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서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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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티스와 히스토리아가 맞붙었다.
결투에서는 프리스티스가 승리했다.
지난 시간 동안 끊임 없이 전쟁을 벌여온 두 세력에게는 거의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다른 세력들은 지금까지 그녀들의 결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프리스티스가 히스토리아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각인됐다.
그녀들 끼리의 전쟁 중에는 사실 프리스티스가 히스토리아보다 강하다는 게 정말 당연시 되는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그녀들의 전쟁은 그냥 그런 전쟁이 있었구나 정도의 가치를 가질 뿐이지 실질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전쟁을 통해서 강하게 부각된 것 뿐이었다.
둘 사이의 결투에서는 히스토리아가 산산히 깨져 버렸지만 정작 히스토리아는 웃고 있었다.
개인 히스토리아와 프리스티스끼리의 결투에서는 프리스티스가 명백한 우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력끼리 비교해 보면 히스토리아가 엄청 꿀리는 게 아니었다.
서로 간만 보면서 오랫동안 전쟁을 해온 것도 둘 의 전력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얕 보이는 건 절대로 안 좋은 일이 아니야.'
동맹을 맺거나 이득을 뽑아 먹을 때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분명히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늘 안 좋게만 작용하는 건 아니었다.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고 불쌍한 척을 할 수도 있으니까.
대부분의 메인 세력에게는 약한 척이 통하지 않겠지만 몇몇 졸부 느낌이 나는 세력을 상대로는 방심을 유도하는 기술이 충분히 먹힐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지금은 메인 세력 4개가 엉켜서 제대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얕보인다는 단점이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은 4개 세력들이서 하는 거였으니까.
수장 보다는 병력의 강함이, 병력의 강함 보다는 전략의 강함이 더 승부를 가른다.
히스토리아는 프리스티스와의 전면전에서 확실하게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웃긴건 프리스티스 역시 히스토리아를 잡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냉철하게 보면 서로의 전력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세력이 하나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열정적으로 보면 두 라이벌이자 군주들이 자신감을 태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로 열정적으로 상대에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치고는 사실 제대로 된 전쟁이 이어지진 않았다.
일 두 세력 사이에 식량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 한 번 병사들의 사기가 낮아지면 회복해 줄 수 있는 물자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회전을 벌이는 것은 부담이 많았기에 수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기사단들끼리 승부를 본다던지 기사가 나와서 결투를 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프레스티아와 아이작의 전쟁은 화끈한 전면전으로 진행되냐고 물으면 이 역시 절대 아니었다.
이 전쟁은 4개의 세력이 2개씩 먹혀 있는 상황에서 치뤄진 전쟁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얼마나 많은 전력을 보존하는 지도 중요했다.
헬링자매가 최종적인 승리를 얻어낸다고해도 프레스티아 쪽만 손해가 크고 프리스티스 쪽은 거의 손해를 입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난리가 나지 않겠나.
그렇기에 서로 간만 보면서 제대로 된 전쟁을 치루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프리스티아 쪽은 그래도 식량이 있어서 괜찮겠지만 반 헬링 연합은 식량이 없어서 단기전으로 해야 하는데 왜 눈치만 보고 있는가?
그 답은 아이작과 히스토리아 간의 끊임 없는 의견충돌로 화합을 보고 있었다.
중요한 전쟁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동맹과 계속 싸우는 꼴이 보기 좋진 않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반 헬링 연합은 동맹군이지 같은 세력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최종적으로 자신이 가장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 끊임 없이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조건을 제시하다가 더 이상 미루면 안되는순간이 오는 순간 아쉬운 쪽이 포기하고 격렬한 전쟁이 시작되겠지.
그 격렬한 전쟁을 기다리면서 섀도스탭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불철주야 돌아다니고 라일라는 4개의 세력과 동시에 협상을 하기 시작했으며 시에린은 전쟁통에서도 영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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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이 101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한참 고도화되고 있을 때 매력이 101에 달했다.
매력 100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높다고 해서 딱히 나쁠 건 없겠지.
'아니, 생각보다 의미가 큰가?'
101이라는 스텟은 난세 본판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스텟이다.
