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데
* * *
"라이넬! 너 이제 마스터라면서?"
라이넬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굉장한 속도로 우리 세력 전체에 퍼졌다.
한 명의 마스터가 하나의 전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존재는 한 세력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략병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내가 뭐랬어, 너는 분명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니까? 하늘이 점지해주긴 무슨 하늘이 점지해줘 하면 되는 구만."
라이넬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을 기념으로 큰 잔치를 벌였다.
하나의 세력에서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사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다들 즐겁게 웃고 떠들며 라이넬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을 축하해줬다.
"라이넬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기사단 하나 해줘야 하는데... 마땅한 기사들이 없네."
"기사단은 무슨 기사단이야. 호위 기사한테 기사단이 왜 필요해. 너는 너 호위하는 데 기사단 정도 되는 병력을 들여 놓을 거야?"
어, 내가 황제가 꿈이잖니.
친구끼리만 있는 장소였다면 이렇게 대답해 줬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보는 눈이 많다.
아렌 황녀 또한 플린과 함께 잔치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살짝 깜빡이며 그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뜻을 대신했다.
"마스터를 호위 기사로 쓰는 인간이 어딨어. 명문기사단 급은 아니더라도 익스퍼드의 기사 절반 정도로 채운 기사단은 내가 어떻게든 만들어 줄게."
"그렇게 까지 해줄 필요 없는데..."
"너를 위해서 해 주는 게 아니야. 우리 세력 전체를 위해서 그러는 거지. 소드마스터랑 명문 기사단이 같이 있으면 얼마나 강한 상승효과가 나는 지 너도 잘 알 잖아."
명문 기사단 하나에 소드 마스터 하나면 같은 소드마스터 5명과 싸워도 크게 꿀리지 않는다.
그래서 청기사단이나 적기사단 같이 마스터까지 같이 있는 명문 기사단이 강력한 위력을 내고 있는 것이다.
"맞습니다. 저희 기사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마스터에게 명문기사단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크리스틴까지 다가와서 말하자 라이넬이 한 숨을 가볍게 쉬었다.
"그래,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만들어줘 아직 500명은 커녕 100명도 못 구했잖아."
"본격적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만들어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그나저나 미네타 너는 소식 없어? 나도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는데 너도 슬슬 8서클을 찍어야 할 거 아니야."
라이넬이 부끄러웠는지 화살을 미네타에게 돌렸다.
"마법사의 8서클이 마스터랑 같은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8서클 쪽이 훨씬 오르기 힘들거든? 나도 1년안에는 8서클에 오를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이렇게 바라보니 감개 무량했다.
라이넬도, 미네타도 처음 볼 때는 다 찐따 같던 애들인데 이제 8서클과 마스터를 입에 담을 정도로 성장하다니...
'그 찐따 같던 애들이 맞냐?'
다들 즐겁게 떠들고 있을 때 함께 웃고 떠들지 못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나는 시에린에게 두 찐따들을 맡기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에프로트에게 향했다.
"음식은 입에 맞으십니까?"
"네, 입에 맞습니다..."
이제는 아렌황녀밑에 있는 동맹들 이니 상호 존대를 사용했다.
내가 먼저 존대해 물으니 그녀가 상당히 저기압이 된 상태로 답했다.
라이넬이 소드마스터가 된 걸로 잔치를 열긴했지만 그녀도 3일 전에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었다.
그녀가 그랜드 마스터에 다다를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마스터의 벽은 얇은 종잇장에 불과할테지만, 그 때는 다들 격식을 차려서 축하해 주는 것으로 끝났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우리 세력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도 그걸 알고 있겠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많이 상할 거다.
왜 자신의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을 때는 축하의 인사로 끝이고 라이넬이 마스터를 찍으니 잔치를 벌이는 가.
우리에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챙겨줄 수 있는 수하들을 만들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있을 거다.
에프로트는 다혈질이긴 해도 자신과 남의 잘못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거기에 더불어서 아마 소드마스터에겐 명문 기사단이 있어야 한다는 크리스틴의 말도 걸리겠지.
나는 청기사단을 가지고 있고, 시간은 좀 걸릴 지언정 라이넬에게 명문 기사단을 만들어줄 능력도 있었지만 그녀한테는 자신을 보조해줄 명문 기사단조차 만들 수 업는 처지였으니까.
