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제도 점령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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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아와 아이작이 동시에 제도를 노린다는 말에 수많은 황실파들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전에 1황녀와 전쟁을 벌일 때에는 황실파에서도 세력이 약한 자들 까지 어떻게든 숟가락이라도 한 번 얹어 보기 위해서 나에게 손길을 내밀었지만 프레스티아와 아이작이 동시에 제도를 노리고 있는 상황은 그보다 몇배는 더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숟가락을올리려고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숟가락 얹으려고 찾아왔다가 팔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반대로 말하면 지금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자들은 진짜로 나와 같이 갈 수 있는 믿을 만한 세력들이라고 해석해도 됐다.
'그래도 지원을 받을 필요는 없지.'
내가 몰래 후퇴한다는 것은 기밀이기 때문에 다른 동맹들한테 이야기 해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티를 낼 수는 있다.
최소한 나중에 패퇴한 게 아니라 일부러 물러난 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간은 마련해놔야 했으니까.
'적당히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 보내면 당장은 안심하지 못해도 나중에 일이 있을때 진짜로 생각이 있었구나 시퍼 하긴 하겠지.'
모든 지원 요청을 물리고 나와 상의도 없이 일단 병력을 끌고 나에게 다려 오는 프로트라인도 전령을 통해 물려 보낸 뒤 프레스티아와 전초전을 치뤘다.
내 예상 처럼 그녀는 선전포고를 한지 4시간정도 뒤에 우리 쪽으로 기사하나를 보냈다.
"루나라, 우리 진짜 오랜만에 만난다. 안 그래?"
"적과 할 이야기는 없다."
"그래도 친구인데 진짜 한 마디도 안 나눌거야?"
루나라는 라이넬의 말에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검을 꺼냈다.
이전에 만났을 땐 서로 신경전을 벌이긴 해도 친구라는 느낌이 있었는 데 이제는 자신을 완전한 적으로 보고 있는 루나라의 모습에 라이넬은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래, 우리는 적이지."
라이넬이 루나라를 따라서 검을 들었다.
상당한 수준의 긴장감이 서로의 사이에 감돌았다.
"먼저 공격할 거야?"
"선공은 양보하도록 하지."
이는 둘 사이의 결투였다.
앞으로 한 동안 치뤄질 전쟁에서 어느 세력이 더 우위를 갖는가를 결정한 위대한 결투였다.
결투에 불문율에 맞춰 서로가 죽을 걱정은 없었지만 그녀들의 어깨에는 자신의 진영의 사기라는 그녀들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목숨이 걸려 있지 않았다고 해도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었다.
"후우..."
라이넬의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라이넬은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다.
루나라 또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문이 없다가 갑자기 마스터의 모습으로 나타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루나라의 경력이 짧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라이넬보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오래 됐다면 라이넬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라이넬은 이전에 루나라와 벨리아와 어느 정도 가깝게 지낼 때 두 기사 모두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작 87의 무력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와 달리 루나라와 벨리아는 모두 90을 넘는 무력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재능을 따지고 보면 그녀들에게 딸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차이를 라이넬은 단지 노력으로 극복했을 뿐이었다.
플레아 아이데스라는 군주의 아래에 들어가 어떻게든 그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수련을 해왔기 때문에 아카데미 시절에 루나라를 이기는 업적을 세울 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우위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을까?
플레아가 구해준 갑옷이 그녀의 무력을 보조하고 있었지만 루나라 역시 비범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서로 장비 탓을 할 수 없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값옷이었다.
'내가 질지도 몰라. 하지만.'
라이넬은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없었지만 자신을 루나라와의 결투에 내보낸 플레아의 판단에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위대한 주군이, 질 승부에 자신을 꺼낼리가 없었다.
에프로트는 명목상 남의 세력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꺼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에게는 크리스틴이라는 강력한 검이 있었다.
그 검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라이넬이 루나라를 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 분명했다.
"간다."
루나라가 덤덤한 말과 함께 라이넬에게 검을 휘둘렀다.
