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화 〉 서막5
* * *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가 손을 잡았습니다."
뭔가 세한 느낌이 들어서 가든 근처에 박아놨던 섀도스탭이 정보를 물어왔다.
작은 일을 몰래 협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큰 일을 하는 것이다 보니 며칠 뒤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며칠이면 굉장히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지어 섀도스탭이 가지고 온 정보는 굉장히 디테일했다.
그녀들이 왜 손을 잡는지.
목적이 뭔지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낚아 올 수 있었다.
"잘했어."
섀도스탭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하자 얘가 말은 안해도 볼이 붉어지면서 좋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비록 무력이 올라가면서 키 차이가 크게 벌어져 무릎을 꿇고 있지 않으면 머리도 못 쓰다듬지만 그래도 나한테 섀도스탭은 늘 어린애 처럼 보였다.
'둘이서 힘을 합쳐서 히스토리아랑 아이작을 친다라...'
아예 생각해 놓지 않은 가능성은 아니었지만 진짜로 일어날줄은 상상도 못했다.
일단 헬링 자매가 애초에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이렇게 쿨 하게 오케이가 나올줄은 절대 예상 못했다.
'이러니까 참모진들이 필요한 거지.'
내 판단대로였으면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가 힘을 합칠 확률을 거의 0에다 두고 일을 했을 텐데 그래도 참모진들은 나 처럼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어서 제대로 이런 상황을 대비한 전략을 짜놨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빠른 며칠의 이득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사용하는 효율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중요한데 괜히 새 전략을 짠다고 시간 쓸 필요 없이 거의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가서 시에린한테 알려주고 시에린 좀 불러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이번엔 공이 정말 크니까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게."
원하는 걸 준다는 건 정말 양아치식 논공행상이었다.
일종의 백지 수표랑 비슷한 건데 마음속에 상한선을 생각해 놓고 그 보다 많이 부르면 못준다고 하고 그 이하로 부르면 결국 주려고 한 것보다 적게 줄테니 주는 사람만 이득 보는 방법이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때어먹을 생각없다.
일단 섀도스탭이 원하는 걸 가장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내가 그녀에게 지급하려고 했던 원래 분량에서 차감해서 추가로 보상을 주면 되는 거지.
"알겠습니다."
섀도스탭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내가 눈치채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섀도스탭이 마음만 먹으면 나를 쓱삭해 버리는 것 따위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무력이 없는 군주가 주변 무인들을 두려워 하면 그 약점을 보고 무인들이 군주를 전복하거나 군주가 무인들을 너무 억압해서 세력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기가 십상이었다.
섀도스탭이 갑자기 나를 공격해서 죽일 확률.
라이넬이 갑자기 기사단을 이끌고 나를 공격할 확률.
시에린이 참모진들을 이끌고 내 목을 치려고 할 확률.
이런 확률은 아예 상정해 두면 안된다.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냐고?
'그건 애들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대우를 잘못하거나 부하들을 다루지 못한 군주 잘못이지.'
카리스마가 없어서 부하들을 휘어잡지 못했다고?
그러면 군주를 하지 말았어야지.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세력의 모든 것은 군주에 따라 달린 것이다.
야생이나 다름 없는 곳에서 능력의 부족을 얘기해 봤자 투정부리는 것도 안된다.
"아주 화려하게 싸우려는 거 같은데?"
시에린이 문을 열자 마자 머리부터 들이밀고 말했다.
입꼬리가 씰룩씰룩 거리는 게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간의 동맹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 보였다.
"미리 짜 놨던 전략 있지?"
"물론 있지. 지금 상황에 맞춰서 수정을 좀 해야 겠지만 그래도 금방 수정할 수 있을 거야."
"부탁한다 섀도스탭이 얻어온 정보를 무의미 하게 하지 말아줘."
"걱정하지 마. 지금 시점에 이 정도 디테일한 정보가 있으면 이득을 못 챙기는 게 바보니까. 내가 네가 만족하지 못할 정도밖에 못 움직이면 내 곤장을 때려도 좋아."
"맞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지?"
"너한테 맞아봤자 느낌도 안와."
시에린이 실실 웃으면서 다시 문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면 바로 일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정보는 시간에 따라서 가치가 너무 크게 변해서 조금이라도 밍기적 거리면 가치가 너무 크게 빠져 버리거든."
"알았어. 열심히 해."
시에린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난장판이구만...'
내가 아는 난세와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게 남녀역전의 힘일까?