이는 매력 뿐만 아니라 모든 스텟이 다 그렇다.
근데 남녀역전이 이루어지면서 매력 잠재력이 100을 넘는 존재도 생겼고 무력 잠재력이 100을 넘는 이들은 심지어 많이 생겼다.
매력 100과 101의 차이를 분석하면 무력 100과 무력 101의 차이를 분석할 수 있다.
과연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들이는 80과 81의 격차만큼 확실하게 강력하고 절대 넘어설 수 없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닌 수준에서 끝날지 아니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질지에 대한 해답이 내 매력에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 외모적으로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지는 않네.'
피부톤이 조금 더 매력적이게 변하고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는 있는 것 같았지만 드라마틱한 수준의 차이는 아니었다.
내가 매력 100을 찍었을 때 주변에서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외모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보여지는 매력은 어떨까?
나는 바로 시에린을 불렀다.
"왜 불러? 나 바쁜데."
"시에린, 나 어디 달라진 거 없어?"
내 말에 시에린이 딱딱하게 굳고 내 몸을 훑어 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굳어 있나 싶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한 말은 그 유명한 오빠 나 어디 달라진 거 없어? 의 리버스 버전이었다.
나는 아주 순수하게 내 스텟이 올라가면서 달라진 부분을 물은 것이지만 시에린에게는 내 몸에 뭐가 더 달린 건지 고민할 것이다.
"그... 글쎄? 조금 더 예뻐진 것 같은데?"
"흐음?"
"아니, 엄청 많이 예뻐졌어!"
시에린이 덜덜떨면서 말하는 걸 보니 역시 드라마틱한 수준의 변화는 없는 것 같았다.
진짜 끽해야 조금 정도 더 나아진 거겠지.
'무력 101도 마찬가지려나?'
아마 그럴 확률이 높겠지.
무력이 100이나 101이나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있는 존재들이니까.
그렇다고 무력 101을 무시할 수는 없다.
스텟 하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라이넬이 루나라를 이긴 게 아주 이례적인 일이지 무력이 1정도 차이나면 주변 환경이 받쳐주는 게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더 높은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를 이길 수 있다.
적어도 1대 1에서 만큼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절대로 작은 차이가 아닌게 난세에서는 최강의 위치를 자랑하던 아이작 조차 풀 잠재력을 기준으로는 프레스티아는 커녕 에프로트조차 이기지 못한다.
'결투가 아니면 의미가 많이 줄어들긴 하지만.'
결투는 1대 1대결이기 때문에 스텟 1의 차이가 크지만 소드 마스터 급만 돼도 대 부분의 전투는 1대 1이 아니라 기사단 대 기사단으로 붙는다.
그렇게 대 규모 전투가 되면 기사단의 전체 스펙이 중요해진다.
스텟 하나 차이로 이기는 승부가 날 수도 있고 승률이 크게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러면 결국 에프로트를 확실하게 꼬셔야 겠네.'
본래는 아이작 하나만 가지고 있던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각 주요 세력 마다 한 명씩은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 됐다.
여럿의 소드마스터와 잘 키운 기사단으로도 그랜드 소드마스터를 제어할 수 있지만 그건 상대가 아이작이라서 가능했던 거고 다른 멀쩡한 세력에게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있는데 쉽게 제압할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그랜드 마스터는 그랜드 마스터로 제압해야 하는 법.
내 쪽 노선을 타긴 했어도 아직 완전히 내 밑으로 들어오진 않은 에프로트를 꼬셔서 내 밑에 완전히 복속시키는 게 중요했다.
'그건 시에린이 알아서 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지.'
에프로트는 자기 세력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내 외모로도 꼬실 수 없는 인재였으니까.
시에린이 알아서 잘 구슬릴 거다.
내가 할 일은 시에린이 일을 잘 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거지 시에린 대신 전략을 짜는 게 아니다.
"너 근데 진짜 더 예뻐진 것 같다? 화장이라도 했어?"
"나 화장 안 한다니까?"
"진짜 예뻐진 건 맞는 것같은데?"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시에린의 얼굴에 한숨을 한 번 내 뱉으니 달달한 향이 난다고 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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