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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304화 (304/312)

〈 304화 〉 저 년도 슬슬 죽여야겠네

* * *

시간이 지날 수록 누가 황제가 될 수 있는지 감이 잡혀 가기 시작했다.

반헬링 연합과 헬링 자매의 4명, 그리고 아렌 황녀 정도가 확률이 가장 높은 정도로 취급 받고 있고 중형 규모 세력 대 여섯개가 황제가 될 수 있는 각을 보고 있었다.

이 말인 즉슨 이제 황제가 될 것 같은 자 밑에 줄을 설 때가 다가왔다는 뜻이다.

누가 황제가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5명 중 하나가 황제가 될 확률이 너무 높지 않는가?

난세가 끝나고 새로운 제국이 생겼을 때 귀족으로 살아가려면 누군가 밑에는 줄을 서야 한다.

더 이상 간 볼 시간은 없다.

이 이상으로 간만 보면서 있다가는 기존의 수하들에게 모든 귀족 자리를 빼앗기고 평민, 내지는 천민 심하면 역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제국의 귀족들이라 함은 적어도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인데 그 역사가 사라지고 자신들의 후손이 평민이 된다고 하면 그걸 참을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누가 황제가 돼야 하는가.

헬링자매와 반헬링 연합간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황실파가 아렌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뭉치기 전에는 프레스티아 헬링이 가장 높은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군주가 굉장히 간악한 자라는 단점은 있었지만 그런 단점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세력이었다.

황제가 될 확률도 높았고 실력이 있고 신뢰만 간다면 아무리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라고해도 중히 쓰는 이였기 때문에 그녀쪽에 줄을 설까 고민을 많이했다.

그런데 지금은 판도가 조금 바뀌었다.

아렌세력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득은 이득대로 챙길 수 있고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거기에 아렌은 정통성까지 빵빵하게 있는 데다가 황녀라는 특수성 때문에 세력 내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지금 정도의 위치는 보전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아렌 세력이 워너비는 아니었다.

결국 가장 줄 서기 좋은 세력은 제국 내부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쟁이 끝난 다음에서야 정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렌 세력이 굉장히 무난하고 좋은 픽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실파라는 이름을 아렌세력으로 바꾸는 순간 수많은 약소 세력들이 아렌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아무리 약소 세력이라고 해도 제국 곳곳에 퍼져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플레아 아이데스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아렌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아렌 세력 최고의 한 수로 여겨졌다.

당연히 플레아 아이데스의 입지도 비약적으로 높아져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아렌 대신 세력을 다스리는 데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렌 조차 말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직 어리고 부족한 자신에게 머리를 박을 수 있을 정도로 충성적인 사람인데 그를 어떻게 의심을 할 수 있겠나?

"헬링 자매가 승리했데."

집무를 보고 있는 플레아의 근처에 다가온 시에린이 나즈막히 말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전쟁이 이제 끝난 것이다.

반헬링 연합은 고질적인 식량 부족을 이겨내지 못하고 헬링 자매에게 패한것이다.

"그래? 잘 됐네."

자신의 숙적인 프레스티아가 승리했다는 소식에도 플레아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헬링 자매가 전쟁의 승리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반 헬링 연합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명예를 얻었고 상대가 지배하고 있던 지역의 일부를 빼앗았다.

그러면 손해는 얼마나 봤을까?

산술적으로 보면 6천명 정도 되는 병사와 수십기 정도 되는 기사를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피해는 단지 그뿐이 아니다.

어떤 세력이든 전시 체재로 변화하면 무조건 손해를 본다.

전시 체제를 잘 이용할 수 있는 경우도 분명히 있지만 안타깝게도 헬링 자매들은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전쟁에 참여한 인력을 다른데 굴리면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가치를 잃어 버렸고 시민들의 활동도 전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심지어 돈도 많이 썼다.

그 고생을 했는데 수많은 세력들의 간섭에 반 헬링 연합에게 극명한 피해를 입히지도 못했다.

