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263화 (263/312)

〈 263화 〉 열등감 덩어리­2

* * *

"1황녀가 아렌 황녀랑 너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어. 황제인 자신을 두고 감히 따로 세력을 일구다니 참을 수가 없다면서 정말 격한 욕을 하더라."

"...뭐?"

나는 시에린의말을 바로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녀가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프레스티아가 이전에 1황녀가 나에게 공격을 가할 게 분명하다고 했으니 그것때문에 장난을 친 건가 싶었다.

"아예 선전포고를 때렸던데? 우리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겠다면서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왔어."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되지 않는 말들 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것 역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말 진짜야?"

"어, 정말 믿기지 않지만 진짜야."

"그 인간이 우리를 왜 공격해? 체급이 안 맞잖아 체급이."

1황녀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지금의 1황녀 세력은 적은 수의 병력과 적당한 숫자의 기사와 참모들을 통해서 돌아갈 뿐이었다.

제도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반 시설이 파괴되지 않았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위험한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가능성을 스스로들 부숴놨기 때문에 1황녀는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였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우리를 공격하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 될 정도였다.

일단 그녀가 우리를 공격하는 순간 우리또한 그녀를 공격할 명분을 얻게 된다.

아직 아렌황녀가 어려서 그녀가 판단력을 기르기 전까지 어떤 외교적인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인데 누군가가 우리를 먼저 공격해 온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세력이 비슷해서 3파전이 오래 진행됐던 이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아렌쪽이 명백하게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손쉽게 제도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렌이 제도를 먹는 게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냐는 걸 따지면 조금 애매하긴 하지.'

아렌의 세력이 공고해지면 제국에 이상한 평화가 찾아올 수도 있었다.

서로의 세력과 목을 걸고 전면전을 치르는 난세가 아니라 서로의 눈치를 보며 물 밑에서 세력을 키우는 냉전과도 비슷한 무언가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내가 황제가 되는 길이 좁아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래고 1황녀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가 제도를 해 나갈때 다른 곳에 요원을 풀어서 제도에 전쟁 병력을 보내게 유도할 수 있었으니까.

1황녀만 잡는 상황은 간단해도 다른 세력들이 제도를 공격해 온다면 일시적으로 병력을 후퇴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근데 이걸 1황녀가 모른 다는 게 말이 되나?'

1황녀는 성격이 안 좋아서 그렇지 절대로 능력이 없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가 한치 앞 조차 보지 못하는 능력을 가직 있었다면 진작에 2황녀와의싸움에서 패배했을 것이 분명했다.

'요즘 미쳤다는 말이 많이 나오던데 광기에 붙잡혀서 제대로 된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모양이로군.'

그래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미친 건 1황녀지 황녀의 참모들이 아닐텐데 지금의 1황녀의 세력으로 나에게 공격을 가한다는 1황녀의 생각을 허용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어쩌면 고도의 노림수일 수도 있겠어.'

공격하다면서 우리를 자극한 뒤 절대 선공을 때리지 않다가 우리가 먼저 공격에 들어가면 외교전으로 끌고 갈 수도 있었다.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에린에게 철저하게 분석해서 행동하라고 말했것만, 내가 1황녀를 과대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까지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허허..."

지금 내 앞에는 온 몸이 멍으로 물들어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여성이라고 해도 무장이 아니라서 우리 세계의 남자 정도의 적당한 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체격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저렇게 심각하게 맞은 것을 보니 느낌이 꽤나 묘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나와 그녀는 구면이었다.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냈던 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세력 안에서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있었다.

"1황녀님이 미치셨습니다."

지금 1황녀의 옆에 남아있는이들은 진짜로 1황녀에게 충성하거나 1황녀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가지 못한이들 밖에 없었다.

