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 서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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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와 아이작은 프레스티아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1주일도 되지 않아 병력을 몰고 프레스티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식량이 없어서 프레스티아를 공격하지 못 할 줄 알았는데 어디서 식량이 나서 프레스티아를 공격했는지는 모르겠다.
'프레스티아 쪽 참모진들 프레스티아한테 엄청 쪼인트 당하려나.'
듣자하니 프레스티아의 제 1참모라고 볼 수 있는 가든이 저번에 라이넬과 루나라의 무력 격차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해서 아끼는 노예를 잃는 형벌을 당했다고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런 상황에서의 대처법도 제대로 세워두지 않아서 라지만.
'그러고 보니까 가든 걔는 남녀역전이 되고 가장 많이 바뀐 여자인 것 같아.'
내가 알고 있는 원작의 가든은 프레스티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가씨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물론 같은 아가씨 과였던 프레스티아 또한 성격적으로 상당히 바뀌었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근본적인 컨셉인 악함, 이기심, 정복욕 등은 그대로 가지고 갔다.
'힘은 사람을 바꾸게 하는 건가?'
어쩌면 노예들을 지배하고 매질하는 지금의 그녀가 그녀의 본성일 지도 몰랐다.
난세에서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을 노예로 두기 힘든상황이라 그러지 않았을 뿐이지도 모르지.
아무튼 루나라랑 라이넬의 전투를 예측하지 못한 걸로 노예를 잃는 형벌을 당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큰 적들의 식량사정을 알 지 못한 정도의 죄라면 아마 모든 노예를 잃는 정도의 벌을 받지 않을까?
다른 세력의 참모가 받는 벌에 뭐 그렇게 관심을 두고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프레스티아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가 일어나게 한 가장 큰 원인을 패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녀의 수하들이 어떤 벌을 당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그녀가 대체적으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있었다.
만약 가든에게 큰 형벌이 가해지지 않았다면 프레스티아 세력의 정보망에 이미 히스토리아와 아이작에게 식량이 있을 거라는 정보가 이미 포착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반응할라나?'
프레스티아가 너무 크게 무너지면 내가 그리고 있던 큰 그림 전체가 훼손될 수도 있는 일이라 마냥 남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참여하는 전쟁은 아니었기에 강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전쟁을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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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아의 예상과는 다르게 가든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프레스티아세력이 이미 히스토리아와 아이작에게 식량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아니다.
혹시라도, 진짜 만약에라도 식량이 있어서 공격을 해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완벽하게 메뉴얼을 짜 놨기 때문이다.
일이 일인 만큼 가든이 직접 움직였기에 정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일단 정보망 쪽을 조져야 겠군."
프레스티아는 잘잘못을 굉장히 까다롭게 따지는 편이었다.
라이넬과 루나라의 전투에서 루나라가 패배했을 때 프레스티아는 루나라의 탓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루나라가 전력을 다했음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라이넬과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수행에 있어서 늘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지만 패배했다.
그런 그녀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어찌 최선을 다한 이에게 책임을 물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참모진들을 벌했다.
루나라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참모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미리 제대로 된 전략을 짜 놓은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상대를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상대에게 식량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이전에 미리 대비해 놓을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았다.
그렇다면 그 대비를 해 놓지 않은 가든의 탓인가?
아니다.
가든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비를 한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상대에게 식량이 있다는 정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정보부가 문제였다.
프레스티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군, 벌은 조금 더 나중에 주심이 더 옳을 듯 합니다."
"무슨 근거로 나에게 첨언을 올리는가, 나의 참모여."
굉장히 진지하고 무거운 어조였지만 프레스티아를 오래 모셔온 가든은 프레스티아가 자신의 생각을 듣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히스토리아와 아이작이 전쟁을 걸어올 확률에 대해서 논할 때 상대에게 실제로 식량이 있을 확률은 5%도 되지 않게 낮게 잡았습니다."
"그 말인 즉 95%의 확률로 식량도 없는 주제에 나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다는 뜻이로군?"
"결국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은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 식량을 미리 소모해서 우리를 치는 것 뿐입니다. 저희 지역의 땅을 빼앗으면 저장해 놨던 식량을 수탈해 갈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확실히 벌써 정보부를 조질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오히려 그 정도로 정확도로 상대의 정보를 알아냈다면 상을 줘야 옳은 일이야."
프레스티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가든 네가 나에게 내민 제안의 진의를 알 수 있겠군."
프레스티아가 가든이 내민 제안서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그녀가 내민 제안서에는 아이작의 땅과 히스토리아의 땅에서 가까운 일부 지역의 식량은 모두 불태우고 그 보다 살짝 더 떨어져 있는 거리의 식량은 프레스티아 본토로 옮긴다는 전략이 적혀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에게 덤벼드는 이들을 상대로 청야전술을 상대한다는 전술을 왜 낸 건지의문이 들었는데 이런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프레스티아가 은근한 눈빛으로 가든을 바라봤다.
"만약 95%정도의 확률로 적에게 식량이 없을 확률을 뚫고 적들에게 제대로 된 식량 수급처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정보를 제대로 물어오지 못한 정보요원들에게 벌을 줘야 하나? 아니면 제대로 된 전략을 짜지 못한 참모진들을 벌 줘야 하는가?"
"제가 짠 전략은 상대에게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다면 아주 크게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전략입니다. 조금 더 안전한 전략을 펼칠 수 있었지만 저는 상대에게는 무조건 식량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 근거는 제안서에 적혀 있습니다."
"결국 네 판단으로 일어난 일이니 만큼 네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적에게 전쟁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이 남아있다면 이는 그를 감안하지 않는 저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세력이 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 전에 그런 일을 막지 못한 저의 책임입니다."
"믿겠다. 감히 우리를 공격하려고 한 적들에게 지옥을 보여주도록."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프레스티아가 가든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위험하긴 해도 우리에게 가해지는 이득도 그만큼 크겠지?"
"맞습니다. 저희의 세력을 거의 지킬 수 있음과 동시에 적을 오히려 압박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가든의 말에 프레스티아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만 전쟁이 흘러간다면 최상급 노예 중 네가 원하는 놈 5명을 특별히 지명해서 살 수 있게 해주지."
"저... 정말 이십니까?"
가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귀엽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 남성 노예를 구매서 그 노예를 괴롭히고 지배하는 것에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가든에게 있어서 최상급 노예 5명을, 심지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보상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전쟁이 흘러가기만 한다면, 최상급 노예 5명 정도는 받아도 될 정도의 일 아닌가."
"호... 혹시 그 중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군이 죽이시지 않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겨우 입을 열어 말한 것이 노예 보호권이라니, 가든이 자신의 노예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래 그 정도는 해 주지."
두 사람이 전쟁의 공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 하고 있을 때 플레아 아이데스의 진영에서도 군주와 참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작이랑 히스토리아 세력에 식량이 없을 확률이 더 높다고?"
"어, 대충 95%정도?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지. 아마 프레스티아도 이 정도 확률로 예상하고 청야전술을 준비할 거야?"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자 믿음직한 참모인 시에린이 할 얘기를 대충 예상한 플레아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한테는 식량이 참 많지? 팔기 딱 적당한 상대가 있는 것 같지 않아? 값도 참 비싸게 쳐 줄 것 같은데?"
플레아의 웃음에 시에린이 따라 웃었다.
정말 닮아 있는 년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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