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식량 독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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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지금 헬링 측에서 저희가 데리고 있는 황녀가 진짜 황녀가 아닌 가짜 황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모진 중 하나의 말에 아이작이 순간적으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진짜 황녀는 죽은 것이 뻔하니 그냥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아이작이 무거운 분노를 삼키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아무런 신념도 없는 년이군.'
1황녀를 구하기 위해서 제도로 달려왔다는 소리를 들을 때 까지만 해도 그가 프레스티아를 잘못 판단하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플레아가 밖으로 빠져나가자마자 1황녀가 진짜 황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제도를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면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너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체면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년이라는 뜻이겠지.'
그녀가 자신의 영지로 후퇴하면 아마 주변의 다른 영지에서 어마어마한 비난이 쏟아 질 것이다.
1황녀를 구하겠다는 명분으로 출진한 주제에 진짜 1황녀를 두고 가짜라고 우기면서 후퇴하면 어떡하냐.
프레스티아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냐.
등등 정말 각종 비난들이 쏟아 질 것이고 프레스티아의 세력은 그 모든 비난을 아이작이 데리고 있는 황녀는 진짜 황녀가 아니라는 식으로 답하면서 회피할 것이다.
여자 답지 않은 쪼잔한 모습에 아이작은 자신의 적수로 생각했던 인물의 평가를 몇단계나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서 이델라는 정말 뛰어난 여성이지.'
머리도 좋고 사람을 이끌어 내는 매력이 있으면서 철저하게 신념대로 행동한다.
절대로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고 한 번 결정지은 것은 절대 꺾지 않고 행동한다.
그 모습이 단지 이델라가 아이작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연기 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작이 크나큰 충격에 빠지긴 하겠지만 아이작은 이델라를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철저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겠나."
아이작은 바로 이델라를 불러 그녀의 의사를 물어 봤다.
"일단 1황녀는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오래 살려두어야, 프레스티아 헬링을 압박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황녀를 오래 살려두는 것은 우리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 하지 않았나."
"1황녀를 오래 살려두는 것도 문제지만 저희의 손으로 죽이는 것도 충분히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프레스티아 헬링을 압박하기 위해서 그녀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니 굳이 지금 당장 죽이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살려두어 유용하게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아서 하게."
아이작과 이델라의 관계는 플레아와 시에린과의 관계와도 흡사했다.
시에린 처럼 이델라 역시 아이작 세력의 큰 일들을 모두 도맡아 했으며 아이작은 그녀를 철저하게 신뢰했다.
플레아와 아이작이 다른 것은 자신의 세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마나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아이작은 이델라에게 모든 것을 완전히 맡겨 두었기 때문에 자신의 세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지 못했고 결국 이델라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움직이려고 하거나 아이작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려고해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나 플레아는 직접 전략을 짜지는 않아도 시에린이 세운 모든 전략을 보고 받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에린이 딴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시에린은 플레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뛰어난 인재였지만 그렇다고 권력욕이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플레아가 아이작 처럼 자신의 세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큰 관심이 없었더라면, 시에린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플레아의 세력을 쥐락펴락 했을 것이다.
어쩌면 플레아가 프레스티아와 이어지지 못하도록 몰래 조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플레아는 똑똑했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전부 맡기지는 않았다.
단순히 힘만 강한 군주인 아이작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힘만 강한 군주라도 어느 정도의 눈치가 있고 카리스마가 있다면 참모를 잘 휘어 잡을 수 있다.
당장 프레스티아가 그 예였는데 그녀는 뛰어난 머리를 가졌음에도 참모진의 작전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지만, 참모진들을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프레스티아의 말을 잘 따랐다.
이는 프레스티아가 뛰어난 카리스마와 강력한 처벌로서 수하들을 통제했기 때문인데 사실 아이작 역시 프레스티아 정도의 카리스마는 가지고 있었고 원작에서는 프레스티아 보다도 더 독한 처벌로서 세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지금의 상황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이델라의 매력수치가 너무 높아서 그 스스로도 이델라에게 감화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
시에린과 이델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그녀들의 지력 능력치였다.
시에린은 90대의 지력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델라가 가지고 있는 지력 잠재력은 80조차 되지 않았다.
70대 후반 정도만 해도 충분히 뛰어난 지력가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지만 단지 그 뿐, 한 세력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당연히 되지 않았다.
그녀는 프레스티아가 갑자기 물러날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대처법도 마련해 두고 있지 못했다.
이델라에게 다행인 것은, 그녀가 딱히 대단히 뛰어난 발상을 하지 못해도, 현상 유지 자체가 충분히 좋은 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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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혼란해 지네.'
날이 갈 수록 혼란해 지는 난세는 그 끝을 볼 줄 몰랐다.
얼마전에 프리스티스 헬링과 히스토리아가 대규모 회전을 한 번 벌였다는 데 그녀들에게 붙어 있던 수많은 소규모 세력들이 서로를 향해 깔을 빼어 들면서 난세를 고도화시키고 있었다.
이 와중에 제국에서 빠져나간다고 공표했던 아이작이 제도를 먹으면서 빠른 시일내에 아이작을 제도에서 몰아 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1황녀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영지를 떠났던 프레스티아는 1황녀를 구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다시 원래의 영지에 돌아온 것에 대해서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나한테는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
제국을 배신했던 아이작이 제도를 먹으면서 황실파를 필두로 제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는 데, 내 옆에 마침 프레스티아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견제하고 그녀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또 군사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졌다.
덕분에 나 다음으로 황실파에 진심인 프로트라인을 중심으로 제도를 되찾으려고 하는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세력은 제대로 출발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식량을 없애 버릴 것이니까.
수확철이 다가오자 시에린이 이전에 냈던 모략을 실행하기로 하였는데 워낙 대규모로 실행되는 작전인데다가 남의 세력인 프레스티아의 도움또한 받아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 전략을 매끄럽게 실행시키기가 참 어려웠다.
일단 하이네스에게 소원권을 사용하는 것 부터가 문제였는데 프레스티아에게 들키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그녀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했기에 최대한 은밀하게 하이네스에게 접근해서 우리의 뜻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와 동시에 이전에 중앙파 세력이었던 이들의 땅을 중심으로 몰래 식량을 구매하는 일을 진행했다.
중앙파 세력이 땅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근래에 제도에서 빠져나온 중앙파 귀족이 막 땅을 구입한 경우가 전부였기 때문에 땅의 주인이 귀족들에게 가지는 반감이 꽤 있는편이었고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이용해서 웃돈을 주고 구매하니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부하들을 통해서 식량을 구매한 뒤 주변의 창고에 박아 놓은 다음, 아이데스 상단이 그 근처를 지날 때 마다 천천히 가지고 올 계획이었다.
천천히라고 해도 마냥 느린 속도는 아닌것이 아이데스 상단도 그 사이에 세력을 상당히 늘려 이제는 마차 수십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정하고 식량을 옮기려고 하면 한 달 안에 전부 내 영지로 회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식량을 얻은 땅에는 몰래 불을 질러서, 우리가 가져간 것을 모르게 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시에린과 섀도스탭의 합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평범한 농지에서 벌어진 이런 이들을 알아 차릴 수 있는 세력은 단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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