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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303화 (303/312)

〈 303화 〉 아렌세력

* * *

연회장이 무거워졌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말을 한 것 도 아니다.

물론 다른 주요 세력들을 전부 간악한 세력 취급한 것 만 가지고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 대단한 발언도 아니었다.

대단한 발언을 한 건 아니어도 그냥 내 몸에서 나오는 분위기 하나로 연회장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순수하게 내 실력만 가지고 압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그들을 압도 할 수 있는 건 아렌황녀의 대부라는 위치 덕분이 강하긴 하지.

결국 이 위치도 내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니 완전히 내 실력이 아니라고 하기는 또 뭐하지만.

아무튼 강하게 밀어 붙이면서 외치니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오늘 이런 식의 말을 할 거라는 언질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이 정도로 강한 발언을 하려면 가까운 존재들한테는 언질 정도는 주고 그 존재들이랑 가까운 떨거지들한테도 조각된 전보가 퍼지면서 완벽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게 되는데 그런 거 하나 없이 갑자기 이 정도 정보가 나오니 놀라서 당황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이제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겉으로는 황실파라 불리고 있지만 저희 세력의 결속력이 얼마나 약하신지는 다들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가장 메인이라고 하는 세력 중에서 황실파가 가장 결합이 약했다.

어찌 보면 가장 강한 군주라고 볼 수 있는 아렌황녀를 모시는 집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황실파 자체는 동맹과 비슷한 방식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 결합 자체는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당장 프레스티아 세력 같은 경우는 가장 위에 프레스티아가 존재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프레스티아 밑에서 꽁꽁 뭉쳐 있는 방식으로 존재했지만 황실파는 가장 위에 나와 아렌황녀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꽁꽁 뭉쳐 있는 게 아니었다.

"황실파가 살아나고 다시 이 제국을 적법한 후손께 바치기 위해서는 정말 강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언질을 주지 않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다른 이에게 알려줘서 이득을 볼 것 같았으면 당연히 친한 이들에게 미리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사실을 꽁꽁숨기고 있던 이유는 분위기에 밀려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저희는 제국을 위해서 단단히 뭉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단어는 다 필요 없었다.

제국을 위해서라는 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마치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제국을 배반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내 말은 그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게 만들것이다.

그렇다고 아렌황녀를 따르는 게 엄청나게 비합리적인 일은 또 아니었다.

아렌황녀가 황제가 되면 결국 공적에 따라서 신분상승의 기회를 경험하게 될테니 어중간하게 동맹처럼 지내지 말고 아예 아렌 황녀 밑으로 들어오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언제까지 황실파라는 이름을 써야 합니까. 저희가 지지하는 분은 오직 한 분 아렌황녀님 뿐입니다. 저희는 아렌황녀님을 황제로 섬겨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아렌황녀님께 복종할 수 없다 여기는 세력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꺼지십쇼."

귀여운 얼굴로 꺼지라는 말을 해서인지 장내가 술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 술렁 거리는 것 까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과연 이렇게 대놓고 나가라고 하면 쉽게 나갈 수 있을까?

아마 어지간한 깡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절대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무대에서 내려와 한 여성에게 걸어갔다.

­털썩.

그대로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남자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특히 나는 남녀역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여성, 그것도 나보다 어린대다가 언젠가는 내가 죽일 거라고 다짐하고 있는 여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제 충성을 받아 주십시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이건 쇼였으니까.

조금 과장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황실파로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이런 시츄에이션을 보이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었으니까.

"어... 어..."

그 때 내가 플린을 아렌황녀의 옆에 둔 효과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눈치는 좋게 쳐줘도 없는 것과 다름 없는 플린이었지만 자기 오빠가 무릎을 꿇고 심지어 머리까지 박고 있는데 가만히 서 있을 여동생은 없다

플린 역시 당장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가져다 댔다.

나는 황실파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아렌황녀를 모시고 있는 조직이었지만 실질적인 대가리는 나다.

그런 대가리가 머리까지 박고 있으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이건 좀 아닌데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아닌 것 같아서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황실파에서 쫒겨날 것 같이 만든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이 분위기를 따르지 못하고 탈주하는 놈들은 어차피 끝까지 같이 가지는 못했을 놈들이니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많은 이들이 아렌황녀의 아래에 업드렸다.

몇몇 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 굴욕을 언젠가는 갚아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그 동안 성장한 아렌황녀는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대로 훌륭한 군주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몸이 가는 곳에 마음이 따라는 경우도 있는 법.

오히려 그녀에게 한 번 복종의 의사를 표시함으로서 그녀가 진짜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것이다.

뭐니뭔히 해도 황실파는 아렌황녀가 황제가 될 수 있다는 쪽에 건 사람들이었으니까.

'좋아, 잘 됐네.'

미네타가 미리 설치해둔 마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는 걸 전해줬다.

한 두 세력 정도는 자기는 못하겠다고 빠져나가는 상황을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착한 것 같았다.

'한 번 무릎을 꿇었는데 다른 세력으로 가지는 못하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무릎을 꿇고 머리까지 박을 정도로 격하게 복종의 의사를 표시한 상황이다.

금방 소문 나서 온 제국의 사람들이 다 알게 될텐데 이런 복종의 표시를 하고도 다른 세력으로 가거나 독립 세력을 세운다고 하면 평판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렌황녀도 제대로 경계해야 겠네.'

지금까지 아렌황녀는 그냥 나한테 보호받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내가 황실파의 거의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렌황녀는발아하기 위해서 영양분과 물을 공급받는 수준에 밖에 머물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 이렇게 대규모의 의식이 벌어진 순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나 보다는 아렌황녀한테 잘 보이고 싶은 세력도 생길 것이고 황실파 전체에서 그녀의 세력이 커지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내가 진정으로 충신이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천천히 아렌황녀에게 넘기다 그녀가 성인이 되는 날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그녀만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세력을 키우는 걸 최선을 다해서 막을 것이며 내가 강한 시점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것이다.

그렇게 세력을 유지하다가 아렌황녀가 가지는 위상을 통째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쯤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그녀를 죽일 시점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렌황녀의 힘이 너무 강해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녀를 죽일 것이다.

'근데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

아렌황녀의 힘이 강해진다는 건 내가 그녀를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아렌황녀가 나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키우기 전에 이미 아렌황녀를 죽여도 되는 수준에 도달할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제 밑으로 오기를 결정하신 모든 이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렌황녀의 목소리는 떨리긴 했지만 정말 단단했다.

"여러분이 저를 믿고 따라주신 만큼 저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해서든 이 길고 긴 전쟁의 승리자로 이끌어 드리겠습니다."

아렌황녀의 눈빛이 변했다.

수많은 존재들이 자신을 따른 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체감이 되는 건지 눈에 강한 책임감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렌황녀님을 위해."

"아렌황녀님을 위해!!"

내가 작게 말하니온 연회장이 떨릴 정도의 격한 후창이 이어졌다.

황실파로 불리던 세력이 아렌세력으로 이름을 바꾼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아렌황녀라는 이름도 사라지고 플레아 아이데스의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리라.

나는 그런 뱀심을 숨기고 아렌황녀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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