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 서막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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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프레스티아가 나에게 넘겨준 황야였다.
원래는 죽은 땅이라고해도 무방할 정도로 망가져 있는 땅이었지만 그녀가 이곳에 온 신경을 기울이면서 살려낸 결과 그래도 다른 지방의 절반 정도 되는 생산량을 뿜어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넓이가 워낙 넓었기에 가치가 상당한 땅이었다.
아마 이 땅을 이 정도로 비옥하기 위해 프레스티아가 들인 비용이 그들이 가져간 식량값보다 훨씬 더 많을 텐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냥 넘겨 버린 것이다.
물론 지금 시국에서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식량을 넘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값에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황야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워낙 컸기에 시에린의 어깨가 아주 뿜뿜하고 올라와있었다.
지금부터 시에린과 라일라가 전력으로 머리를 맞대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가치를 시에린의 제안으로 얻은 거나 다름 없었으니까.
시에린이 식량을 독점하자고 했던 아이디어가 구르고 굴러서 여기까지 온 거다.
물론 그 때는 전쟁이 벌어지고 전쟁세력들 간에서 식량 장사를 해서 땅을 먹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없었는데 그래도 시에린의 발상으로 황야를 먹은 것이니 이미 이번 전쟁동안 얻을 모든 이득의 대부분은 시에린의 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시에린 쟤가 진짜 보물이라니까.'
난세에서는 빠른 시기에 죽어 아무도 알지 못한 인재였지만 제대로 활용하니 그 포텐을 제대로 터뜨려 주는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만약 그녀가 내 얼굴에 반해서 나랑 같은 수업을 들으러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세력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시에린 처럼 대단한 인재가 없는 만큼 다른 대단한 인재를 추가로 영입하려고 하긴 했지만 지금 처럼 편한 사이로 지내지는 못했겠지.
당장 라일라만 해도 나랑 친근하게 지내는 건 아니니까.
"일단 개발은 거의 다 된 것 같고... 민심만 잡으며 되겠는데?"
난세 후기가 되면 땅주인이 너무 자주 바껴서 이전 군주에 충성을 가지고 사는 시민들이 줄어드는 데 아직은 난세 초기인데다가 황야는 지금까지 프레스티아의 밑에서 계속 지냈던 땅이었기 때문에 우리에 대한 반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강제로 빼앗은 게 아니라 거래로 넘겨 받은 거여서 반감이 조금 덜하긴 하겠지만 우리를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 일은 너한테 맡긴다."
"애초에 내가 하려고 했어."
시에린이 기지개를 쭉 펴며 라일라의 말에 답했다.
"기본적인 계획은 다 짜 놨으니까 너는 마음편하게 전쟁에나 집중해."
미리 계획을 다 짜 놨다고는 하지만 이론과 현장은 다른법이다.
시에린은 황야쪽에 집중하고 라일라는 전쟁에 집중하며 세세한 오차를 잡아나갈 예정이었다.
나는 그냥 사람들 민심 잡으려고 온거고,
자기 땅을 새로 지배한다는 사람이 한 번도 안 찾아오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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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앙큼한 자식들 보소."
히스토리아가 루이나에게 받은 문서를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작정하고 이득을 뽑아먹겠다고 움직이는 것 같은데?"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퍼진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루이나가 히스토리아에게 보고를 올린 것인데 소식이 제대로 퍼지기 며칠 전부터 아이데스 세력이 여러 장난질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헬링 자매가 손을 잡았다는 걸 파악하고 큰 세력간의 전쟁에서 어떻게든 이득을 뽑아 먹겠다는 투가 느껴지게끔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쟤네가 애 저러고 있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움직였다.
"그렇다고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이데스 세력은 지리적으로 4세력의 전쟁터와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가진 바 세력이 강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으니 굳이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상대와의 전쟁에서 손해를 보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일단 이 놈 부터 죽여 버리고 싸우면 안되나?"
"큰 일 날 농담하지 마세요. 거리도 멀고 가지고 있는 세력이 작은 것도 아니라서 이쪽을 먼저 제압하려고 하면 저희가 먼저 밀려 버릴걸요?"
