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 누명이에요!2
* * *
"어... 어?"
플린을 본 피해자의 반응이었다.
마치 플린을 처음 본다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다시 보더니 식은땀을 흘리는 게 보였지.
"당신을 겁탈했다는 게 저에요?"
플린도 플린 나름대로 누명을 쓴 상황이었기에 말이 좋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뚱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남성의몸이 미친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그가 자리에 주저 앉아 미친 듯이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가 저렇게 두려워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금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 없는 지배자의 동생을 자신의 실수로 평판을 크게 떨어뜨린 것이니 당연히 겁을 먹고 덜덜 떨만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플린 표정만 봐도 엄청 무서운 표정으로 들어왔다가 남자가 착각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악귀수준으로 변했으니까.
"플린, 잠깐만 진정해봐."
"네. 오라버니."
플린이 이를 악하고 물고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사람한테는 잘못이 없어. 플린 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에서 자기를 겁탈한 상대가 자기가 플린이라고 주장하는 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 자리에 누가 있어도 상대가 너라고 생각했을 거야."
"네. 저도 머리로는 알 것 같아요."
플린이 딱딱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하자 남자의 몸이 미친 것 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히끅 거리면서 딸꾹질 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네가 화내야 할 사람은 감히 너를 사칭한 사람이지 이 남자가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과연 자기가 플린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우발적으로 그런 걸까 아니면 계획적으로 플린의 모습을 따라하려고 한 걸까?
'우발적으로 한 것일 확률이 아무래도 높지.'
아마 작정하고 플린을 따라하려고 했다면 남자가 플린을 보는 순간 아니라고 말하는 수준에서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말인 즉 우발적인 범행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굳이 스파이까지 가지 않아도 일이 좋게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치안대한테 범인을 찾아오라고 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너보고 플린 행세를 하라고 했다고?"
"네... 네 그렇습니다..."
내 눈앞에 무릎꿇려진 여성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나이는 플린 보다 많아 보였지만 키와 체격은 플린과 꽤 비슷해 보였는데 그녀의 의지로 한 게 아니라 어떤 무서운 존재에 의해서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년도 플린을 봤을리는 없잖아.'
그냥 미친 년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이년의 체격이 플린이랑 너무 비슷했다.
자신의 체격이 플린이랑 비슷한 걸 알고 그걸 써먹었을 확률은 너무 낮았다.
누군가가 그녀와 플린의 체격을 보고 그녀를 통해서 속이면 딱 좋겠다고 판단해서 일어난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고?"
"네... 그냥 힘이 엄청 강한 여성이라는 것 밖에몰라요... 그 마저도 로브를 깊게 쓰고 있는데다가 목소리까지 변조하고 있어서..."
이렇게 되면 진범을 찾을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유일한 목격자가 알고 있는 정보가 이렇게 적은데 우리가 뭘 조사하겠어?
'경각심 정도만 가지면 되려나...'
어차피 메인 인물에 대한 보안은 거의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쪽 보안이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라 플린에게 누명을 씌움으로서 내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한 것 같은데 이건 막으려고해도 막기 쉬운 일이 아니다.
'딱 하나 방법이 있긴 하지.'
플린에 대한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
만약 상대가 노린 게 플린이 아니라 어머니였다면 여론이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어머니 인품이 좋은 건 주변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아마 플린의 이미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면 플린이 남자를 겁탈했다는 소문이 돌았을때 절대로 그럴 일 없다면서 사람들이 플린을 두둔해 줬겠지.
지금까지 기사로 살라고 내 놓은 느낌이었는데 정치적인 효용성을 위해서라면 슬슬 플린에 대한 좋은 소문들을 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안 그래도 황실파들을 다 모아 놓고 연회를 벌이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어.'
플린이 사교회에 들어오는 데 딱 적합한 연회가 되리라.
********
"와아..."
