지와 비슷한 탑이었다. 저택에서 버린 책이나 가구 등이 잔뜩 쌓인 탑이었는데, 저택과는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발레린의 아버지는 검은 방독면을 쓴 채 말했다.
“이건 모두 너를 위한 거다. 주변 영지인도 너를 무서워하고 일가친척은 말할 것도 없어. 어쨌든 네 독은 주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발레린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의 독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발레린의 어머니는 발레린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발레린 곁에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거기다 책에서 본 독 중독 증세에 그녀의 어머니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얼굴이 퍼렇지도 않았고 손도 떨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발레린을 볼 때마다 웃으며 반겨 주었다.
발레린은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관을 보고 웃은 해인저 모녀를 의심했다. 해인저 부인은 남편이 죽고 없는 사람으로 예전에 아버지와 친했던 친구라고 했다.
그들은 아버지를 보러 올 때마다 늘 저택이 아름답다고 영지를 칭찬했다.
아버지는 그들을 좋아했다. 살갑게 구는 모습이 마음에 든 듯 올 때마다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발레린의 방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어머니는 그들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신 후 발레린에게 왔었다.
그때 발레린은 책에서 본 독 중독 증세를 확인했다. 어머니의 손손은 발진이 일어난 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독 중독이라고 했다. 발레린은 합리적인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분명 해인저 모녀가 어머니를 죽였어!”
하지만 탑 안에서 외치는 말은 그저 미친 소리에 불과했다. 특히 하인들은 발레린을 무시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이젠 해인저 부인의 이름까지 더럽히네!”
그렇게 발레린은 철저히 무시를 당한 채 해인저 부인이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훌쩍이는 발레린 옆을 그로프가 지켜 주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발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울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발레린은 그때 처음 다짐했다. 더는 억울한 일로 울지 않고 웃으며 지내리라.
발레린의 어머니는 항상 말했다.
‘울어 봤자 네 편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하지만 네가 웃는다면 온 세상이 너를 밝게 볼 거란다.’
그 후부터 발레린은 탑 안에 갇혀 지냈다. 그럼에도 살길을 찾아야 했다. 멍하게 있어 봤자 되는 건 없었다.
마침 발레린의 눈에 책이 들어왔다. 모두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버려진 책이었다. 발레린은 할 것도 없었기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15년 후, 발레린은 탑 안에 갇힌 채로 그곳에 버려진 모든 책을 섭렵했다.
예법은 물론 춤, 이야기, 농담을 배웠고, 사격, 검술, 운동, 가구 고치는 기술 등을 습득한 뒤 그런 기술을 이용해서 살았다.
버려진 가구를 개조해서 가끔 날아오는 씨앗을 심고 그곳에서 난 식물을 먹었다.
식물을 키울 땐 혹시나 죽일까 싶어서 검은 방독면을 써야 했지만 대개 발레린의 입김만 닿지 않으면 잘 컸다.
그렇게 모든 것을 통달했지만 발레린은 유독 사랑이 궁금했다.
그날도 유난히 캄캄한 밤하늘에 별이 무척이나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 발레린은 멍하니 별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랑에 빠지면 정말 어머니의 말대로 별이 빛나는 것처럼 온 세상이 밝아 보일까?”
그로프는 옆에서 대답했다.
“개꿀개꿀.”
발레린은 웃으며 다시 하늘을 쳐다봤다.
‘그로프의 울음소리같이 사랑이 개꿀처럼 찾아왔으면…….’
잠시 하늘을 보던 발레린은 몸을 돌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색연필을 들어서 연둣빛 벽에 노란별을 그렸다.
살짝 떨어져서 보자 봐줄 만했다. 연둣빛 벽에는 분홍빛, 빨간빛 등 수많은 사랑표와 별표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궁금할 때마다 발레린이 그려 놓은 것이었다.
발레린은 벽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 스프링이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로프가 기분 좋은 듯 펄쩍 뛰었다.
“그로프, 잘 자.”
발레린이 중얼거리자 그로프가 발레린의 볼에 혀를 내밀었다. 발레린은 피식 웃고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발레린은 어제와 똑같이 일상을 시작했다. 30분 동안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제자리 달리기 운동을 했다. 체력 증진은 발레린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다. 무엇보다 체력이 있어야 많이 먹을 수 있고 오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달리니 배가 고팠다. 발레린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7시 30분. 올 때가 됐다.
“음식.”
간단한 말과 툭, 내려놓는 소리는 거침없었다.
발레린은 검은 철장 사이에 놓인 음식으로 달려갔다. 멀건 수프였는데 건더기도 없었다. 그로프가 펄쩍 뛰어왔다.
“주인님, 드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애피타이저가 필요했거든.”
발레린은 근처에 있는 숟가락을 들고 왔다. 이미 독거미가 열심히 닦아 놓았는지 반들반들했다. 발레린은 독거미에게 숟가락을 잠시 흔들었다. 독거미가 다리로 인사를 한 뒤 잽싸게 거미줄로 올라갔다.
발레린은 고개를 돌려 곧바로 한입 떠먹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곧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로프, 먹어 봐! 이번에는 바나나 맛이야!”
발레린이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 주자 그로프가 혀를 빠르게 내었다. 그로프는 먹은 것을 삼키곤 말했다.
“바나나 맛에 망고 맛도 섞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이번에는 어떤 독일까? 조합을 아주 잘했어. 이런 맛 내기 어려울 텐데.”
“아마 제 생각으로는 팃시 한 방울과 텍시드 한 방울을 섞은 것 같습니다.”
팃시와 텍시드는 모두 입만 닿았다 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곧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독성 물질이었다.
그로프의 예리한 말에 발레린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