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 사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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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가 아주 어렸을 때, 이레아한이 그녀를 주웠다.
고아나 다름 없이 살았던 라일라의 재능을 알아본 이레아 한은 라일라에게 태생을 초월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뛰어난 재능에 대단한 스승을 만났으니 라일라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그야 말로 일치월장.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성장하는 라일라에게 이레아 한이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황실에 충성할 것.
예나 지금이나 이레아 한은 강경한 황실파였기 때문에 자신의 제자가 반드시 황실에 소속되기를 원했다.
라일라가 가직고 있는 능력이 대규모 정치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올지 이레아 한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황실파에 속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산 시킬 수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스승님...'
이레아 한은 스스로를 제자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하게 막은 못난 스승이라고 평가했지만 못난 제자였던 건 라일라도 마찬가지였다.
황실파로 들어가라는 이레아 한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어떻게든 야망있는 군주와 만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었다.
계속 이레아 한의 말과 반대로 행동하다가 겉으로는 황실파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강한 야망을 가지고 있는 플레아 아이데스라는 남자를 만나 야망을 쫓기 위해서 행동했다.
결국 제자가 더 못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마지막 까지 스승의 마음에 보답하지 못했는데 이레아 한은 라일라를 밀어줬으니 라일라는 스스로가 너무나 못난 제자다 싶었다.
'스승님께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더 열심히 해야 해.'
라일라는 이레아 한에게 참모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참모는 늘 군주를 위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레아 한의 죽음을 잊고 플레아 아이데스에게 봉사해라.
이레아 한이 사지로 가기 전에 했던 유언이었다.
그 유언을 받들어 라일라는 플레아 아이데스에게 절대 충성하기로 다짐했다.
그녀의 성정상 플레아 아이데스의 세력이 약해지면 다른 세력에 붙을 수도 있는 인물이었지만 이제 그럴 일이 없었다.
물론 플레아가 가지고있는 세력이 절대 작은 세력이 아니라서 망하려고 작정하고 세력을 다뤄도 쉽게 망하지 않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배신하지 않는 수하의 존재는 아이데스에게도 든든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라일라가 스승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플레아에 대한 충성을 다시 다지고 있을 때 플레아는 정말 파렴치하게도 이레아 한이 죽은 게 아니면 어떡할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레아 한은 제자인 라일라를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인물이었지만 플레아는 이레아 한이가지고 있는 능력을 감안해 위조 시체를 놓고 다른 곳으로 도망갔을 가능성까지 생각한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쓰레기같은 성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플레아는 군주였다.
군주는 자신의 세력을 위해서 쓰레기 같은 생각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남을 짓밟을 수 있고 이득을 뺏을 수 있을지를 하루 종일 생각하는 사람이며 모든 발상이 세력의 이득과 연계된 철인이다.
군주로 살기로 결정한 이상 차가운 피는 버릴 수 없는 성질이었다.
차갑지 않고 양심적으로, 감동적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군주를 때려쳐야 한다.
아니면 절대적인 권력을 가져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선 위대한 군주가 되거나.
그 방법 외에는 군주는 차가운 피를 버릴 수 없었다.
'일단 이레아 한의 처리는 끝났는데...'
뒷목이 좀 세했다.
섀도스탭에게 직접 조사를 맡겨 본 결과 이레아 한이 죽은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마법적인 재해를이용해서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고 해도 플레아에 대해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으니 살려고 발악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데 너무 깔끔하게 죽었다.
이레아 한이 플레아를 믿었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게 많았다.
사실 이레아 한은 자신의 제자인 라일라를 위해서 깔끔하게 죽어준 것이었지만 라일라는 그 사실을 굳이 플레아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한 의심을 가지면서 이레아 한의 생각을 추적했다.
'자기가 죽어도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이레아 한이 조용히 죽은 두 가지 이유 중 다른 한 가지 이유에 다가갔다.
자신이 죽어도 괜찮다는 것.
