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아렌 황녀의 새 스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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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아 한은 라일라를 키운 뛰어난 전략가이자 참모였다.
한 때 황실파의 가장 뛰어난 두뇌로 활약했던 그녀는 황실파를 견제하고자 하는 중앙파 귀족의 세력에 밀려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로 유배를 당했는데 그곳에서도 황제를 도울 수 있는 인재를 기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렇게 여생을 보내면서 길러낸 인재가 하필 야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겉으로는 일단 아렌 황녀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내 밑으로 들어와서 어느 정도는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 처럼 보였다.
근래에는 아렌황녀도 자리를 잡아서 안정적인 마음으로 소일 거리나 하면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녀 정도로 뛰어난 인재가 벌써부터 휴식을 취하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를 어떻게 꼬셔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그녀에 비해서 한참 을에 있는 입장이어서 어떻게 영입할 지는 아예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생각을 가진 다는 것 자체가 김칫국을 마시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예 생각도 안해두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갑자기 그녀를 꼬시려고 하니 마땅히 생각이 나는 게 없었다.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그녀는 강한 권력욕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남자를 밝히지도 않으며 돈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냥 아렌 황녀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고 보내면 바로 올 걸요? 지금은 아렌 황녀가 다음 황제가 되는 게 거의 확실시 된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황녀를 자기가 직접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자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빼다가 결국 못 이기고 넘어올 겁니다."
라일라의 말이 맞았다.
이레아 한은 아렌 황녀의 스승이 되어 달라는 편지를 받고 자기는 실력이되지 않는다면서 몇번 튕기더니 세번째 편지를 보냈을 때가 되어서야 알겠다면서 금방 찾아오겠다고 편지를 남겼다.
두 번이나 거절하고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었지만 이레아 한 급 되는 인제를 고작 편지 세 번에 영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남는 장사라고 봐도 되었다.
'생각보다 엄청 쉬운 인재군.'
심지어 편지에 최대한 빨리 오겠다는 말도 적혀 있었으니 아마 금방 올 것이다.
"플레아, 밖에 자기가 이레아 한이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찾아왔는데?"
"벌써 찾아왔다고? 편지가 어제 왔는데?"
"편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출발했나보지."
"동물로 보낸 편지인데 동물만큼 빠르게 올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비정상적인 속도에 의문을 가지고 시에린을 따라 밖으로 나가니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의 이레아 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머리를 단정하게 내린 머리카락의 모습만 봐도 그녀가 이레아 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선배님이라니요. 플레아 아이데스님은 아렌 황녀님의 대부격인 분이십니다. 저 같은 이에게 굳이 말을 올릴 필요 없이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황실파를 위해서 발걸음하신 분이신데 제가 어떻게 감히 말을 내리겠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에 대한 공치사를 나눈 뒤 자리를 옮겨 안으로 향했다.
"오랜만이다. 라일라."
"오랜만에 봽습니다. 스승님."
이레아 한은 자신의 제자인 라일라를 아주 대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기운이 있던 자신의 제자가 이제는 황녀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는 나의 수하가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저에게 아렌 황녀님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선배님의 제자인 라일라또한 훌륭하게 하던 일인데 그녀의 스승이신 선배님께서 할 수 없으실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으니까요."
"제 제가 지금까지 아렌 황녀님을 가르쳤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아줌마 입꼬리 올라가는 거 보니 분명히 알고 있던 게 분명했다.
아마 엄청 기쁘겠지 자기 제자가 황제가 될 사람을 가르쳤다는 거니까.
"네, 다만 이제 라일라에게도 할 일이 생겨서 다른 곳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으니 그녀를 대신해서 아렌 황녀님을 가르쳐주실 수 있으신 분으로서 선배님을 모시게 된 겁니다."
나는 그녀가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시간이 없으시거나 하기 싫으시다는 이유로 제 제안을 거절하시는 것에는 어떤 첨언도 달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실력이 되지 않는다. 선배님께는 맞지 않는 자리다. 라는 말은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아까 말씀드렸다 시피 선배님의 제자인 라일라 또한 훌륭하게 해낸 일이고 선배님외에 적임자도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뒷방에서 썩어 가던 이에게 다시 한 번 황실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히 받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여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뒷방에서 썩어 간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젊지 않아?'
