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 서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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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가 내 밑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제국 전체를 기점으로 봐도 상당히 중요한 소식이었다.
라이트가 가지고 있는 세력의크기가 절대 작지 않은 것도 눈여겨 봐야 할 일이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야망이 얼마나 큰지 다른 이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내가 친했던 사이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 라이트와 내가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면 우리 세력에 라이트를 끌어드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다른 이들에게 라이트가 나의 신하로 들어온 것은 절대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라이트라는 적은 사라졌지만 플레아 아이데스라는 적은 더욱 강해져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들이 있다.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 같은 일에도 상대적으로 더 이득을 보는 자들이 있고 결국 그들만이 이득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라이트가 내 밑으로 들어온 곳은 라이트에게는 쏘쏘한 일이었고 나한테는 아주 큰 이득이 되는 일이었으며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사소한 정도의 손해가 되는 일이었다.
'이런 제안만 계속 받았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좋은 제안을 날이면 날마다 받을 수는 없으니까.
"라이넬, 이제 슬슬 호위 기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네 말에 라이넬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 기사를 그만둬야 한 다는 것이 내 밑에서 떨어져야 한 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다.
"씁쓸한 표정 짓지 마 너 같이 대단한 기사가 내 호위 기사로 있는 것 보다는 하나의 제대로 된 기사단을 다루는 게 나한테 더 이득이 되니까. 그리고 기사단장이 돼서 나를 수호해도 되잖아."
"나도 머리로는 알아, 가슴으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아직그녀를 위한 기사단이 완벽하게 완성될 때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기사들을 육성하기 위해서 만든 기관에서 천명 정도되는 유망주들을 길러내는 과정은 이미 끝났다.
아직 제대로 된 익스퍼트 하나 없는 천 명 규모의 부대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미래에는 모두 익스퍼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이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부대를 만든 지금 시점 부터 라이넬이 그곳의 장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게 참모진의 생각이었고 라이넬도 그 사실에 동의했다.
결국 나중엔 자신이 이끌 명문 기사단이 될 부대인데 그녀가 지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후우... 그래,내가 네 근처에 있는 것 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을 줄이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되겠지."
"벌써 부터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가볍게 말하지 마 시에린, 너는 참모라서 그럴 일 없겠지만 군주와 떨어진 다는 게 얼마나 싱숭생숭한 일인지 알아?"
"나도 잘 알지, 근데 네가 떨어진다고 해서 플레아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플레아가 너를 저버리는 것 또한 아닌 거 잘 알고 있잖아. 기사단 하나를 너한테 배정할 정도로 너를 높이 사고 있는 거고 사실상 상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꿍해 있으면 플레아도 마음이 좀 나쁘지 않겠어?"
"... 그것도 맞는 말이네. 미안해 플레아."
"미안해 할 게 뭐 있어. 친구 사인데."
나는 친구 라는 단어를 강조해 말했다
강력한 군신관계로서도 묶여 있는 것이 우리 사이였지만 우리는 친구였다.
시에린과 미네타는 좀 괜찮은데 라이넬은 자꾸 나를 군주로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마음이 좀 그랬다.
"후우... 네가 준 기사단 정말 열심히 키울게."
"아직 기사단 아니야."
"기사단 맞아. 내가 들어가서 직접 굴릴 건데 설마 기사단 정도도 안 될 것 같아."
라이넬의 자신만만한 말에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어차피 당장은 전쟁 중이 아니라서 우리 영지 안에서 지낼거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매일 저녁마다 찾아올 테니까 그렇게 알아."
라이넬이 내 쪽으로 주먹을 내미길레 장난스럽게 보를 내주었다.
아무래도 무인이라서 그런지 내가 손바닥을 핀 것과 주먹의 크기가 거의 비슷해 보였는데 라이넬은 그 모습이 재밌던 것인지 키득 대면서 웃었다.
"그러면 나 진짜 간다."
"그래, 잘 가라."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는 라이넬이었지만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거나 냉혈한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라이넬이 표현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히 이상한 것이었다.
아예 다른 이의 밑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군주를 두고 보직 이동을 하는 것 뿐인데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심지어 라이넬은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만큼 강한 우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과한 반응이다.
라이넬은 기사단으로 보낸 뒤 우리도 해산하고 각자의 일을 처리했다.
'정세가 참...'
프레스티아의 악마 루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온갖세력들이 갈아 엎어지고 있다.
꽤 컸던 세력들이 식량관리를 못해서 굶어 죽어가기도 했고 아주 작았던 세력들이 천천히 들고 일어서기도 했다.
그 와중에 프레스티아는 대규모 확장전쟁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아이작은 제도에서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어쩌면 전체적인 흐름 자체가 빨라질 지도 모르겠네.'
원래라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통일 될 제국이 프레스티아의 움직임 때문에 빠르게 통일 될 지도 몰랐다.
작은 세력들이 날아 오르고 망할 세력들은 망하는 일은 적어도 몇년 정도동안 천천히 일어날 일이었는데 지금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마구 잡이로 일어날 것 같았으니까
'전략을 좀 변경해야 하나.'
내가 지금까지 짜 두었던 전략들은 전부 난세가 내가 알고 있는 스피드로 진행됐을 때를 가정한 것이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라이넬의 아래에 있는 기사단도 성장할 수 있었고 아렌황녀가 제대로 성장해서 정계에 발을 들이기 직전에 목을 잘라 버릴 수 있을 것이며 수소문해서 찾고 있는 10대 초반 정도의 천재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 자체가 빨라진다면 이런 일들을 아예 할 수 없게 되거나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똑똑
"누구세요?"
"나야, 시에린."
방금전에 나갔는데 무슨 일이 또 생긴 걸까?
"들어와. 무슨 일인데 이렇게 바로 찾아왔어?"
"중요한 일이긴 한데 그렇게 대단한 소식은 아니야.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 뿐이거든, 히스토리아랑 아이작이 대동단결해서 악마 같은 짓을 한 프레스티아를 공격한다고 발표했어."
"일어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삼파전 이상만 돼도 한 명이 강성해 지면 다른 둘이서 손을잡는다.
수많은 세력이 존재하는 난세에서 프레스티아가 홀로 앞서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 그녀를 막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일것이다.
문제는 그 시점이 지금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지.
'적어도 봄이 되고 새 식량을 키운 뒤에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쯤 되면 프레스티아가 가지고 있는 땅이 지금 보다 훨씬 넓을 것이고 쓸 수 있는 힘도 훨씬 더 많을테니 두 메인 세력이 압박한다고 해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이랑 히스토리아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식량이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에게 식량이 공급될 수 있는 망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공격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아마 지금은 선전 포고 정도만 해 놓고 제대로 공격하는 건 나중의 일이 될 확률이 높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까?"
"그건 이제 부터 참모진들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지."
아무리 프레스티아라고 해도 영지를 완벽하게 안정화시키지 않고 외부로의 확장을 실행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작과 히스토리아라는 메인 세력이 공격해 들어온다면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지금까지 모아 온 땅들을 헌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럴 가능성이 있음에도 프레스티아가 활발하게 정복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프레스티아를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들에게 프레스티아가 알지 못하는 자원 공급망이 더 있다면?
그들이 프레스티아의 목에 칼을 겨눈다면?
'그렇게 되면 아무리 프레스티아라고 해도 일시적인 세력 축소를 피할 수 없겠지.'
이런 저런 역사가 반복되는 시대인 난세인 만큼 금방 다시 일어나서 활발히 활동할 수도 있지만 아마 한 동안은 자숙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아이작과 히스토리아한테 식량이 있는지 없는지를 중점으로 조사해줘."
"없을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일단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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