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서막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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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인 걸 이렇게 써 먹네...'
우리 세력에는 라일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군략에 정통했으며 늘 시에린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참모였고 다른 한 명은 나, 정확히 말하면 플레아 아이데스의 어머니였다.
내가 영지를 얻고 플린까지 기사로 영입하는 와중에 난세까지 터졌는데 어머니가 마을에 남아계시는 건 위험할 것 같아서 고향사람들 데리고 우리 영지로 이주하셨는데 자주는 이야기 안 해도 3일에 한 번 정도는 가족끼리 식사 자리를 갖기에 나한테는 진짜 어머니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의지가 되시는 분이셨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이름이 같았는데 라일라, 그러니까 군략가 라일라가 이점을 교모하게 이용했다.
진작에 우리 어머니한테 양해도 구하고 허락을 맡은 뒤 남부 왕국을 정벌하는 걸 어머니한테 부탁하고 난세의 중심에 있는 전쟁에 관여하는 건 자기가 일 한 뒤 이름이 같다는 걸 이용해 두 상황에서의 공을 모두 가지고 간다는 전략을 짠 건데 애초에 남부 왕국의 일은 라일라가 모두 처리했기에 약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에 맞는 상은 받아야지.
우리 어머니는 남부 왕국에 거의 여행하는 느낌으로 가셨다.
라일라가 남겨 놓은 실무자가 일을 모두 처리하고 우리 어머니는 이름만 빌려 주는 식인데 플린 까지 데리고 진짜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셨다고 한다.
워낙 기뻐 보이셔서 진작에라도 한 번 같이 여행을 갔었어야 했나 싶은데 딱히 시간이 있던 적도 없다.
한 두 시간 정도 짧게 시간을 내는 건 언제든지 가능했지만 며칠을 통째로 놀 수 있는, 심지어 연락도 바로 안되는 먼 곳에 나가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잘 없었으니까.
빼려고 하면 뺄 수는 있겠지만 우리 세력이 입는 피해가 너무 커서 아마 어머니가 먼저 반대하셨을 것이다.
"어머니 엄청 아끼는 효자라서 위험하다고 막을 줄 알았는데 바로 보내드리네?"
"라일라라 이야기해서 남부 왕국에 간다고 하신 건 어머니의 의지야. 아들이 돼서 어떻게 어머니의 의지를 꺾겠어.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충분히 대단한 기사셔, 남부 왕국 정도에서 위험에 처할리도 없고, 여행가듯이 갔다 온다고 하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라일라가 다시 돌아온 뒤 시에린의 눈빛도 많이 달라졌다.
옆에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있으니 마음가짐이 달라진 건지 아니면 서로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건지 일단 업무 시간이 늘어났다.
"알았어. 그러면 나 이만 돌아가 볼게."
"열심히 해라. 전쟁끝나면 꼭 상 줄게."
"나는 상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 뿐이야."
"내가 황제가 됐을 때 네가 공작위에 오르는거?"
시에린이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과 다른 그녀의 반응에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입을 살짝 내민 뒤 방 문을 닫고 나갔다.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속을 알 수 없는 시에린의 반응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결국 내가 할 일이나 마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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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오늘 부터 우리땅이라는 거지?"
"오늘 부터는 아니지 처리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알고서 하는 말이야?"
황야에 들어서자마자 시에린과 라일라가 티격거리기 시작했다.
"프레스티아가 군사를 한 번에 다 가지고 갔어, 자원도 딱 우리랑 합의한 것만 남겨놨고, 이렇게 행동할 걸 예상하기도 하고 이 정도만 해도 그렇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하네."
라일라가 서류를 읽으면 읍조렸다.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 생각인가 본데?"
"당연히 사활을 걸어야지, 이번 전쟁이 얼마나 큰 전쟁인데, 패배하면 바로 나락이야."
"나락이라고 너무 확정짓지 마, 아무런 근본도 없는 세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시국에 아무리 몰락했다고 해도 이전에 큰 세력을 가졌던 경험이 있는 군주가 다시 못 올라올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 번 망했다고 해도, 모든 게 다 끝장나진 않죠. 하지만 한 번 나락으로 갔다는 것 까지는 분명하잖아요? 승률로 따지면 수십퍼센트가 그냥 날아가 버릴 텐데 그걸 가볍게 받아드릴 수 있는 세력은 없어요."
남의 세력에 땅을 넘기는 행위는 챙길 걸 깐깐하게 챙기고 최대한 상대가 지역을 지배하는 데 방해가 되기 위해서 천천히 후퇴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프레스티아는 지금 치루고 있는 전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정말 빠르게 후퇴했다.
