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소드 마스터 라이넬
* * *
이히히히힝!!
유니콘의 뿔에서 상당한 수준의 기가 뿜어져 나왔다.
소드마스터가 사용하는 기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강력함을 자랑하고 있는 뿔의 모습에 크리스틴이 씩 미소 지으면서 자신의 애검을 잡았다.
그녀가 검에 마나를 불어 넣자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자만 사용할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 올랐다.
'이 모습을 남자들이 봤어야 했는데!'
부하들에게는 늘 시크하고 단정하며 멋있는 모습만 보이고 있는 크리스틴이었지만 그녀도 여자였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자신의 멋있는 모습을 남성들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뽑고 유니콘과 싸우는 모습 정도면 어지간한 남자들한테는 전부 먹혀 들어갈 만큼 매력적인 모습일 텐데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이 칙칙한 여성들 밖에 없다는 것이 참 기분나빴다.
카앙!!!
유니콘의 뿔과 크리스틴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혔다.
직접 부딪힌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가 부딪힌 것에 불과했지만 서로 강한 반발력을 느끼며 튕겨져 나왔다.
이히히힝!
그 중에 더 큰 반발력을 받은 것은 유니콘이었다.
유니콘도 나름 오래 살면서 유니콘만의 전투 방법을 정립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띵가 띵가 놀면서 지내며 단순히 태생의 강함에만 의존했다면 크리스틴은 지금까지 강해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한 천재였다.
가문의 비전을 배우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그녀를 유니콘이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히히힝!!
생각보다 강한 크리스틴의 힘에 유니콘이 그녀의 눈치를 봤다.
원래는 좀 귀찮아도 모양빠지지 않게 어느 정도 싸우는 척을 하다가 도망가려고 했는데 저런 미친 여자를 상대로 더 싸웠다가는 모양은 커녕 뿔이 잘리게 생겼다.
이히히히히이이이이잉!!
유니콘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몸의 마나를 허공에 발산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할 것 같은 유니콘의 모습에 크리스틴이 몸의 긴장을 유지하며 자세를 낮췄다.
이힝!
유니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크리스틴이 자세를 낮추는 순간 유니콘은 빠른 속도로 뒤로 돌아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잽쌌는지 크리스틴 조차 유니콘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하고 유니콘이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환수라더니 아주 겁쟁이가 따로 없군."
그녀가 검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던 오러 블레이드를 천천히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한 여성이 조용히 자리를 떠나 자신의 개인 수련 장으로 향했다.
'오러 블레이드... 정말 멋진 모습이었지.'
그녀의 정체는 라이넬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는 모습을 상상했다.
천재라고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재능을 가졌지만 헬링 자매나 에프로트, 아이작같은 진짜 천재들에게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평생닿지 못할 벽이라고 생각했던 소드마스터의 경지가 눈앞에 다가왔다.
플레아가 확인한 그녀의 무력 수치는 79, 그야말로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경지였으며 라이넬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라이넬이 플레아 보다 훨씬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플레아는 1단위로만 무력을 확인해야 했지만 라이넬은 자신의 무력을 수치화 한다면 79.99 정도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스터의 경지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평생 이 경지를 넘어서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많은 곳이었다.
사실 그녀의 나이에 이 정도 수준에 올랐다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됐다.
1년에서 2년 정도 시간을 더 들이면 거의 무조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한 시라도 빨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싶었다.
당장 플레아의 세력에 강력한 기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다시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그녀를 감쌌다.
너무나 조금의 격차를 가지고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런 그녀에게 소드마스터의 싸움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크리스틴을 따라갔고 그녀는 조금 싱겁기는 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의 싸움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오러 블레이드를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그 강함도 함께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강력한 모습에 라이넬은 자신의 눈을 뺏겼다.
'단 한 번이라도 오러 블레이드를 다루고 싶었다.'
그녀는 자리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몇시간이고 계속.
그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라이넬을 바라보는 한 명의 군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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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각성하겠구만.'
라이넬이 크리스틴을 따라간다고 말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라이넬의 무력 수치는 79에 도달해 있었고 스스로도 벽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고 말할 만큼 마스터의 경지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난세인 만큼 무력이 79라는 건 언젠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기에 나는 그렇게 급하지 않았지만 라이넬이 상당히 급했다.
'때가 되면 다 할텐데 말이지.'
라이넬이 무력 80, 즉 마스터의 경지를 찍는 시나리오는 꽤 여러 시나리오가 있었다.
전쟁 중에 갑자기 각성하기도 하고 전조 없이 갑자기각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각성방법이 있었지만 내가 라이넬을 한 두 번 키워본 것도 아니고 자주 나오는 상황은 전부 캐치하고 있었다.
라이넬은 플레아 아이데스로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고위 기사이면서 꼬시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니 늘 그녀와 함께 난세를 클리어 했다.
그런 내가 라이넬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리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유니콘과 크리스틴의 싸움을 구경한 이후에 개인 수련장으로 찾아갔다는 말을 전해 듣자마자 바로 그녀의 개인 수련장으로 이동했다.
그녀의 수련장에는 오직 라이넬 혼자만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눈에 강한 집념을 담고 휘두르는 그녀의 힘은 아주 강력해 보였다.
무력 79 정도면 소드 마스터가 아니면 아무도 이기지 못한 다는 뜻이니 실제로도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베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정도의 위력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며 본인을 채찍질 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는데 시간단위가 가볍게 소모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조용히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가 마스터의 경지에 이를 때 내가 주변에 있으면 나에 대한 애정과 충성이 상당히 올라가게 된다.
라는 건 사실 명목적인 이유고 내 친구가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차마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조용하게 그녀의 곁을 지켜줬다.
가만히 라이넬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도 쌓이고 있을 수많은 업무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이 순간을 버리고 집무실로 갈 수는 없었다.
파앗!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어느덧 달이 차오를 시간이 되었을 때 그녀의 검에서 강한 빛이 났다.
"어?"
그녀가 당황한 듯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오러와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나는 빛이었다.
라이넬이 몸을 덜덜 떨면서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파앗!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빛이 유지된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오러 블레이드라고 부를 수 있는 강한 빛이 그녀의 검에서 새어나왔다.
그녀의 상태창에 적혀 있는 80이라는 숫자도 그녀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해 줬다.
"흐윽... 끄읍..."
그녀가 무릎을 꿇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 거라는 이 세상의 말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가 우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벅저벅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몸을 움찔거리며 내 쪽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있었어?"
"처음부터?"
내 말에 그녀가 눈물을 급하게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가 우는 것도 창피한 일인데 그걸 남자한테 들켰다고 생각하니 많이 부끄러웠는지 귀가 천천히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울어도 돼. 네가 그토록 원하던 경지에 이르렀잖아? 여자도 기쁘고 감정이 복받치면 울 수도 있지 우는 것 까지 참으려고 해."
내 부드러운 말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자."
내가 양 팔을 뻗고 미소 짓자 그녀가 무릎을 꿇고는 나에게 안겼다.
양 무릎을 땅에 댄 다음 나한테 안겨도 나보다 큰 덩치를 자랑하는 그녀였지만 내 품에서 엉엉 우는 모습은 참 아이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