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화 〉 서막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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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링 근처에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제국의 작은 부분에서도 큰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는 전쟁의 주체들과 가까이 있던 자들끼리 트러블이 생기거나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 이동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고 복잡하게는 전쟁하는 세력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도 전쟁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서 몸을 비트는 자들이 각종 마법전략을 짜면서 제국 전체의 판이 바꼈다.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국에서 누군가가 이득을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전쟁이 마무리 되고 모든 여파가 사라졌을 때 최종적으로 누가 가장 많은 이득을 꽤찼는지에 따라 제국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전쟁이 반년을 가지 못할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고작 반년이라는 시간 안에 제국의 패권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어떤 이는 작은 세력을 들고 어떻게든 키우기 위해서 난리를 피웠고 어떤 이들을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썼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제국의 평균적인 전력은 낮아질 테니 지금의 위치 정도만 유지해도 손해는 아니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난세 중에서도 난세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작은 소녀가 결의를 품었다.
'힘을 가진 사람이 되겠어.'
그녀가 이를 악물자 이에서 까득 하는 소리가 났다.
소녀의 이름은 셰토리아, 난세에 태어난 작은 소녀였다.
어릴 때 부모님을 모두 잃은 소녀는 2살 터울의 오빠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고아다 보니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씻지도 못하며 겨우 살아갔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오빠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언제나 그녀를 지켜주고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던 오빠가 죽었다.
근처에서 대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병사들이 전장으로 몰렸다.
병사, 라는 말을 들으면 남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세계 자체가 남녀역전 세계인 만큼 일반적인 병사 모두 여성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좁은 공간에 부대끼고 있다 보니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남성이 필요했다.
'개새끼들...'
하필 전장의 근처에 살았던 셰토리아의 오빠는 그녀들에게 끌려가 성적으로 고문당해죽었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온몸을 여성의 체액으로 덮여진 채 죽어 있는 오빠의 모습을 본 셰토리아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자신의 친 오라비가 남들에게 강간당해 죽었는데 그 분노를 참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주륵.
셰토리아의 이마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어릴 때 부터 날 쌔고 힘 세다는 평가를 많이 받던 셰토리아는 자신의 오라비를 강간한 자들에게 복수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아직 어린 아이였다.
셰토리아로서는 제대로 된 병사 하나를 잡을 수도 없었다.
오빠를 강간하고 죽인 병사들을 향한 증오에,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경멸까지 합쳐지니 그녀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히스토리아 세력의 병사들이라고 했나?'
무조건 죽인다.
어떻게든 힘을 얻어서 자신의 오라비를 죽인 인간들을 죽인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그들을 죽일 수 있는가.
"병사로 받아달라고? 너 같은 꼬맹이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잡일을 맡아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저한테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셰토리아의 눈빛은 사나웠다.
아무리 봐도 그녀 또래의 아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힘을 키울 기회라."
그 때 그녀의 뒤에서 허스키한 소리가 들렸다.
힘에서 부터 느껴지는 강한 힘에 셰토리아의몸에 전율이 흘렀다.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느꼈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뛰고 있었다.
"추... 충성!"
"그래 충성."
"벨리아님이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마음이 이끄는 데로 왔다."
벨리아가 천천히 발 걸음을 옮겨 셰토리아의 앞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인가?"
벨리아는 셰토리아를 보는 순간 완전히 빠져 버리고 맞았다.
훈련 하나 받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이 분명한데도 거의 완벽운 균형으로 성장한 육체.
눈에서 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의지와 기세.
'잘 키우면 훌륭한 기사가 되겠어.'
갑자기 마음이 적적해서 산책하러 나왔는데 이런 뛰어난 인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녀가 나오지않았어도 이 소녀는 병사로 구르면서 성장했을 테지만 프레스티아 헬링에 대한 충성을 확립하는 시기를 놓쳤을 지도 모른다.
"네?"
셰토리아가 벨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충분히 겁먹고 어리바리 떨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벨리아의 눈빛은 의지에 가득 차 있었다.
"힘을 얻고 싶다고?"
"네, 어떻게든 힘을 얻고 싶습니다."
셰토리아의 눈빛이 활활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힘을 얻어서 제 오빠를 죽인 년들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눈에서 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복수심에 벨리아가 작게 미소 지었다.
"힘을 얻고 싶다면 내가 프레스티아 헬링님을 소개 시켜줄 수 있다."
벨리아의 말에 셰토리아의 몸이 크게 떨렸다.
이 곳이 프레스티아의 영지는 아니었지만 거리적으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셰토리아 역시 프레스티아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력한 군주이자 스스로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여성.
다른 세력에게 굉장히 나쁜 평을 받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셰토리아에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헬링님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보기에 너는 기사가 되기에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를 주군에게 소개 시켜드리면 아마 주군도 크게 만족하고 너를 키워 주실 거다."
벨리아의말에 셰토리아의 심장이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셰토리아는 아직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기사라는 말에 본능적인 끌림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을 뛰게 한 것은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사소한 것 따위가 아니었다.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 힘을 이용해서 오라비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것.
"제발 저를 키워주세요."
그녀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벨리아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머리까지 땅에 박았다.
여자로 태어나 다른 이에게 머리를 숙이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했지만 기사가 돼서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머리 한 번 박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예의를 표시하는 게 머리를 박고 비는 것이라 머리만 박고 있는 거지 그녀가 알고 있는 게 더 있었다면 분명히 그리 했을 것이다.
"조건이 하나 있다."
조건?
우스웠다.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었다.
벨리아가 어떤 조건을 내밀든 그녀는 흔쾌히 받아드릴 수 있었다.
"프레스티아 헬링님께 영원히 복종해라. 그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라. 그렇게 하면 그 분은 너에게 무한한 힘과 권력을 선사해 주실 것이다."
"저에게 권력은 필요 없습니다."
힘만 있으면 된다.
오빠의 복수를 할 수 있는 힘만 얻을 수 있다면 한낱 권력따위는 필요없었다.
"권력이 필요 없다고?"
셰토리아의 말에 벨리아가 옅게 웃었다.
권력이 필요 없다는 말은 권력을 얻어 본 적이 없는 자만 할 수 있는 소리었다.
벨리아는 셰토리아에게 남자 열 명을 막 다룰 수 있는 권력 정도만 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권력이 필요 없다고 해서 진짜로 권력을 하나도 주지 않는다면 권력 때문에 반란이 날 것이다.
수하가 자신의 공에 맞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것은 군주의 일, 벨리아가 생각해 볼 일은 아니었다.
"네! 저한테는 힘만 있으면 됩니다. 제 오빠를 강간하고 죽여버린 놈들에게 복수할 힘만 있으면 됩니다."
"지금이야 힘만 있으면 되겠지만 복수를 마친 이후에는 권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벨리아의 확답에 셰토리아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권력을 잡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따라와라 주군에게 너를 소개 시켜 줄테니."
셰토리아가 프레스티아에게 찾아간 순간 그녀는 셰토리아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못해도 에프로트를 상회하는 그 재능에 프레스티아는 큰 기쁨을 느끼며 셰토리아의 미래를 책임져 줄 거라는 약속을 했다.
셰토리아 역시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말에 프레스티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뛰어난 기사가 될 자질을 가진 년이야.'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재능이었다.
저 정도 재능이라면 정말 뛰어난 기사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셰토리아가 기사 뿐만 아니라 군주로서도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프레스티아는 호랑이 새끼를 자신의 아래에 들였다.
난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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