전자라면 그런 이가당당하게 황녀가 미쳤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후자라면 1황녀의 폭정이 심해져서 두려움보다 더 커진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황녀님이 미치셨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1황녀님이 플레아아이데스님을 공격하려 든다는 것 자체가 아주 이상한 일 아닙니까. 아이데스님게 격하심정을 느껴서 공격하려고 하시는 걸 모든 참모가 뜯어 말렸는데 황녀님은 저희가 보는 앞에서 지금까지 1황녀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셨던 후작님을 살해하셨습니다."

"허...참..."

아무리 폭군이라고 해도 자신을 말린 것 가지고 가장 가까운 최측근을 죽이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머리가 있는 인물이라면 그 딴짓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1황녀는 제국을 제대로 장악하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간이 수하를 죽인다고?

'내가 1황녀를 과대평가했군.'

교란작전?

내 공격을 바란 도발?

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내가 그녀의 의도대로 행동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후작을 죽인 것 보다 클 수는 없었다.

"참모진들이 고생이 많았겠군요."

"지금까지 겨우 버텨왔던 참모진들도 아이데스님이 계시는 아렌 황녀님의 세력으로 오고 싶다고 난리입니다. 제 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황녀님의 말에 반항하는이들은 매질로 다스리는 중이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는가.

'이것이 난세인가? 황제라는 자리의 무게인가?'

나는 지금까지 난세를 플레이 하면서 1황녀가 여기까지 올라온 걸 자주 보지 못했다.

난세 원본은 남녀역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1황자가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황실파가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황녀와 비슷한 테크를 타고 제도를 장악하지만, 세력이 약해서 천천히 스러질 지언정 1황녀처럼 망가지지는 않았다.

1황자에게는 난세의 소용돌이와 아무리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황제의 자리를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의 여동생인 1황녀에게는 난세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나 때문일지도 모르지.'

내가 아카데미에 다닐때만 해도 나는 1황녀의 부하였다.

그녀가 오라고 하면 가야하고 가라고 하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야했다.

1황녀는 나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는 단순히 능력만 대단한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매력또한 같이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입장에선 나를 굴리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아렌황녀의 밑으로 들어가 그녀를 업신 여길 수 있는위치가 되었다.

그녀 입장에선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까?

오로지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나도 그녀가 미치는 데 한 몫한 것 아닐까?

"일단 에스란경은 자리에 들어가서 쉬시지요. 제가 1황녀의 밑에서, 사람들을 구해내겠습니다."

"... 제가 이런 말을 아이데스님께 전했다는 말은 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탈출해서 아이데스님께 1황녀님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을 알렸다는 걸 알게 되시면 아직 1황녀님의 밑에 남아있는 참모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모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1황녀에게 병력을 돌릴 명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녀가 나에게 알려준 명분은 전쟁을 치른 후에 1황녀가 지금까지 지었던 죄를 읊으면서 내 명분을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되었다.

'제도에서 전쟁이 나면 누가 제도로 달려올까.'

누구 하나가 제도에서 나와 전쟁하는 척이라도 해주지 않으면 대세가 완전히 아렌에게 넘어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선 최소 한 명 이상의 군주가 제도로 공격해 와야 한다.

'일단 프레스티아는 아니야.'

그녀는 전통적으로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제도는 가장 마지막에 공격했다.

아무리 먹었을 때의 이펙트가 크긴 해도 먹기도 힘들고 유지하기도 힘든 제도를 먹는 것 보다는 지방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한 번에 밀어 붙이는 것을 즐겼다.

'프레스티스 정도는 공격해 오려나?'

프레스티아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언니였지만 그녀역시 그의 세력 근처에 히스토리아라는 강력한 적수가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큰 병령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믿을 건 아이작 뿐인가.'

다른 세력들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 힘이 상당히 약해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제도를 공격해올 확률이 낮았다.

그나마 아이작만이 제도가 혼란스러워지는 틈을 타서 공격해 올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도를 바라보고 있을 때 손님이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델라라고 합니다."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인은 아주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