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275화 (275/312)

〈 275화 〉 제도 점령전­4

* * *

'이걸 이기네.'

루나라와 라이넬은 근본적으로 무력의 잠재력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질적인 차이를 따지고 보면 5정도 밖에 안되겠지만 그 정도 차이는 소드 마스터 안에 만들어져 있는 하나의 벽을 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갈라 놓는 수준이었다.

고점이 루나라가 높다고 해서 지금 당장 라이넬이 루나라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해지는속도에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라이넬이 루나라를 이길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을것이다.

"라이넬 경의 검술은 정말 뛰어나군요. 저렇게까지 뛰어난 검술을 사용하는 검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 도 본적이 없습니다."

크리스틴이 이렇게 극찬하는 것을 보면 라이넬의 검술이 정말 뛰어난 수준이기는 한 모양이다.

"라이넬!"

"플레아!"

라이넬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나는 그녀를 반갑게 맞아 줬다.

그녀가 승리할 거라는 기대는 하나도 안하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루나라를 이긴 것이 기쁘지 않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친구가 무력 재능의 차이를 어느 정도 매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냈다는 것도 기뻤으며 나 처럼 루나라가 무조건 이길 거라고 예상하고 있을 게 분명한 프레스티아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도 기뻤다.

내가 기뻐하면서 그녀를 맞아 주자 그녀 역시 기쁜 마음을 나에게 다가왔다.

"진짜 잘했어."

"플레아 네가 나를 믿어주고 전장에 내보내 줘서 이길 수 있었던 거야."

라이넬도 많이 기쁘긴 했나 보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무조건존대를 해야 한다고 하는 애가 나한테 당당하게 반대를 하고 있었으니까.

"너라면 이길 줄 알았어."

입에 침하나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한 뒤 그녀를 꼭 안아 줬다.

아무리 라이넬이 계속해서 우위를 거두다가 승리했다고 해도 루나라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축 늘어진 녹초 처럼 변해 있었다.

"오늘은 푹 쉬어. 어차피 가장 처음 벌어진 결투에서 승리를 거둔 만큼 상대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거야."

"결투랑 상관없이 열심히 싸우고 싶었는데... 힘이 하나도 없네..."

라이넬을 부축해 주기에는 더 없이 작은 키기는 했지만 그녀를 천천히 부축해서 그녀의 보금자리로 데려다 줄 수 있었다.

이곳은 성 안이었기 때문에 굳이 막사를 세우지 않고 이미 세워져 있는 건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걸로 일단 아이작이 올 때 까지의 시간은 벌었나?'

****

"루나라가 졌다고?"

"네, 라이넬의 검술이 저희의 생각보다훨씬 더 뛰어난 모양입니다."

벨리아의 말에 프레스티아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상황이 꼬이는 군..."

프레스티아의 대 전략에서, 라이넬과 루나라의 결투는 반드시 루나라가 승리했어야 하는 결투였다.

상대에서 크리스틴이 나왔다면 상관 없었다.

이미 완숙한 마스터를 상대로 루나라가 패배하는 건 사기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동급이라고 불리는 라이넬과 루나라의 결투에서 루나라가 패배한 것은 뼈 아픈 일이었다.

벨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루나라가 라이넬 보다 몇 수는 앞 서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데 그 재능을 가지고도 패배했다는 건 프레스티아가 쉽게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물론 만약이라는 일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놓긴했지만 루나라가 승리했을 때 보다 훨씬 이득이 적은 방향으로 전쟁을 끌어나가야만 했다.

"어쩔 수 없지. 루나라에게는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전해라, 루나라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참모진이 전략 분석을 잘못해 놓은 거니까."

루나라는 정말 열심히 단련했다.

부하들을 빡세게 굴리는 프레스티아가 보기에도 저건 좀 너무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단련해서 굉장히 빠른 시기에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익스퍼트의 경지에서 마스터의 경지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리긴 하는데 하늘이 내려주는 경지라고 불리는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 오래 걸렸다는 이유로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정말 잘해 주었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루나가 죄가 없다면 과연 누구한테 죄가 있을까?

"가든을 불러 오도록."

프레스티아가 시리도록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당장이라도 사람 하나 잡을 듯 시린 말투에 옆에 서 있던 벨리아가 덜덜 떨며 밖으로 나갔다.

"부르셨습니까?"