이것이 라일라를 위한 것과 더불어 이레아한이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인 이유였다.
아렌은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군주였다.
군주로 띄워진 초기에는 성격적인 문제도 조금 있었고 그녀의 주변에 충신이 붙어 있지 않아 문제가 있었지만 이레아 한에게 충분히 배우면서 정서도 단련하고 몸과 지식 등 모든 것을 단련했다.
그녀 나이 또래에서 조금 더 많은 정도 까지, 그녀에게 충성하는 충신들을 천천히 늘려가고 있었다.
유일한 문제가 플레아 아이데스에 대한 의존이었는데 그 정도 문제 따위는 아렌황녀가 시간만 지나면 금방 해결할수 있는 문제라 여겼다.
아렌은 스스로가 황제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만한 야망또한 가지고 있었다.
늑대가 아무리 호랑이 새끼를 제어한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었다.
결국 그 야성이 깨어날 것이고 플레아는 아렌에 의해서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런 계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레아 한은 마음편이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플레아가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주요 캐릭터들의 스펙을상세하게 읽을 수 있으며 수도 없이 난세를 반복해 오면서 권력을 앞에 둔 캐릭터들이 대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모르고 있는 평범한 군주라면, 이레아 한의 판단이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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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 얘가 자꾸 기어오르네..."
아렌이 진짜로 내 자리를 넘보려고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성장할 때라면서 수장 자리는 나한테 위임하고 있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녀에게 충성하는 충신들을 하나 둘씩 늘려가고 있단 것이다.
아렌이 다른 이들을 수하로 만드는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일단 아렌 스스로가 황제가 될 존재였기 때문에 권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아렌 옆에 붙을 수 밖에 없다.
옆에 가만히 붙어 있기만 하면 황제의 수하가 될 수 있는데 안 붙어 있을 이유가 어딨겠는가.
그 중 뛰어난 이를 골라 적당히 친해지려고 하기만 하면 아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친화력과 카리스마를 이용해 상대를 순식간에 아렌의 충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플레아는 기본적으로 아렌을 죽이고 그녀의 위상을 흡수하려고 하는 암덩어리였다.
아렌 옆에 붙어 있는 신하들이 늘어날 수록 아렌을 잡기 힘들어진다는 직관적인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아렌에게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아렌이 죽었을 때 플레아에게 충성을 하지 않을확률도 있었다.
표면적으로 황실파는 모두 아렌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황실파라 불리우는 하나의 거대한 세력에게 충성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아렌에게 직접적이고 제대로 된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권력에 민감한 귀족들의 특성상 아렌의 세력이 순식간에 증가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죽일 때가 안됐는데...'
아직은 더 세력도 키워야 하고 유일한 황족이라는 커버 아래에서 보호받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렌은 아직 죽일 수 없는 존재다.
상황이 복잡했다.
자기 세력 안에서의 정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제국에 충성하는 자라는 타이틀이 없어지지 않기 위해서 쉽게 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나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나는 나의 야망을 숨기기 위해 최측근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내 야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 방법의 장점은 들킬 가능성이 아예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것이지만 역으로 혹시라도 내 정체를 들키면 내 밑에 있던 병사들까지 일제히 나를 배신한다는 뜻이었다.
한번 뒤틀리면 최측근들과 그래도 나를 따르겠다는 이들을 제외한 모두를 잃어 버릴 테니 정치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렌을 직접건드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건가?'
아무래도 오랜만에 아렌과 독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나와독대를 한 후에 바로 행동양식이 나한테 유리하게 바뀌면 문제니 최대한 천천히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아렌에게 독대를 신청하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받아줬다.
아렌과 함께 독대를 하고 있으니 그녀가 새삼 많이 자랐다는 걸실감하게 됐다.
"왜 저와 독대를 나누고 싶으셨나요."
그렇게 충분히 성장한 아렌의 눈에 어릴 때 보였던 독점욕이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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