황야를 나한테 내 준것은 장기적으로는 큰 세력의 감소로 이어지겠지만 당장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많은 힘을 다룰 수 있게 할 것이다.
지켜야 할 땅이 줄어들었으니까.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것 같아?"
"일단 프레스티아는 아이작을 치고 프리스티스는 히스토리아를 치겠죠. 가까운 데에 있는 세력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거리가 너무 먼 것도 아니니까 오래 안 지나서 서로 섞여서 싸우기 시작할 거에요. 이건 확실해요. 그 편이 전략을 다각화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정도 진행될 것 같아?"
"정확한 지점을 찾을 수는 없지만 아무리 길어도 4개월을 못넘어요. 양 측에 여유가 많은 편도 아니고 그 이상 전쟁에 시간을 쓰면 승리한다고 해도 다른 세력에 비해서 경쟁력이 약해질 수도 있거든요."
라일라가 패션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꼴값은..."
"왜? 예쁘기만 하구만."
"감사드려요."
라일라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시에린을 바라보자 시에린이 으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친한 만큼 티키타카가 있는 편이라서 이렇게 놀고 있는 거 보면 재밌었다.
"일단 황야를 안정화 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했나?"
"1순위 까지는 아니어도 우선도가 높은 일이긴 하지 프레스티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바로 이 땅에 장난질을 쳐 놓을 테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황야를 먹는 게 굉장히 우선도가 높을 일이긴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더 중요한 일들이 있어요."
나도 알아.
너희가 전부 결제 올려서 싸인까지 다 했잖아.
근데 내가 모르겠냐?
미리 알고 있는 정보를 이득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하는데 이쪽에 관해서는 시에린이 천부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라일라가 합류하면서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지까지 예측할 수 있었으니,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먹을 수 있었다.
당장 말을 미리 구매해 놓는다던가, 완제품 무기를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었으니까.
난세가 시작 된 뒤 단 한 번도 내려간 적 없는 병장비의 가격이였지만 이번에는 다들 식량이 없어 어차피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만큼 수요가 내려가 가격이 많이 줄었다.
그런 병장비를 미리 구매하고, 당장 구매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같은 가격으로 나중에 가져간다고 계약을 쓰면서 곧 치러질 전쟁을 준비했다.
그 외에도 아주 세부적으로 뭔가를 하긴 할 텐데 나는 군주라서 그런 세세한 것 까지는 잘 모른다.
큰 틀에서 얼마만큼 돈을 쓰고 있고 이 돈이 어떤식으로 활용될 것인가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1황녀를 죽이는 거에요."
아무리 아이작한테 잡혀서 제대로 기도 못펴고 늘 남자만 탐하면서 망가져 버린 여성이라고 해도 황녀를 욕하는 건아직 중죄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욕하는 것만 가지고도 평민은 목이 잘려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라일라는 굉장히 당당하게 1황녀를 죽여야 한다고 이르고 있다.
'얘도 내가 황제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지금이야 아이작이 꽉 붙잡고 있어서 문제가 없는데 이번 전쟁을 통해 이상한 년들한테 잡히거나 죽은 게 확인이 안 되고 애매하게 행방불명 되는 정도로 끝나게 되면, 문제가 너무 커져요. 확실하게 죽이고 1황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알려야해요."
열번을 토하는 라일라의 모습에 제국이 망했다는 게 실감됐다.
아렌 황녀는 내 손아귀에 있고 1황녀는 다른 이들의 이권에 의해 죽느냐 사느냐가 갈리는 상황이니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제국은 없었다.
"섀도스탭을 투입해야 하나?"
"섀도스탭도 분명히 뛰어난 꼬맹이긴 한데 너무 전문가에요. 누군가의 소행이 아니라 죽을 만하게 죽어야 해요."
"제도쪽 시민을 건드려서 죽여 버리면 되겠네."
"빙고!"
라일라와 시에린이 손을 마주 댔다.
방금전까지 틱틱대면서 싸우던 년들이 갑자기 저렇게 친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확실히 친한 게맞았다.
라일라와 시에린의 미소는 정말 밝았다.
그녀들의 결정으로 1황녀가 죽고 선동당한시민들의 일가가 몰살당할 텐데도 그녀들의 표정은 밝았다.
'어쩔 수 없지.'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과 손해도 감수해야 하는 법.
그 희생을 내가 아니라 남이 입는 데 일일이 신경쓰는 것도 우스웠다.
"도착했습니다."
보안을 위해 마부로 변장하고 마차를 끌고 있던 섀도스탭이 말했다.
"수고 많았습니다."
마차 밖으로 나오니 황야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충분히 발전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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