플린이 연회장에 들어온 순간 그녀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플레아 아이데스라는 권력자의 동생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장소는 에 한 번 도 찾아온 적이 없었기에 그녀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거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입 벌리고 다니지 마, 괜히 얕 보인다."
어벙한 모습을 보이면 그래도 늑대 같은 이미지는 안 생기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 동생인데 너무 멍하게 있는 건 손해가 크다.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그녀가 격식있게 허리를 피면서 나를 또렷히 쳐다봤다.
플린을 연회에 데려오기로 결정하고 지금가지 그녀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주입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얘가 그래도 기사로서는 자질이 있는 앤데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 자체가 귀족적인 삶이랑은 거리가 상당해서 완벽하게 교정하는 건 한 동안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연회장에 세우기 부족하지 않게 교육시킬 수 있던 이유는 내가 직접 달라 붙었기 때문이겠지.
"네 데뷔전이긴 하지만 오빠가 많이 바빠서 너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줄 것 같다."
"괜찮아요. 아렌 황녀님이 저랑 같이 있어주신다고 했어요."
황실파의 연회에 아렌황녀가 빠질 수는 없는법.
아직 어리기에 메인으로 설 순 없지만 상석에 앉아 시작한 뒤 여러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거다.
그녀가 플린 의 옆에서 연회의 기초를 알려 준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플린이 연회에 적응하기 쉽게 하는 것도 있었고 그녀의 옆에 다가오는 이들을 플린을 통해서 어느 정도 막아내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결국 아렌황녀는 시간이 지나면 죽여야 하는 존재기 때문에 너무 대단한 존재들이 그녀의 옆에 붙어있는 건 좋지 않았다.
"그러면 이 오라버니는 연회를 개시하러 갈테니까 아렌황녀님 옆에만 꼭 붙어 있어라."
"알겠습니다!"
플린에게 신신당부를 한 뒤 연회장에 마련 된 무대의 위로 올라갔다.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가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꽂혔다.
'황실파가 진짜 많긴 하네.'
수행원 하나 둘 정도는 다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 자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 지면서도 결국 이득과 계산을 통해서 이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속으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다들 잘 오셨습니다."
내 한 마디에 들떠 있던 분위기에 완벽한 적막이 찾아왔다.
내가 가면을 벗은 상태로 무대에 오르자 나를 바라보면서 음담패설을 내 놓던 무리도 꼼짝도 하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이게 매력이 가진 힘이었다
힘 없는 남성이 가지면 단순히 외모가 빼어나지는 것에서 그치지만 힘있는 군주가 가지고 있으면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
입을 여는 순간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써서 이 공간을 지배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은 명목상으로만 황실파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이들을 완벽하게 내 아래에 종속시키려는 일이었다.
내 잘난 부분을 최대한 보여줘야 한다.
나 정도 되면 너희가 믿고 따를 만하다.
나를 따르지 않고 괜히 이상한 데 돌아다닌다면 그게 너희한테 어마어마한 손해가 될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그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제가 여러분들을 불러 모은 이유를 아십니까?"
황실파 역대 최대 규모의 연회였다.
너무 바빠서 오지 못한다는 이들 빼고 모두를 불러 모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단지 친목을 위해서 불렀겠는가?
"현제 정세가 어지럽게 흘러가기 때문에 황실파에서도 수를 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가장 앞 쪽에 있는 여성이 손을 들고 말하자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간단한 동작도 결코 대충하지 않았다.
내 움직임만 봐도 강력한 힘이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 거울을 보고 연습한 각도 그대로 움직였다.
뭐하러 그렇게 까지 하냐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군주라면 이 정도 연습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큰 틀에서는 틀린말씀이 아니지만 조금은 다릅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강렬한 눈빛으로 정 가운데를 바라봤다.
"저희는 아렌황녀님을 따르는 황실파입니다. 제국의 정당한 주인이 저 자리에 계십니다. 근데"
한 타이밍 끊고.
"간악한 자들이 제국을 자신의 것 마냥 주무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선 안됩니다. 저희는 강하게 뭉쳐야 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