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 프레스티아의 참전
* * *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상대가 약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1황녀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긴장을 할 필요 조차 없는 일이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1황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의 일이었다.
1황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 후 나는 1황녀를 찾아서 암살해야만 한다.
어지간하면 바닥을 굴러 다니다가 스스로 죽어 버릴 것 같긴 한데, 만에 하나라도 살아 남게 되면 아렌황녀가 죽은 이후 내가 정권을 잡는것에 방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섀도 스탭을 사용해서 확실히 죽이고자 했다.
'그리고 아이작과의 전쟁을 준비해야지.'
어차피 패배할 전쟁이라서 잘 후퇴할 준비만 하면 됐지만 겉으로 보이기에는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병사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아렌 황녀님의 이야기도 써내려가고 후퇴를 하면서도 아이작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놓는 등 다양한 것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혹시나 아이작과 전쟁을 벌이는 중, 아니면 아이작이 우리에게 제대로 된 공격의 의사를 표시하기도 전에 다른 세력이 참가할 확률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또한 대비해 놓아야 했다.
이미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있는 전략안이 있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대부분의 참모진들이 전장에 나간 만큼 시에린과 둘이서 전략회의를 하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이 년이 둘 밖에 없다고 자꾸 장난질을 쳐닸다.
쓰담쓰담.
"하지 마라."
"플레아, 머리를 쓰다듬어 지는 게 싫으면 일단 내 무릎에서 내려간 다음에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허리를 감은 팔이나 치우고 말하지?
시에린은 무인이 아니라 참모다 보니 나보다 머리 몇개는 더 큰 엄청난 키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자인데다가 저주까지 받은 나보다는 월등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를 꼭 안자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 일단 이 팔 좀 풀어주지 않을래?"
내가 시에린의 팔을 잡으면서 말하니 시에린이 해맑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플레아 껴안고 있는 거 기분 되게 좋거든."
히히하고 웃고 있는게 속으로는 '프레스티아 헬링은 이런 거 해본 적 없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였다.
"헤유... 그래 계속 껴안고 있었라."
자세는 조금 남사스러웠지만 하는 이야기 자체는 매우 진지했다.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일어날 수 있고 각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아주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미 완벽하게 짜여진 전략이라고 해도 계속 검토해 보면 더 나은 전략을 찾을 수도 있었고 세부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까에 대한 메뉴얼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메뉴얼이라고 해도 계속 바라보는 게 의미가 없진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이 이후의 대비는 지금 하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일에 따라서 그때 그 때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전략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 찾아와 있었다.
내 병사들이 지금쯤 1황녀와 싸우고 있었지만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플레아, 오랜만에 같은 방에서..."
"뭐가 오랜만이야. 우리 같은 방에서 잔 적 없거든?"
"진짜 손만 잡고 잘 테니까 한 번만."
"됐어."
시에린이라면 저렇게 말한 뒤 진짜 손만 잡고 잘 인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시에린과 같은 방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적어도 프레스티아와 결혼을 하고 정식으로 잠자리를 가진 다음에야 첩에게도 기회가 돌아가겠지.
"치이...알았어. 더 이상은 강요 안할게."
그렇게 둘이서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일이 터졌다.
"큰일 났습니다! 프레스티아 헬링이 1황녀에게 붙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령의 말에 나와 시에린 모두 시간이 멈춘 듯 딱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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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장으로 나오는 구만.'
마법이 강하게 적용되어 있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니 전선까지는 하루만에 움직일 수 있었다.
후속대는 일반적으로 행군하더라도 수뇌부는 빠르게 이동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마차에 나와 3대장들을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전선으로 달려왔다.
"프레스티아 헬링이 1황녀한테 합류한다니... 이건 상상도 못했는데."
상상도 못했다는 말과는 다르게 우리는 프레스티아 헬링이 전장에 합류할 것을 상정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시에린이 말하는 상상도 못했다는 말은 프레스티아 정도 되는 세력이 1황녀에게 합류하면 그 파장이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어서 일단 전략을 세워놓긴 했는데 그 전력을 실제로 사용할 줄은 몰랐다는 의미에서 하는 소리였다.