프레스티아가 자신을 불렀다는 말을 분명히 들었을텐데도 꽤나 담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든의 모습에 프레스티아는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가든이 저런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프레스티아를 충분히 넘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매력적인 변명을 가지고 왔다는 뜻이었다.

"루나라가 라이넬과의 결투에서 패배했다. 참모진들의 분석으로는 루나라가 라이넬에게 패배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라이넬이 검술에 일가견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루나라가 아니라 벨리아를 내보냄으로서 확정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편이 더 좋았을텐데 말이야. 설마 상대편의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기사가 출전할지도 몰랐던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갑자기 전해진 급보에 의해 전략을 긴급히 수정해야 했기에 루나라를 내보냈습니다."

"급보라면 아이작이 제도로 달려오고 있다는 걸 말하는 건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정말 따끈따끈한 소식이었다.

아예 제국이랑 따로 살기로 한 이가 왜 갑자기 제도에 눈독을 들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제도 탈환전에 발을 들이겠다는 소식이 몇시간 전에 들어왔습니다.

"맞습니다. 삼파전은 1대1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뜁니다. 벨리아를 보내서 라이넬을 확실하게 누르는 것 보다는 루나가 라이넬에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서 주군의 화끈한 면모와는 다른 신중하게 움직일 명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 적어도 루나라와 라이넬이 싸우기 전에는 루나라의 패율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근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루나라의 승률이 더 높다고 점쳤다... 이전까지 어떻게 정보를 분석했는지 모르겠군. 가든, 네가 세운 전략은 충분히 훌륭하고 잘못된 정보를 금세 수정하고 새 정보를 이용해 적절한 전략을 짠 것은 충분히 칭찬할 만한 사안이나 라이넬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찾아 내지 못한 죄는 크다."

프레스티아가 험악한 표정으로 가든을 바라보자 가든은 잽싸게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프레스티아님."

"참모진 중에 어떤 이가 제대로 일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관리감독 하지 못한 너의 책임도 있다. 다만 그 책임으로 너에게 직접 벌을 내리는 것은 나도마음이 아픈 일이니 내가 저번에 너에게 하사한 노예 중 둘을 죽이는 것으로 그 벌을 대신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가든의 마음 속으로 피눈물이 떨어졌다.

어떻게 구한 미소년 노예였는데 그 노예들 중 두 명이 프레스티아의 손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일단 네 노예들을 데리고 오도록."

"알겠습니다."

가든이 움직여 자신의 컬렉션 중에서도 그나마 떨어지는 노예 둘을 데리고 움직였다.

"주...주인님?"

"닥쳐라."

두 노예는 카리스마 넘치는 가든의 모습에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가든에게 이끌려 프레스티아의 막사로 끌려갔다.

­짜악!

프레스티아가 노예 하나의 목을 잡아 그대로 뺨을 내려쳤다.

"컥!"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프레스티아의 손짓에 노예는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절명해 버렸다.

'역시 남자들은 시시한 존재야.'

­짜악!

그녀의 가벼운 손짓에 두 명의 노예가 죽어 버렸다.

역시 그녀가 인정할 수 있는 남자는 단 하나, 플레아 밖에 없었다.

난세가 심화되면 서 남성 군주들도 천천히 이름을 날리는 중이긴 했지만 그 중에 최고는 플레아였다.

"그러면 이만 가보도록."

"알겠습니다. 주군."

가든이 프레스티아의 막사를 나서면서 이를 빠득하고 갈았다.

노예 둘을 잃어 버린 분노가 끝까지 차 오른 것이다.

'개같은 새끼들.'

그녀가 분노를 표하는 상대는 프레스티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군주로서 제대로 일하지 않은 참모진들에게 벌을 내린 것 뿐이었다.

'라이넬에 대해서 조사했던 놈이 아마 남자였지?'

그녀가 자신의 막사로 이동해 채찍을 꺼내 들었다.

프레스티아가 군주의 입장에서 그녀가 참모장으로서 제대로 일하지 않은 것을 벌 준 것 처럼 그녀 역시 참모장의 입장에서 제대로 일하지 않은 참모를 벌 줄 차례였다.

'실컷 매질한 다음에 노예로 삼아 주마.'

참모일을 할 때는 정말 뛰어난 여자지만, 사생활로 들어가면 악마라 불리는 가든의 눈이 밝게 뜨여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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