소드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에 감싸져 있는 그녀의 검은 그녀의 간결한 말만큼이나 빠르고 정확했다.
캉!!
라이넬역시 오러 블레이드를 꺼낸 뒤 그녀의 검을 막았다.
'역시 내가 밀리네.'
서로의 검을 섞는 순간, 라이넬은 직감할 수 있었다.
루나라가 라이넬보다 더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었고 오러 블레이드의 순도도 더 높았다.
하지만 라이넬은 포기 하지 않았다.
자신 보다 더 강한 검사에게 승리를 따 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카강!
그녀에게는 루나라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슈륵...캉!!
라이넬이 자연스럽게 검을 흘리고 루나라를 몰아치자 루나라는 다급하게 검을 움직여 라이넬의 검을 막았다.
참으로 희안한 일이었다.
루나라의 검이 라이넬의 검보다 미세하게 빠르고.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나 라이넬의 검이 더 먼저 루나라에게 다았다.
라이넬이 공격을 성공할 때 마다 루나라는 쓸 데 없이 마나를 소모해서 라이넬의 검을 막을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소모되는 마나의 비율이 둘간의 실력의 차이보다 더 컸다.
루나라는 그제서야 라이넬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
라이넬이 루나라를 천천히 밀어 붙이는 모습을 보이자 성벽 에서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과 참모진들이 환호성을 내 뱉었다.
'대단한데?'
플레아 역시 라이넬의 모습에 감탄했다.
라이넬은 플레아가 자신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해서 결투에 내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플레아는 라이넬이 이길지 질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패배해서 후퇴할 전투였기 때문에 라이넬이 지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단지 루나라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기사였기 때문에 지금 전투에서 어느 정도 비등한 모습만 보여도 라이넬 역시 그만큼 고평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라이넬을 보내서 루나라와 결투를 치루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이넬이 뛰어난 검술을 사용해 루나라와의 결투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플레아 입장에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기면 더 좋지 뭐.'
비등하게 싸우다가 아깝게 져도 라이넬이 대단한 고평가를 받을 텐데 아예 이겨 버리면 그 임팩트가 훨씬 클 것이 틀림 없었다.
캉!
검과 검이 맞붙을 때 마다 라이넬이 조금씩 더 이득을 봤다.
그 조금의 이득이 쌓이고 쌓여 루나라가 가지고 있던 마나가 라이넬에게 역전당했다.
루나라가 결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수를 내야만 했다.
이대로 싸워봤자 라이넬의 승리를 빛내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카가가가강!!
루나라가 마나를 검에 밀어 넣은 뒤 라이넬을 내리쳤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검격이 라이넬의 검을 내리찍자 라이넬의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큰 충격이 가해졌다.
'아예 결판을 내자는 건가?'
기술로는 라이넬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루나라가 힘대 힘의 대결을 신청한 것이었다.
서로의 검을 맞대고 가용가능한 모든 마나를 사용해서 상대를 짓누르는 것.
검술을 배운 기사들끼리의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볼품없긴 했지만 루나라는 라이넬이 힘 싸움을 받아주면 이득이었고 힘 싸움을 받아 주지 않는다 해도 이후의 일을 풀어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싸움을 건 것이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고.'
라이넬이 검에 힘을 주고 루나라의 힘을 버텼다.
루나라가 더 강한 마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라이넬이 그녀의 마나를 충분히 빼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할만한 싸움이었다.
만약 라이넬이 밀릴 것같은 모습을 보이면 바로 힘싸움을 관 둔 뒤 다시 검술로 풀어나가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라이넬에게도 그리 부담이 없는 싸움이었다.
카가각!
서로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가 주변에 엄청난 수준의 마나를 뿜어냈다.
일반 병사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만으로도 죽어버릴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강인한 기사인 그녀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쩍...쩌적!
서로의 오러 블레이드가 맹렬히 빛을 발하다 루나라의 오러에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결국 완전히 금이 간 루나라의 오러 블레이드가 산산히 조각나고 말았다.
슥
"내가 이겼지?"
아직 맹렬히 빛을 바라는 라이넬의 검의 모습에 루나라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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