명문 기사단이 아니라 그냥 기사단은 만들 수 있을까?
'홀로 서는 게 이렇게 힘든일이란다 멍청한 년아.'
프레스티아를 따랐다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 기사단을 선물 받고 대대적으로 축제를 열고 홍보도 받았을 것이다.
자신의 세력을 만든다는 이루지 못하는 꿈을 버릴 수 있었다면, 모든것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기사단을 스스로 만들필요가 없고 세력을 굴리는 자원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저 창의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되었으니까.
그리고 프레스티아도 그랜드마스터급 인재를 얻었으니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었겠지.
'어쩔 수 없나. 천성이 그런 거니까.'
어지간한 충격이 있지 않은 이상 그녀가 홀로서기를 포기할 일은 없을 거다.
나도 그녀를 제대로 내 밑에 복속시키는 게 힘들거라고 판단해서 아렌황녀의 이름을 빌리고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솔직히 그녀한테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나도 지금 내 외모를 포기하고 프레스티아를 지배하겠다면서 쌩 난리를 피우고 있었으니 어지보면 상당히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준비했고 너는 준비하지 않았지.'
"세력을 일구실 준비는 잘하고 계신겁니까?"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기사단장같이 한 집단 내의 작은 집단에서나 먹히는 리더십이지 하나의 세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드는 리더십은 아니었다.
그것이 그녀가 열심히 인재를 모으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인재가 그녀의 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였다.
리더가 된 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력 밖에 없으니 누가 그녀를 믿고 따르겠는가.
'아렌황녀가 죽을 때 까지는 확실한 동맹이고, 아렌 황녀가 죽은 다음에도 꽤 가깝게 지낼테니 힌트를 도움을 좀 줄까?'
"인재를 모으는 게 힘드시다면 어떻게 해서든 머리가 좋고 에프로트님과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직한 자 한 명을 만드는 게 좋으실 겁니다. 에프로트님은 일단 에프로트님의 등을 맡길 수 있고 평생 같이 갈 수 있는 인재 하나를 모아 에프로트님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시켜야 안정적으로 세력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언이라고 한 말이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는 자를 구하는 것 부터 일이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배운 것이 있어야 그 머리를 굴릴 텐데 제대로 배운 자들은 전부 난세의 휘말려 각지의 군주들의 밑에 들어가 있었다
이 와중에 재야의 인재를 찾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고, 만약 찾는 다고 해도 이 근방이라면 그녀가 아니라 내가 먼저 찾을 것이다.
어떻게든 머리 좋은 인재를 찾았다면 그자가 믿음직 스러운 자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나야 시에린이라는 든든한 참모가 있어서 괜찮은데 군주가 멍청하고 수하가 똑똑하면 뒤에서 별의 별 짓을 다한다.
믿음직스럽고 뛰어난 수하를 구하는 건 이루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으면 그녀는 비상할 수 없었다.
"... 믿음과 충성은 사람의 뜻이라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능력있는 인재가 저에게 찾아오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군요."
에프로트가 나를 잠깐 내려다 보더니 천천히 무릎을 굽혀 나에게 시야를 맞췄다.
'어?'
단순히 굽히는 것에서 끝날 줄 알았던 그녀의 무릎은 계속 접혀 들어가 바닥에 닿았다.
"저에게 능력이 있는 참모를 소개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 인망으로는 뛰어난 인재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무릎을 꿇자 잔치에 모인 모든이가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의도한 건가?'
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한 두 번 안된다고 하는 걸로 물러날리가 없었다.
이 정도 분위기에서 내가 계속 안된다고 하면 내 선한 이미지에 스크래치가 날 게 뻔하니 그녀에게 일단 약속이라도 해야 했는데 이걸 의도할 실력이 에프로트에게 있는지는 솔직히 미지수였다.
'눈빛을 보면 진심같은데...'
아무리 봐도 혼자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이에게 무릎을 꿇은 자의 모습이었다.
"도와주시면 이 은혜는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그래 은혜를 평생 기억한다잖아?
평생 부려먹을 수 있는 상품권을 준다는 데 굳이 거절 할 필요는 없겠지.
"알겠으니 일어나세요. 굳이 무릎까지 꿇지 않으셨어도 저는 에프로트님을 도와드렸을 겁니다."
그녀가 눈에 눈물을 그렁 거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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