"나도 진짜 상상 못했어."
프레스티아는 원래 중앙을 잘 노리지 않는다.
외곽에서 충분히 힘을 키운 뒤 제도고 뭐고 일정량 씩 계속 확장하면서 힘을 기르는 것이 그녀가 움직이는 방식이었는데 갑자기 1황녀에게 합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나를 엿 먹이려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 밖에 없었다.
내가 근래에 들어 자꾸 그녀에게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고, 에프로트를 데리고 오는 등의 일들을 행하기도 했기에 단지 나 하나 엿 먹이기 위해서 1황녀에게 합류했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제대로 합류할 생각 자체가 없는 걸지도 몰라.'
그녀가 1황녀에게 합류 하겠다고 한 시점은 우리의 군대와 1황녀의 군대가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의 일이었다.
그제서야 병사를 이끌고 제도로 달려오겠다고 하는 데 그녀들이 1황녀와 합류 할 때는이미 패기가 짙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1황녀를 지키는 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도를 먹는 다면, 그녀의 세력에게 그렇게 불리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을 쓸 거면 프리스티스 헬링이 쓰지 프레스티아가 쓸 법한 전략은 아니라는 거야.'
제도를 먹으면 결국 신경 쓸 것이 많다.
실제로는 아니더라도 결국 표면적으로는 1황녀의 밑에 있는 것 처럼 모습이 그려질 터인데,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무제한 확장을 할 수 없게 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거지?'
내 고민은 참모진들에 의해서 종식되었다.
프레스티아가 왜 하필 지금 타이밍에 들고 일어났는가를 추측해 보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우리가 1황녀를 몰아 낸뒤 바로 우리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모진들의 말을 증명하듯 그녀는 병사를 굉장히 느린 속도로 추스리고 있고 아직 출발조차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들려올 정도였다.
참모진들의 판단과 중앙을 먹기 싫어하는 프레스티아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그녀는 중앙을 먹은 나를 끊임 없이 괴롭히면서 더 이상 확장을 힘들게 하기 위해서 1황녀에게 합류하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나는 아이작한테 패배해서 원래 내 세력으로 돌아갈 생각인데.'
프레스티아가 여기까지 예상해 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 쪽에서도 아이작이 전장에 합류하는 것 까지는 염두에 두고 있어도 우리와 아이작 세력이 서로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않고 어떻게 보면 평화로울 정도로 깔끔하게 물러날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테지.
프레스티아 보다 더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내 세력의 참모진들이 즉석에서 전략을 짜내기 시작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다양한 메뉴얼들을 짜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 메뉴얼들을 조합하는 것으로 지금의 상황에 옳게 적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세워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전략은, 아이작과 프레스티아끼리 전쟁을 시키는 것에 중점을 맞추고 있었다.
당장 죽이기로 했던 1황녀를 포로로서 아이작에게 넘긴다면 일단 1황녀에게 합류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던 프레스티아의 입장에선느 1황녀를 구하기 위해서 아이작을 공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둘이서 신명나게 싸우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조심히 후퇴하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는데 어떻게 1황녀를 자연스럽게 포로로 넘길지, 최소한의 피해로 후퇴할 수 있을 지, 그리고 우리가 후퇴하면서도 후퇴할 명분을 바로 세울 수 있을 지 등은 참모들이 생각해야 할 내용이었다.
'일단 1황녀세력을 빠르게 박살을 내야 하나?'
프레스티아의 참모진이 괜히 이상한 전략을 짜서 1황녀와 같이 농성을 하면 곤란해 졌기 때문에 3대장 외의 다른 수하들을 키우기로 했던 생각을 물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1황녀의 세력을 몰아 내기로 결정했다.
"라이넬, 오늘은 호위 기사 말고 전장에서 싸워."
"알겠습니다. 주군."
"미네타, 너도 오늘은 배틀 메이지로 활약하길 부탁할게."
"라져!"
"내 자리는 여기!"
내 옆에 내 어깨에 팔꿈치를 올리는 시에린에게 너도 그냥 나가서 싸워! 라고 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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