끽해야 프레스티아 헬링은 제도까지 이어지는 모든 땅을 먹었다는 것 정도?

그 과정 중에 1황녀가 죽었다고 하니 플레아 입장에서도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었다.

모든 전략가들이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크게 이득을 본 건 아렌 세력이라고 말했다.

두 세력과 동시에 교역하면서 이득을 많이 챙겼는데 손해는 거의 보지 않았다.

반헬링 연합과 헬링 자매의 전쟁의 끝났다는 소식이 제국 전체에 퍼지자마자 아렌세력에 수많은 세력들이 찾아왔다.

단순히 봐도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세력인 데 그 세력에 정통성까지 있다?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모일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몇몇 세력은 자신의 주군을 배신하고 온 경우도 있었다.

불과 몇달 만에 아렌세력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물론, 위상이 높아진 것이 늘 이득인 것은 아니었다.

"이새끼들은 또 도발을 해오네..."

메인 세력 다섯개와 중형 세력 5~6개 정도는 모두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잘 나가면 무조건 막아야 했다.

승자가 단 한 명밖에 없는 게임인데 그 왕좌에 누군가가 앉으면 자신이 앉을 자리가 없어지는 거니까.

기를 쓰고서라도 끌어내려야 했다.

"한 번 정도는 조정기를 겪어야지."

프레스티아가 크게 성장했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애초에 반년 정도 지속됐던 대 전쟁의 시작이 프레스티아의 독주 때문이 아니었는가.

아렌세력이 조정기를 잘 버텨낸다면 다른 세력이 감히 넘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다시 다른 세력과 비슷한 곳으로 끌려내려가겠지.

그래도 아렌세력이 굉장히 유리한 것은 다른 세력이 그들에게 전쟁을 걸어올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의 식량이 바닥을 치는 상황이었다.

반 헬링 연합에서는 수천명에 달하는 병사가 아사했고 심지어는 일반 농민 중에서도 아사한 사람이 꽤 많다고 하는데 자기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에 드러내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정치가지고 두들겨 패는 것 밖에 답이 없었는데 아렌황녀의 세력은 정통성이 굉장히 강하기에 그런 정치 공격도 잘 먹혀 들지 않았다.

플레아가 굳이 아렌황녀를 방패로 삼은 이유기도 했다.

"플레아 아이데스 경,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전쟁의 여파를 정리하고 이번 전쟁동안 정말 많은 고생을 해준 시에린과 라일라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 뒤 아렌 세력 전체에 어느 정도 여유가 나기시작했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서 이레아 한이 플레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 플레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때가 왔군.'

"네, 알겠습니다."

플레아가 들고 있던 자료를 내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레아 한님께서 저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셔서 저에게 오셨습니까?"

매일 짓는 미소를 짓고 이레아 한을 바라보니 그녀가 무거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외람된 말씀이고 실례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플레아 아이데스님은 아렌황녀님께 충성할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레아의 말을 들은 플레아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하는 말이 고깝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데스님이 진심으로 아렌황녀님을 제국의 황제로 만드시고 싶다면 이제는 슬슬 물러나실 때 입니다. 더 이상 아렌황녀님이 어리다는 이유로 권력을 잡고 계시면 안 됩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아이데스님의 참모들, 그것도 제 제자인 라일라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레아 한이 침을 살짝 삼켰다.

"무례하게 말을 시작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늦어지면 진짜 안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아렌황녀님이 그분의 세력을 다스리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레아한이 아이데스의 충성을 물은 건 진짜로 그가 충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가 모르고 있을까봐.

알고 있다고 해도 아렌황녀가 걱정되는 마음에 하지 못하고 있을까봐 강한 어투로 말을 시작한 것 뿐이다.

"...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십쇼."

이레아한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물러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플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레아 한은 플레아와는 다르게 진짜로 제국에 충성하는 충신이었다.

'저 년도 슬슬 죽여야겠네.'

라일라의 스승이며 아렌의 스승이기도 했지만 플레아가 그녀를 죽이기로 결정하는데 어떤 영향도 주지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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