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제도 점령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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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은 빠른 속도로 남하에 내려왔다.
아무래도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빠르게 내려올 수 있던 것으로 보였는데 얼마나 빠르게 행군했는지 전령이 도착한 뒤 하루만에 근처에 진을 쳐 놓는 수준이었다.
'일찍도 왔네.'
우리세력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다행인 일이었다.
프레스티아가 제도를 공격할 틈도 주지 않고 처들어 왔으니까.
"시에린 후퇴 준비는 모두 마쳤겠지?"
"물론이지, 시간이 3일이 넘게 주어졌는데 그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면 참모 실격이야."
우리는 아이작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동안 후퇴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대로 후퇴해서 내 영지에 돌아간 뒤 왜 제도를 수호하지 않고 후퇴했는가에 대한 변명만 착실히 한다면 더 이상 신경써야 할 것은 없었다.
"아이작한테 성을 내줄 수 있는 거 맞지?"
"걱정하지 마 어차피 후퇴하는 도중에 우리 성으로 먼저 들어오게 될 건 아이작일테니까."
후퇴도 후퇴지만 고의성이 하나도 들어나지 않는 선에서 아이작이 우리를 물리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너무 대놓고 아이작에게 성을 넘기려고 하면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고, 너무 제대로 움직이면 프레스티아가 제도를 먹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프레스티아는 기본적으로 나를 방해할 목적으로 제도로 찾아온 것 뿐이고 어지간하면 제도를 먹으려고 들지 않으려고 할 확률이 높았기에 아이작이 먹을 확률이 높긴 했지만 상대가 프레스티아다 보니 어떻게 행동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아이작은 정말 강한 무인이니까. 우리가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해도 홀로 들어와서 성문을 열고 나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후퇴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못하겠어?"
역시 아이작인가 싶었다.
에프로트와 프레스티아 역시 무력 잠재력이 100을 넘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 막 소드 마스터를 찍고 제대로 강력해 지려는 준비를 하는 와중이었는데 아이작은 그래도 원작에서 유일한 무력 100캐릭터의 위상을 지키는 듯, 남녀역전이 이루어진 지금에서도 압도적인 성장 속도를 발휘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아무리 남자 군주도 많이 나오고 남성 중에서도 영웅이 많이 나오는 시대라고는 해도 남자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진짜 상상도 못했어."
"아이작이 특이한거야."
다른 무력형 남성 영웅들을 하나 같이 무력이 깎이고 기사로서도 제대로 서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크리스틴의 오빠 정도는 마스터를 찍을 수 있으려나?'
원작의 크리스틴 또한 마스터의 경지에는 올랐으니 아무리 남녀역전이라고 해도 막바지에 이르기 전에 그녀의 오라비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그렇게 무리가 되는 기대는 아닐 것이다.
"그건 맞지, 참모진 중에는 남자가 좀 있어도 기사들은 전부 여자니까."
아이작이 제도의 북쪽에 자리를 잡은 것은 프레스티아와 내가 제도에 도작한 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정말 빠른 속도로 제도에 도착한 것인데 그는 제도에 도착하자 마자 거칠게 우리를 공격했다.
그는 표면적으로 제국을 탈퇴한 이었고 우리 세력은 그에게 비난을 날린 관계기 때문에 바로 공격을 해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신단 하나 보내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시에린의 말대로 처음엔 아이작 혼자서 우리에게 덤벼들어 성문을 열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의 무력 능력치는 90이 넘어있었다.
작정하고 덤벼들면 그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성문만 열고 돌아가려고 하는 아이작을 잡아다가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되겠네.'
애초부터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 하고 후퇴하러 가는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프레스티아와 아이작에게서 가장 먼길이라고 할 수 있는 길로 천천히 후퇴하니 아이작이 제도를 장악하는 것이 보였다.
