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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88화 (288/312)

〈 288화 〉 라이트 리쿠르트­2

* * *

라이트의 편지에는 그리 대단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아무런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

시에린이 말했던 한 번 만나보자 그게 내용의 전부였다.

어떤 것에 대해서 말하자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한 번 이야기해보자는 것이 모든 내용의 끝이었다.

'하긴 한 두 가지 이야기만 나누고 끝낼 사이는 아니니까.'

나름 동맹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정도 시간 동안 아무런 말을 나누지 않았으니 사실상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라이트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언급하지 않은 거겠지.

'일단 동맹은 계속 가려나?'

판단을 잘해야 했다.

그가 데리고 있는 기사 중 무려 두 명이 나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세력이 나와 끝까지 이어질 동맹을 유지하고 싶지 않아한다면 그녀의 밑에 있는 두 기사를 내 쪽으로 빼 내는 것도 생각을 해봐야 했다.

'만나고 결정하지 뭐.'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쪽으로든 답이 나올 것이다.

*******

"오랜만이야. 형."

"공적인 자리에서는 무조건 존댓말을 써야한다던 우리 동생 어디 갔나?"

"비공식 적인 만남이잖아? 그리고 그 때 처럼 내가 형의 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라이트를 바라보고 있으니 동부왕국과의 전쟁을 치룬것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각자의 세력을 잡고 있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왜 부른 거야?"

"불렀다고 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지 않냐? 내가 찾아왔는데."

어느 쪽 영지에서 만나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어느 세력이 더 강하게 보여지냐는 외부적인 요소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공식적인 만남이라고 해도 이렇게 찾아온 쪽이 살짝 지고 들어가는 분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라이트는 당당하게 나에게 먼저 찾아왔다.

'기사 둘을 때어내기 위함인가?'

그의 행렬을 조금 살펴 보니 나를 연모하는 두 기사 마이테스와 필리엣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두 기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걱정해서 일부로 두고 온 것 처럼 보이는데 아무래도 내가 그의 영지로 가게 되면 나에게서 그녀들을 때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가 나에게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어?"

그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이틀 전에 나에게 편지가 하나 새로 도착했다.

정말 놀랄 제안을 가지고 갈 테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나는 그의 편지를 받고 아이작처럼 제국을 완전히 배신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기라도 하나 싶었지만 내 앞에서도 아주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발표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후우... 형이 진짜 많이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쓸 데없을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에 나는 위협을 느꼈다.

'이 형 혹시...'

설마 게이는 아니겠지?

식은땀이 흐르며 일단 라이트를 막으려고 할 때 그가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네 밑으로 받아줘라."

"... 뭐?"

"앞으로 나한테 충성을 맹세한다고."

지금 무슨 일이 나한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라이트가 나한테 충성을 바친다고?

동부의 최고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는 야망가가?

내 얼굴이 굳어 가는 모습을 본 라이트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네가 보기에는 갑작스러울 수도 있는데 형이 진짜 생각 많이해서 내린 결론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지방파 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형이 이런 결론을 내린 거야? 형, 설마 잊은 거 아니지? 나 아렌 황녀님을 모시고 있는 인간이야. 형의 야망을 채워줄 수는 없어."

"나도 이제 내 깜냥을 알겠더라. 난세가 찾아오고 나서야 알았어. 내 지도력으로는 동부의 지배자가 되는 걸 불가능해."

저 말은 자신을 너무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

난세에서는 무슨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에게는 세력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상회하는 능력치가 있었다.

심지어 나와 비공식적으로 동맹관계인 시점부터 그가 동부의 패자가 될 확률이 마냥 낮은 것은 아니었다.

"형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야?"

"마이테스랑 필리엣 때문이야."

걔네들은 갑자기 왜?

그는 내 얼굴에 담겨져 있는 의문을 알았는지 한숨을 한 번 쉬며 말했다.

"걔네들 아무래도 너한테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그녀들과 내가 만난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미칠듯이 잘생긴 얼굴에 신념있는 행동가지가 더해져 나에게 빠르게 반한 모양이었다

사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마음이 있다고 해도 천천히 사그라 들기 마련인데 사랑에 대한 감정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애만 타면서 발을 동동구르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를 상대할 때 마이테스랑 필리엣을 제대로 다스릴 자신이 없어."

"그냥 동맹을 유지하면 되는 거잖아. 왜 굳이 내 밑으로 들어오려는 거야?"

"그게 우리 세력에게 있어서 더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너랑 싸우고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네 세력 밑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이테스랑 필리엣은 더 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고 변수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어."

그녀가 말을 살짝 끊은 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 혼자 동부의 패자가 되는 것 보다 네가 제국의 2인자가 된 뒤에 동부에 대한 통치권을 하사 받는 게 더 나을 것 같더라."

"허..."

라이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야망에 가득 차서 움직이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에게 무릎을 꿇어 올줄은 몰랐다.

라이트 같은 야망가가 다른 이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단순히 동생에게 무릎을 꿇는 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일이었다.

"물론 네가 안 받아 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동맹을 끊고 싶지는 않아, 너랑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무조건 좋으니까."

라이트가 이전부터 나를 강하게 올려치고 있다는 생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나를 좋게 볼 줄은 몰랐다.

'이걸 내칠 수는 없지.'

라이트 정도면 정말 괜찮은 세력이다.

일단 극동부에 위치해 있어서 그 쪽 세력들의 움직임에 대처하기도 쉬워지고 언제든지 다른 세력을 쌈싸 먹을 수 있는 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일단 받는다.'

라이트가 내 밑으로 들어온 뒤에 언젠가 나를 배신할 각을 노리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대처하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참모진 들이 할 일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대인배 처럼 라이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이었다.

"내가 형을 왜 안 받아줘. 같이 가자."

나는 라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이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세력대 세력에서는 내가 더 위에 올랐지만 계속 형 취급해도 돼지?"

"공적인 자리에서는 아이데스 남작님이라고 불러드릴게."

라이트가 키득 거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라이트가 내 세력의 밑으로 들어오면서 라이트를 앞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 지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겠지만 그에 관해서는 내가 처리해야 할 게 아니라 시에린 같은 참모진들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이럴 거면 마이테스 경이랑 필리엣 경은 대체 왜 안 데리고 온 거야?"

나한테 이상하게 꼬심당할 까봐 안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나한테 굴복하려 온 거라면 대체 그녀들을 왜 안 데리고 왔는지가 의문이었다.

"내가 안 데리고 온 거 아니야. 걔네들, 너를 엄청 보고 싶어하는 와중에도 기사로서의 의지가 강해서 너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모른다는 이유로 절대 안 간다고 하더라."

"아예 내 밑으로 들어오려고 찾아왔다는 걸 알면 엄청 난리를 피우겠네."

"왜 미리 말 안 했냐면서 나를 죽이려고 들걸?"

라이트가 키득하고 작게 웃었다.

'그래도 기사로서의 긍지는 제대로 박혀 있네.'

하긴 라이트 스스로는 자기 세력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의 지도력 아래에서 자란 기사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고 세력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리가 없다.

"나중에 정식으로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될 때는 마이테스 경이랑 필리엣 경도 꼭 데리고 와."

"당연히 데리고 와야지. 그 때 안 데리고 오면 진짜로 맞아 죽을걸?"

군주가 기사한테 맞아 죽는다라.

일반적으로 말하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관계가 가족같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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