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화 〉 겨울이 오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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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참 추운 계절이다.
사실 겨울하면 춥고 배고픈 계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긴 하는데 나같은 현대출신들은 겨울에도 굶어본 적이 없고, 이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겨울은 일단 가을에 추수해 놨던 식량이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배가 고픈 계절은 아니다.
물론 사는 지역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제국에 완전히 난리가 났는데?"
시에린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난리가 날 법도 했다. 프레티아가 전 제국의 모든 식량 창고를 불태우는 짓을 저질렀으니까.
물론 우리처럼 보안이 뛰어난 곳도 있었고 하이네스가 여러 곳의 식량창고를 공격하면서 기력이 많이 빠지기도 했으니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모든 식량창고라고 말하기는 모자란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영지가 프레스티아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워낙 많은 이를 공격했고, 워낙 심각한 사건이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프레스티아를 욕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욕을 먹을 만한 일이었다.
다른 세력이라고 해도 식량에 아예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게 아닐텐데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보안을 깨부수어 버리고 그들의 식량을 불 태운 것이니까.
악의성이 그렇게 대 놓고 드러났는데 욕을 안한 인간이 어딨겠냐.
그나마 영주가 가지고 있는 식량만 불태웠기 때문에 덜한 것이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까지 불태웠으며 제국 전체에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근데 역시 프레스티아 쪽 참모들이 능력이 좋아.'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한 것은 하이네스였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세력들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게 계획을 세운 이들은 프레스티아의 참모진들이었다.
심지어 병력을 움직이는 게 아니면 딱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을 남겨 놓기도 했고 수많은 세력들의 가지고 있는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식량을 태울 수 있게 만든 것이 프레스티아의 참모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확실히 아카데미 시절 부터 쓸만한 인재는 바로 바로 영입해서 다뤘던 그 프레스티아 다웠다.
우리 세력이 했다면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이렇게 까지 완벽하게 하기는 힘들었겠지.'
프레스티아의 조절이 얼마나 깔끔했냐면 수많은 세력들이 그녀에게 욕만하고 있을 뿐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식량이 없어서 그녀를 공격하는 이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민간에 뿌려져 있는 식량은 아직 제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걸 긁어 모으면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긁어 모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상인들도 바보가 아니라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식량을 싼 값에 넘길까?
억지로 식량을 모아서 프레스티아를 공격한다고 해도 프레스티아는 싼 값에 많은 식량들을 이미 비축해 놓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세력에게 프레스티아는 공격해 봤자 손해만 보는 세력이었다.
"오늘 프로트라인이 온다고 했었나?"
"어, 아무래도 프레스티아가 한 짓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나봐."
프로트라인은 상당히 빠르게 우리 영지에 도착했다.
편지가 도착한 게 어제인데 오늘 바로 도착할 정도면 편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출발했거나 약간의 텀 정도만 두고 출발했다고 봐야겠지.
"잘 오셨습니다. 프로트라인님."
세력 형성 초기에는 어디를 가든 스승인 나마흐와 같이 움직였던 그녀였지만 이제 어느 정도 군주로 자리를 잡고 몸이 아니라 머리를 굴릴 수 있는 능력도 키워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그녀 혼자서 이동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본론부터 말해도 될까요?"
프로트라인은 나를 보고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녀의 상상라서 눈치를 보는 것 보다는 내가 그녀에 비해서 너무나 작고 약했기 때문에 내가 무서워 하지 않게 배려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본론부터 바로 말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프레스티아 헬링, 그년이 미친 짓을 벌였습니다."
"네, 저도 압니다. 프로트라인님도 상당량의 식량을 잃어 버리셨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십니까?"
"굶어서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영악하게도 다음 추수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남겨놨더군요."
내 휘하에 있는 세력이라고 해도 프레스티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프레스티아가 공격해 들어올 거라는 걸 미리 말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보니 당연하게도 명목상으론 아렌 황녀 휘하, 실질적으로는 내 휘하에 있는 이들도 공평하게 프레스티아의 불 세례를 맞았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을 한 마디 올리자면... 아이데스님께서는 식량손해를 거의 보시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다행이 제 수하인 미네타 하이네스 경이 잘 막아주셨죠."
"혹시 제가 식량을 조금 빌릴 수 있겠습니까?"
프로트라인의 눈빛은 무거웠다.
지금 처럼 식량의 값어치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아무리 같은 세력권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식량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이 갈 수 밖에 없는 부탁이었다.
내가 들어줄 확률이 적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 정도 되는 가능성을 보고 겨우 말한 거겠지.
"나중에 같은 양의 식량으로 갚겠다는 개소리는 안 할겁니다. 빌린 것의 3배를..."
"어디에 쓰시려고요?"
내 물음에 프로트라인이 가능성을 느꼈는지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프레스티아 헬링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겁니다."
"프레스티아 헬링이라 ... 지금 상황에서 프레스티아 헬링응ㄹ 공격하는 건 감정적인 응어리를 해소하는 데에는 좋을 지도 모르겠지만 실리적인 측면에서 프레스티아 헬링을 공격하는 건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프레스티아가 이런 대규모 장난질을 쳤음에도 참교육 당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프레스티아 헬링을 공격하면 식량은 식량대로 소모하고 이길지 질지 확신할 수 없는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물론 이길 수도 있지만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사상자가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프로트라인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저 눈빛을 통해서 해석해 보자면, 그래서 지원을 해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거야? 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데 내가 그녀보다 상사였기 때문에 함부로입을 열지 못하고 내 눈치를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잇었다.
"식량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같은 양의 식량으로 갚으시면 됩니다. 대신 프로트라인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중앙파출신 세력이나 기존에 적대적이었던 이들을 공격하십쇼."
프레스티아를 공격하는 것은 대의 적으로 옳다.
한 번 악마같은 짓을 한 존재니까 다 같이 들고 일어나 밟아줘야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혀 실리적인 일이아니다.
실리를 찾기 위해서는 다 같이 가난한 지금 어떻게든 식량을 만들어 내서 주변에 있는 다른 영지를 공격해야 한다.
그 영지에는 식량이 없고 자신의 세력에게만 식량이 있다면 전쟁도 훨씬 편하게 진행할 수 있고 희생자의 수도 줄어든다.
그렇기에 몇몇 플레이에서 프레스티아가 악마루트를 탔는데도 다른 세력들이 제대로 된 견제를 하지 않은 것이다.
프레스티아를 견제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다른 이들도 프로트라인님과 마찬가지의 상황일 겁니다. 지금 최대한 크게 세력을 불리세요."
프레스티아가 제대로 악마 테크를 타면 세력의 수가 빠르게 축소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레스티아가 제대로 밀지 못했던 몇몇 세력이 다른 세력에 비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면서 주변을 정복해 나가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내가 주변의 다른 세력들을 밀고 그 크기를 키웠겠지만 바로 옆에 프레스티아가 있고 일단 아렌황녀를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정복 전쟁을 펼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지금 시기에크게 세력을 불려 놓을 프레스티아를 감당할 수 없게 되기에 다른 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했다.
"프레스티아 헬링이 제국 전체의 세력을 공격한 건 정말 간악한 일이고 반드시 벌 받아야 하는 일은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얼굴 근육의 움직임 정도는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얻은 세력으로 아렌황녀님에게 더욱 충성을 다하신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은 아렌황녀에 대한 충성으로 끝나는 내 말에 그녀는 마치 감동이라도 한 듯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역시 아이데스님은 진정한 충신이십니다!"
그래, 그놈의 진정한 충신 얘기는 몇번 째 듣는지 모르겠다.
이런 속마음을 감추며 최대한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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