아무튼 나는 상당히 수월하게 이레아 한을 영입할 수 있었다.
내 세력에 완전히 복속되어 있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당분간은 아렌황녀를 가르치는 데 뛰어난 효율을 발휘할 것이며 시간이 지나서 아렌황녀가 목숨을 잃으면 나에게 합류할 확률도 높았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 일입니다. "
"아렌 황녀님을 봽고 싶은 데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내어드린 숙제를 하고 계실 거에요."
라일라의 안내에 따라서 아렌황녀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니 어린나이에 맞지 않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아렌황녀가 보였다.
"아이데스님!"
그녀가 우리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고 시선을 돌렸는데 아예 새로운 사람인 이레아 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나를 쳐다봤다.
나에게 집착하고 그녀의 아래로 복속 시키려 했던 그녀의 나쁜 성정은 어느새 거의 죽어 있었다.
가끔은 그녀가 성장하면서 그런 성질이 완전히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아렌 황녀님."
나에게 달려드는 아렌황녀를 가볍게 안으며 답했다.
높은 무력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렌황녀는 정말 빠른 속도로 자랐다.
무력이 80정도 되는 이들만 해도 나보다 머리 두 개에서 세 개 이상 큰 키를 가진 자가 수두룩 했기 때문에 아렌 황녀 역시 최소 그 정도의 키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는데 아직 어린인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내 키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보면 장래가 참으로 기대됐다.
"옆에 계신분은 누구신가요?"
그녀는 나에게 안기고 나서야 옆에 서 있던 이레아 한을 발견했는지 다급히 나에게 떨어지면서 물었다.
"제 스승님이십니다. 앞으로 아렌 황녀님의 행정 교육을 맡아 주실 겁니다."
"제 행정교육을요?"
"네, 제가 근시일부로 다른 곳에 파견을 나가게 되어서 말입니다."
아렌황녀가 이레아 한을 빤히 바라봤다.
"알았어요. 앞으로 제 스승님이 되어 주신다는 거죠?"
"부족한 실력으로라도 아렌황녀님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건 저에요. 아직 알고 있는 게 너무 부족한 만큼 대스승님이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대 스승님이라니, 저를 이르시는 겁니까?"
"네! 스승님의 스승님이시니까. 대 스승님이시잖아요!"
이레아 한이 웃으면서 아렌 황녀를 내려다 봤다.
"지금 당장 시간이 되신다면 가벼운 교육을 진행하고 싶습니다면 어떻게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배움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니까요."
이레아 한은 아렌황녀에게 다가가 그녀가 정확히 어디까지 배웠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정말 잘 배우셨습니다만 그 부분은 황녀님을 가르친 제 제자가 잘못 가르쳤습니다. 아랫사람에게는 되도록이면 권위 있고 튼튼한 모습을 보이는 게 좋습니다."
"스승님? 저한테는 아랫사람들이랑 가까이 지내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네가 주군을 모시는 참모로 성장할 테니까 한 말이었다. 아렌황녀님은 한 명의 군주로 성장하실 텐데 당연히 너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라일라는 이레아 한의 말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군주로서의 자세와 참모로서의 자세는 다르긴 하지.'
근데 과연 라일라가 그걸 몰랐을까?
나야 모르는 일이다.
"아이데스님은 이제 가보셔도 됍니다."
"조금만 더 계셔주시면 안돼요?"
아렌황녀의 투정에 이레아의 표정에 작은 웃음과 노기가 동시에 생겼다.
"황녀님, 군주란 그 누구에도 의존하지 않는 법입니다. 아래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군주로서의 기본 소양이지만 위의 사람에게 향하는 의존의 모습을 보인다면 훌륭한 군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치만... 너무 오랜만에 만났단 말이에요."
"아이데스님은 지금 1황녀님과의 전쟁을 준비 중이십니다. 일이 매우 바쁘실 겁니다."
이레아 한이 큰 체격으로 나와 1황녀 사이를 막았다.
"아이데스님은 이제 돌아가셔서 하던 일을 계속 하십쇼."
"알겠습니다. 그러면 잘 부탁 드립니다."
나는 방문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황녀가 이레아한테 반감을 가지려나?'
제발 그래줬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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