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너 까지 그러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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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를 플레이 하다보면 정치적인 이유로 반드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죽여야 하는 대상이 적이라면 상황이 조금 쉬워진다.
전쟁을 통해서 죽여도 되고 이간게를 사용해도 되며 꼬우면 암살해도 된다.
암살의 결과가 밝혀지면 사람들에게 엄청난 파장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대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게 더 손해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암살이 들킨다고 해도 그렇게 손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아군이라면?
같은 진영에 소속돼 있지만 그 아군이 너무 무능하거나 아니면 나와 다른 꿈을 꾸고 있어서 나에게 사사건건 방해가 될 것 같다면?
이렇게 되면 일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해진다.
일단 전쟁터에서 죽일 순 없다.
전장에 내보내는 것 까진 가능한데 거기서 순순히 죽어줄 지는 전장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암살을 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도 겉으로도 적이어서 암살했을 때 그럴만도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적 암살과는 다르게 자신과 같은 세력에 포함된 암살하는 것은 들켰을 때 리스크가 너무 높다.
막말로 적을 암살한 건 후세에서 긍정적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을텐데 아군을 죽인 것아무리 그의 승리에 많이 기여하는 내용이라고 해도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암살 말고 다른 방법을 취할 수도 없어.'
다른 이들 같은 경우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상대를유배보내거나 자신과 상대보다 더 높은 자와 상대를 이간질 하여 그 자를 사형시키게 만드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자신이군주라면 상대에게 누명을 씌워서 사형시키는 방법도 종종 사용한다. 보통은 유배 보내는 게 훨씬 더 쉬우니 그냥 유배를 보내 버리지만.
문제는 내가 제거 하고 싶은 대상이 당장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유배? 그녀는 오랜시간동안 황실에 충성하면서 엄청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입지를 뚫고 그녀에게 누명을 씌운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만약 유배를 보내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녀는 복수심이 있는 인물인데다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워서 자신을 유배시킨 내가 아렌에게 얼마나 해로운 존쟁인지를 잘알고 있을테니 복수의 칼을 단단히 갈 것이다.
라일라가 그녀의 제자였다.
아무리 순수하게 지력잠재력만 따지고 보면 라일라가 그녀보다 뛰어나다고 해도세월의 힘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녀를 유배보내면 내 등에 이미 작은 검 하나가 박힌채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유배를 보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사형이라고 쉬울 수가 없었다.
그녀를 사형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죄가 필요할 텐데 마른 오징어를 짜면 물이 조금밖에 안 나오는 것 처럼 그녀를 아무리 짠 다고 해도 사형이 나올 정도로 많은 죄를 뿜어낼 수가 없다.
누명을 씌운다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그녀에게 누명을 씌워봤자 그 한계가 있었다.
변명을 하고 싶진 않지만 결국 내가 그녀를 암살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것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유배를 당한 뒤에도 조용히 있는 존재였다면 그녀를 유배하는 것에서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유배를 가면 그녀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 유배를 갔을 때는 라일라도 키워야 하고 기본적으로 제국의 틀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유배당하더라도 제국의 모습 자체는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유배를 받아들이고 있던 것 뿐이지 이번에 유배를 가면 어떻게든 나를 죽이겠다고 지랄에 발광을 할 것이다.
이제 황가의 핏줄은 아렌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나는 아렌에게 정말 위험한 인물이었으니 당연히 나를 죽이려고 들겠지.
그래서 내가 그녀를 죽이는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이레아 한을 죽이기 위한 정당화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데 그녀를 어떻게 죽일 까 한참을 고민한 나는 플레이어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암살 법을 선택했다.
말이 암살이지 실제로는 사고사와 다름 없는 수준이었는데 난세에서는 무조건 일어난다고 해도 무방한 환경형 사고들이 몇개 존재한다.
환경에 의해서 일어나는 재앙이기 때문에 특정시기, 특정장소가 되면 정말 무조건 일어난다.
그런 장소로 이레아 한을 파견보내는 것이다.