"후우... 아이데스 상당에 제제를 가하는건?"
"전쟁이 끝난 이후라면 모를까 지금 제제를 가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우리에요. 꼴 사납긴 해도 전략을 잘짰다 칭찬하면서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어요."
"그래, 저쪽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는 상황이니까."
프레스티아를 공격할 때까지만 해도 프리스티스까지 이 전쟁에 합류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다.
청야 전술 정도는 할 걸로 예상했고 주변에 식량이 많다고 소문난 아이데스에게 식량을 받아와서 우리 진영에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게 할 걸 예상하고 겁만 슥 주고 돌아오는 것 까지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이 망할 자매가 손을 잡고 자신들을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두 세력의 전력은 비슷비슷했다.
프레스티아의 화공에 당한 세력은 히스토리아만 있는 게 아니라 프리스티스 역시 포함돼있으니까.
아이데스한테 다량의 식량을 구매한 동생 쪽이 언니한테 식량을 지원해 주긴 하겠지만 아예 제대로 된 전쟁이 된 이상 반 헬링 연합의 식량 사정은 살짝 더 나아졌다.
적어도 상대방의 보급이나 영지에 남아있는 식량을 털어먹을 수 있는 근간을 확보한 거니까.
애초에 겨울이 시작된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당장 먹을 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봄까지만 식량을 다시 공수해낸다면, 당장의 식량 부족은 문제가 없었다.
'리스크는 우리쪽이 훨씬 더 높네.'
미래의 식량을 끌어다 써서 적을 공격했는데 그대로 패배해 버리면 세력이 완전히 궤멸하는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럼에도 히스토리아는 전쟁을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그 어떤 세력도 히스토리아가 패배하는 걸원하지 않을 것이다.
헬링자매가 패배하면 세력이 급속도로 축소되긴 해도 멸망까진 가지 않겠지만 히스토리아가 패배하면 세력이 멸망할 테니까.
다른 세력이 멸망하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약해진 세력을 다른 큰 세력이 흡수하고 강성하게 성장할 것이 분명한 상황인데 누가 히스토리아가 패배하는걸 바라겠는가.
끽해야 헬링 자매랑 그 자매들을 따르고 있는 군주들한테나 허용된 이야기지.
"최대한 전쟁을 빠르게 끝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괜히 길게 끌었다가는 서로의 손해만 커져."
"식량 때문에 강제적으로 단기전을 노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당장 봄에 먹을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봤다 병사들만 아사할 뿐이다.
"후우... 우리 상대가 프리스티스라는 게 아쉽네."
프레스티아가 상대였으면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불문율을 어기고 잔뜩 괴롭혀줄 수 있을 텐데.
히스토리아는 아쉬움에 침을 삼키며 자신의 영원한 숙적인 프리스티스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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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겁쟁이년아. 그동안 잘 지냈냐?"
프리스티스가 자신의 검을 들고 히스토리아를 노려봤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뤄왔다.
난세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자마자 서로의 목을 따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던 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끼리 결투를 벌인 적도 수도 없이 많았다.
"의외네, 꽁지를 말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지금까지 두 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은 소규모의 전쟁이었다.
서로가 지키고 있는 땅에 소규모 병력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괴롭히는 유형의 전쟁을 주로 이뤘는데 지금 치르는 전쟁은 그야 말로 전면전이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사용해서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전쟁.
"내가 너한테 도망갈 이유가 어딨어? 너 같은 약골은 언제 싸워도 이길 수 있거든?"
프리스티스와 히스토리아의 전적인 8승 2패로 프리스티스가 크게 앞서 나가고 있었다.
상대 기사를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율 덕분에 히스토리아가 살아있는 거지 프리스티스가 프레스티아 처럼 악마 노선을 탔다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프리스티스의 평판이 엄청나게 떨어져서다른 세력을 상대할 때 너무 큰 마이너스가 되기에 절대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오랜만에 한 번 붙어 볼가?"
히스토리아가 자신의 애병을 들고 프리스티스를 노려봤다.
"좋지, 덤벼봐."
서로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열폭해서 싸우는 일 정도는 늘 있던 일이었기에 두 세력의 병사는 거리를 유지하고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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