후퇴하고 있는 우리를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수가 될 수 있겠지만 전투에서 패배한 뒤 후퇴하는 게 아니다 보니 그에게도 우리의 전력이 가볍게 보일리가 없었고 성벽의 밖에서는 프레스티아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제도를 먹는 것으로 만족하고 우리가 후퇴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
프레스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뒤를 쫓아서 공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뒤에 아이작이 대기하고 있는데다가 가장 중요한 1황녀가 아직 제도 안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을테니 그녀를 내버려 두고 우리를 따라 오는 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안정적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너무 깔끔하게 후퇴해서, 다른 세력들과 짜고 친 거 아니냐는 의심을 듣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내 영지로 돌아가면 일단 다른 동맹원들한테 왜 후퇴했는지 해명부터 해야 겠네.'
충분히납득 가능한 이유를 준비했으니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제 슬슬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시에린이 준비한 모략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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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이델라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깜찍한 짓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이델라의 눈은 1황녀가 갇혀 있는 방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작의 세력이 제도에 도달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1황녀를 몰래 제거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1황녀가 멀쩡히 살아 있는것이다.
단순히 멀쩡히 살아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세력들에게 1황녀가 살아 있다고 광고 까지 해 버렸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1황녀를 죽일 수 있는 명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몰래 죽이고 우리가 죽인 거 아님, 을 시전해도 되고 이미 제국과 다른 노선을 걷기로 한 이상 이제와서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손으로 둘 밖에 남지 않은 황실의 핏줄을 죽이는 것 보는 플레아의 손에 있을 때 정리 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차라리 죽이지 말까?'
그녀의 입장에서도 1황녀가 죽는 것이 더 나은 일이었지만 플레아가 괘씸해서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1황녀가 죽지 않으면 아렌 황녀가 완벽하게 바로 서는 것에 제동이 걸릴 테니 어느 정도의 손해와 정신건강의 나빠짐을 감수하고 살려두는 것도 충분히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더 오랜 시간 동안 프레스티아랑 싸워야 한다는 거지."
프레스티아가 1황녀를 위해서 군사를 들었다고 믿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일단 명분을 그걸로 세웠기에 살아있는 1황녀를 손에 들고 있는한 계속해서 그녀들과 싸워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생각하는 중이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이델라의 말에 아이작이 알았다는 듯 한발자국 물러나 섰다.
이델라는 이 감각이 참 좋았다.
아이작이 명목상 세력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아이작이 남자치고는, 아니 인간 치고는 아주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매력에 완전히 감화 되어 그녀가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랐다.
여기서 말하는 매력이란 여자로서의 매력이 아니라 군주로서의 매력을 일컷는 말이었다.
아주 강력한 기사가 자신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따르니 이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일단 1황녀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봐요."
"알았어."
이델라를 바라보는 아이작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 편 프레스티아도 1황녀가 살아 있다는 것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것은 매한가지였다.
"1황녀가 살아 있는 한 함부로 후퇴할 수가 없겠네요."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도를 차지하고 있는자가 플레아였다면, 자신도 손해를 입고 플레아에게는 더 큰 손해를 입힌다는 생각으로 계속 공격하는 척을 하는 게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녀를 막고 있는 자들은 플레아가 아니라 아이슨이었다.
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해만 되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충분히 대응책을 짜 놨을 거라고 믿는다. 아이작이 갑자기 전쟁에 합류한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나는 참모진들을 믿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굳이 아이작이 아니더라도 아이데스가 1황녀를 죽이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려고하는 모습을 보이면 쓰려고 했던 전략이 있으니까요."
"그 전략도 신통치 않으면 이번엔 네가 가장 아끼는 노예를 죽여 버릴 테니 각오하도록."
"프레스티아님도 충분히 마음에 드는 전략이실 겁니다."
프레스티아는 가든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1황녀는 지금부터 죽은 겁니다."
"하지만 제도 안에서 멀쩡히 살아 있지 않나."
"그 황녀가 진짜 황녀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죠? 우리가 아니라고 우기면 되는 겁니다."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참으로 강력한 전략에 프레스티아는 낮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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