그녀가 그쪽으로가야하는 이유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몇십년 간 유배보내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오라 하는 것 뿐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 유배라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없을 테고 나는 결과적으로굉장히 안정적인 방법으로 이레아 한을 죽일 수 있게 될것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그 누구도 나에게 물증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증은 있을 수도 있다.
며칠전에 이레아 한이 내 방에 따로 들어가는 걸 봤고 나는 이레아 한을 다른 곳으로 파견보냈다.
파견지에서 이레아한이 사고사를 당했다.
이 사고사라는 게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고라면 내가 엄청나게 의심을 받겠지만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났는지 서술조차 할 수없는 전형적인 자연재해였다.
내가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게 아닌이상 내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죽였을리가 없지 않는가.
그녀가 확실히 죽은 뒤에는 적당히 눈물 좀 흘려주고미안하다고 통곡 몇번 해주며 여론을 잡으면 금방 내 입지를 완전히 다질 수 있었다.
내가 난세에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만 사용가능한 정말 어마어마하게 효율 좋은 암살법이었다.
이레아 한이 내 마음대로만 따라준다면 말이다.
'그년이 내 말을 따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얼마 전에 충언을 했던 군주가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시킨 적 없던 일을 시킨다.
그것도 성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성 밖으로 나가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의심하는 게 정상 아닌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거절하는 게 상식이 제대로 박힌 인간의 행동이 아닌가.
하물며 상대는 라일라의 스승인 이레아 한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인력이 부족하다는 걸 계속 호소해왔으니까...'
우리 세력에 탑티어급 인재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말단 병사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정보였다.
이레아 한이라고 그걸 모를리가 없으니 이를 잘 이용하면 그녀를 속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제 2안, 3안을 짜야지.'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면 가장 좋겠지만 늘 내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진 않는 법이다.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시에린마저도 일을 할 때 수많은 대안을 세워놓는다.
상대가 반응한 이후에 생각하면 늦으니 미리 상대방의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대응책을 생각해 놓는 것이드.
참모진들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 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방식이긴 했지만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고 종합승률이나 평균 이득같은 것을 구하기 쉬운 모델이었다.
제 2안은 그녀가 절대 안간다고 했을 때.
제 3안은 그녀가 중간에 도망갔을 때를 상정하고 짰다.
아무리 대안을열심히 짠다고 해도 그녀가 늘 대안 안에 있는 방식으로 이동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만약 가장 대비하기 힘든 방식의 움직임만 보여주면서 대안을 짜 놨다고 해도 내 손해를 키우는 방식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정말 거대한 토끼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
라일라랑 이야기 하기엔 아무래도 그녀의 스승이었으니 시에린한테만 이레아한을 암살해야 겠다는 내 의견을 정했다.
그 군주의 그 수하라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듯 시에린 역시 내 충성을 이레아한한테 의심당하고 있고 이레아 한이 아렌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다고 말하니 죽여야겠다고 말했다.
"나랑 라일라가 힘을 합해서 이레아한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오히려 매국노라고 욕하면 누명을 씌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나랑 라일라가 같은 세력이라서 쓸만한 방법은 아니야."
시에린이 말하길 그녀와 라일라가 원래 부터 대립각을 단단히 세우고 있었다면 이레아 한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지도모른다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평소에 늘 대립하던 이 두 명이 한 명을 까기 시작하면 그 한명이 진짜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죽이는 것 밖에 답이 없는거지."
내가 짜 놨던 기본적인 틀에 시에린이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세력 최고의 참모라서 그런지 내가 만들었던 대안들을 정말 순식간에 최적화 시켰다.
그런 시에린도 자연재해를 이용해서 이레아 한을 죽이겠다는 내 말을 성공만 한다면 정말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이냐며 대꾸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중간에 도망가는 거 아니면 무조건 죽으니까."
똑똑
"라일라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라일라의 모습에 우리는 당장 작성하고 있던 자료를 모두 숨긴 뒤 문을열었다.
"둘이서 뭐하고 있었어요?"
"그냥 전략 회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라일라가 굉장히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희 스승님을 죽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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