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 압살
* * *
셰토리아는 나를 바라보면서 동공을 떨었다.
"네? 왜 그러십니까. 저는 충분히 재능 있는 인재입니다. 아이데스님의 세력에 받아들여주시면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여전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상태로 셰토리아를 바라봤다.
"아직도 셰토리아님의 문제를 모르시겠습니까? 당신은 자신을 받아준 주군을 배신하고 저에게 오려고 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그녀에게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말이죠. 은혜가 있는 프레스티아 헬링조차 배신한 분이 은혜도 없는 저를 배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건..."
"단순히 제 세력이 크다고 해서 제 밑으로 들어오려고 하시는 거라면 저는 당신을 제 밑에 들일 수 없습니다. 결국 더 큰 세력이 나타나면 제 밑을 떠날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셰토리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프레스티아 헬링님의 밑으로 돌아가신다면 그녀에게는 따로 언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셰토리아가 고개를 한 번 숙인뒤 일어나 나를 내려다 봤다.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식은 걸 보고 나는 내 적이 하나 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관없었다.
외부의 적 보다는 내부의 적이 훨씬 더 위험한 법이었다.
셰토리아를 내 밑으로 받아들였다면 결국 나를 배신하고 내 배에 칼을 찔러 넣을 것이다.
"이만 돌아가시죠."
셰토리아가 이를 악 물고 돌아가는 걸 보고 오히려 안심했다.
셰토리아는 셰톨보다는 인내력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황제를 노리고 있다면 결국 나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진심으로 화가났다고 해도 적 앞에서 자신의 분노를 가감없이 표출하는 것은 자신의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능력이 부족한 적을 진시으로 견제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견제만 해주면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아니면 아예 프레스티아한테 목이 잘릴 수도 있고.
'이제 슬슬 전쟁을 할 때가 됐나?'
우리 세력은 제대로 된 전쟁 한 번 치루지 않고 여기까지왔다.
그 덕분에 쓸모 없는 세력 소모 없이 높은 곳 까지올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단점과 동시에 원래라면 전쟁을 통해서 갈아 버렸어야 할 불순분자들을 걸러내지못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전쟁을 통해서 내부의 적, 이라고 칭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이들을 천천히 갈아 버리는 과정을 지나야 하는데우리 세력은 애초에 전쟁을 치룬 적이 없다 보니 제대로 된 거름망을 거치지 못한 것이다.
안 그래도 아렌 세력 내부에서 오랜 시간 동안 평화가 유지되면서 이상한 놈들이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아렌이라는 우산 밑에서 세력을 키우는 것이목적이었던 머리 큰 놈들이 천천히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던 것이다.
이전에는 아렌 세력이 황실파라는 이름 그대로 황실파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이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 그런 걱정할 일이 없었는데 세력이 커지면서 조그마한 세력들은 황실파에 충성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그저 세력만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저런 이상한 놈들한테 붙어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전쟁을 한 번 치루긴 해야겠어.'
더 이상 유일한 황실 세력이라는 이유로 전쟁을 치루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렌도 충분히 성장했고 전쟁을 벌였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일을 해결할 수 있다.
메인 세력한테 전쟁을 걸었다가는 다른 세력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막으려 들테니 적당한 중견 세력을 공격하면 된다.
이왕이면 메인 세력으로 성장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강한 세력 말이다.
'명분은 라일라가 알아서 만들어주겠지.'
이레아 한이 죽은 이후 라일라는 정말 열심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잠재력을 거의 다 발현해서 스텟 하나 올리는 게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스텟을 올려갔다.
덕분에 군략쪽에서는 라일라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없을 거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지게 됐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뛰어난 실력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 그녀는 닭잡는 칼은 딱 닭잡는 데에만 쓰는 것 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전부 사용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정말 거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만큼 라일라의 체력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라일라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스승님이 죽은 이후 부터는 오히려 열심히 일 할 수록 힘이 난다고 했다.
그녀의 말이 100%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건 군주인 내 입장에서 절대 나쁜 게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라일라가 전쟁 명분을 만들겠다면서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전쟁을 벌인 건 아이작 세력을 상대로 한 전쟁 연기 뿐이었다.
그 때는 아이작이 제국을 완전히 나가겠다는 말을 한 것 과 더불어 주변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밀었기 때문에 전쟁을 치룬 것이었다.
그런 심각하 상황이 다가와야 전쟁을 치루는 세력인데 도대체 어떤 명분이 있어야 우리가 전쟁을 할 수 있게 만들까.
라일라의말에 따르면 아렌이 충분히 성장하기도했고 아렌 세력이라는 이름이 유력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꼭 그만한 명분이 아니라고 해도 전쟁을 치루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무슨 명분이 나타날 지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적으로 상정한 세력이 우리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는 해괴망측한 정보가 들려왔다.
내가 그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라일라가 내쪽으로 거짓정보를 넘기고 그 거짓 정보를 기반으로 전쟁을 치루려고 한 줄 알았다.
아니면 일단 전쟁을 시작해 놓고 상대가 먼저 선전포고 했다고 우기던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에린에게 상황파악을 해보라고 시키니 놀랍게도 진짜로 상대가 먼저 선전포고를 해왔다고 한다.
'지져스...'
중견 수준의 세력에서 우리한테먼저 선전포고를 했다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텐데?
어이 없는 일이긴 했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라일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한 건지 우리보다 훨씬 더 약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우리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일단 전쟁이 치뤄졌으니 나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처럼 병령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내 눈에 거슬리는 놈들은 병력을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는 곳에 박아두고 아렌이 죽은 뒤에도 나한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는 이들에게 공을 얻을 수 있는 자리를 배분했다
굉장히 편파적인 배치긴 했지만 그 누구도 나한테 다른 말을 할 수없었다.
내가 세력을 줄이고자 한 놈들은 아렌에게 제대로 충성하지 않는 놈들이었고 내가 공을 몰아 주려고 한 이들은 아렌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충성심이 높은 이에게 공을 주고 낮은 이들에게는 벌을 준다는 데 이런 상황에서 대 놓고 나한테 불만을 표시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우리의 상대가 된 카메룬 세력은 가지고 있는 바 전력은 약한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힘만 키워왔던 세력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콰직!!
라이넬이 이끄는 기사단이 적을 완전히 박살났다.
그녀가 기사단을 제대로 이끌기 시작한지 이제야 1년이 지나가는 시점이었지만 굉장히 빨리 성장한 기사들은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의 무력을보여줬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이들도 많았기 때문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적을 쓸어 버리다 시피했다.
적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적이 우리를 막기 위해선 전쟁이 치뤄지기 전 부터 우리와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누가 그랬던가 승리한 전쟁만 하라고.
우리는 이 전쟁에서 100%의승기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중견급 되는 세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서걱!!
카메룬 세력의 수장은 감히 황실에 반항했다는 죄목으로 죽었다.
우리는 카메룬 세력이가지고 있는 영토를 완벽히 흡수했다.
일반적인 세력이라면 새로 얻은 영토를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했을지도 몰랐지만 우리 세력에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였다.
새로 얻은 영토를 전부 아렌의 앞에 돌려 놓고 나중에 제국을 안정화 했을 때 나눠주기로 했으면 끝이니까.
몇몇 이들이 반대를 하긴했지만 애초에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게 난데 그런 내가 공을 황녀에게 올리겠다는 말을 한 거나 마찬 가지였으니 감히 나 보다 못한 공을 세운 이들이 내 말을 말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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