원래 세계에서는 남군주와 여군주가 밸런스 있게 분포되어 있었는데 남녀역전이 일어나면서 여군주들인 모든 군주란을 다 먹어 버리고 무력적인 측면에서 파워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여기까지 온 건가?
반 프레스티아파와 헬링 자매의 전쟁은 지금 시점에 일어나기엔 너무 거대한 전쟁이다.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전쟁에 참여한 세력과 그 주변 세력의 이득관계에 따라서 정말 다각화 되겠지만 몇몇가지 미래에서는 이 난세가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고 몇몇가지 미래에서는 이 난세가 어마어맣게 길게 늘어질 수도 있었다.
한 세력이 상대 세력을 깔끔하게 깨 부수고 이긴 세력쪽에서 배신 안 때리고 다시 몸을 회복하면 그 두 세력과 전쟁 상인 짓 하면서 이득을 챙겨 먹은 세력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세력들은 약소 세력이 될 것이다.
만약 두 세력이 서로 피터지게 치고 박다가 서로의 병력만 날아가 버린다면 난세가 정말 길어질 거다.
메인 세력 4개가 갑자기 힘이 쭉 빠졌으니 그 사이에 다른 약소 세력이 치고 올라올 테니까.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을 쓰기 가장 좋은 환경으로 변하겠지.
'나한테는 뭐가 이득이지?'
아마 참모진들도 생각해 본 문제겠지만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해 봤다.
나는 아렌 황녀를 죽이자 마자 빠르게 세력을 확장시켜서 제국을 먹어야 한다.
시간을 낄 수록 아렌 항녀의 위세 버프가 사라져 간다.
그럼으로 난세가 과할 정도로 느려지는 건 나한테 명백히 손해가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빨라져도 안된다.
내 세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에린도 이 정도는 생각하고 전략을 짜겠지?'
당연히 그럴거다.
몸에 뱀을 200마리 정도 넣고 다니는 시에린은 나 처럼 대략적인 타이밍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어떻게 전쟁이 끝나야 우리에게 가장 큰 이득이 있을 까 까지 전부 계산을 해놨을 것이다.
적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의 꼼꼼함이었지만 그런 꼼꼼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내 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든든했다.
'라일라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남부의 왕국을 정벌하러간 라일라였지만 이쪽 상황이 심각해 지고 있으니 그녀의 손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명분 만드는 건 거의 끝나고 이제 공격해서 뺏어 버리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데... 아마 지금 빼오면 엄청 섭섭해 하긴 할 거다.
자기가 양념 다 쳐놓고 이제 왕국을 점령하고 그 공을 인정받으면 되는 일인데 갑자기 다른 놈이 그 공을 홀라당 먹어 버리는 꼴이니까.
그렇다고 라일라한테 지난 간의 공을 쳐줘서 큰 상을 내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상을 줘버리면 라일라가 밑작업을 다 쳤다는 걸 바로 들키게 되고 쓸 데 없이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하냐...'
조금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상대가 시에린이었다면 나는 중앙으로 올라오라고 했을 거다.
미래에 다른 좋은 일을 시켜줌으로서 지금 당장의 손해를 메꿔준다고 하면 시에린은 내 말을 믿어 줄테니까.
근데 상대가 라일라인 게 문제였다.
라일라는 나를 존경하고 잘 따르긴 하지만 자기가 양념 다 친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올라오라고 하는 걸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성인 군자는 아니었다.
아니, 이런 걸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이상한 거다.
시에린은 나한테 가지고 있는 믿음이 크고 유대가 커서 믿어주겠지만 아무래도 라일라한테 절대적인 믿음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
그렇다고 이런 대규모 전쟁을 시에린 혼자서 처리하게 하는 건 좀 미안했다.
특히 군략과 모략 쪽에서는 라일라가 시에린 보다 한 수 정도 더 앞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똑똑
"누구세요?"
뭐지?
지금 시간대에 올 애가 있나?
"들어가겠습니다."
"응?"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라일라의 모습이었다.
"라일라? 네가 여긴 왠 일이야? 남부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큰 전쟁이 있는데 남부에박혀 있으면 수하 실패아닙니까?"
아니 네가 전쟁이 난걸 어떻게 알아 섀도스탭도 방금 알아내서 가지고 오 정본데.
"무슨 전쟁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반 프레스티아 연합과 헬링자매의 전쟁 아니에요? 그 정도는 저도 안다고요."
역시 군략의 천잰가?
상황흘러가는 것만 보고 전쟁이 날걸 예측했다고?
"그래도... 네가 하던 일이 있는데 그 공을 버리고 오는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도 다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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