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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55화 (255/312)

〈 255화 〉 모략­4

* * *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니 곧, 마차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에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성쪽에 있는 것도 아닌 우리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걸 보니 우리 에게 관심이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뉘쇼?"

시에린이 장난스럽게 말하니 상단주로 변장한 섀도스탭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인부들이 입던 옷이 있습니다. 사이즈 별로 가지고 왔으니 각자 편한대로 입으시면 됩니다."

"플레아 먼저 입고 있어. 우리는 이따가 들어가서 입을게."

"훔쳐 보면 죽을 줄 알아."

"네가 우리를 어떻게 죽일 건데?"

어짜피 진짜 훔쳐 볼 생각도 없으면서 저렇게 장난을 치는 게 참 시에린 다웠다.

"내가 죽일 거다."

그런 시에린을 라이넬이 참 흉흉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시에린의 말이 장난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남자한테 그런 장난을 치는 게 결코 옳은 일은 아니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이고 운명 공동체라고도 볼 수 있는 관계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었으니까.

"장난이야 장난. 너는 장난도 못알아 듣냐?"

"칠 수 있는 장난이 있고 치면 안되는 장난이 있는거야."

둘이서 싸우고 있을 때 섀도스탭이 나에게 다가와 사람의 얼굴처럼 되어 있는 가면을 나에게 내밀었다.

어떻게 말하는 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가면이라고 하긴 했지만 얼굴에 쓰자 마자 착 달라 붙어서 살의 틈도 안느껴 지는 걸 보면 일반적으로 쓰는 가면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분들은 얼굴에 적당히 분장만 하시면 정체를 속이실 수 있겠지만 주군은 아무리 못 생기게 꾸며도 얼굴에서 빛이나니 그렇게 가리지 않으면 들어가기 힘들 겁니다."

"나도 알아. 이제 옷만 갈아입고 오면 되는 거지?"

내가 평범한 인부의 옷을 입고 오니 애들이 나를 바라봤다.

"너는 얼굴도 가리고 옷도 그렇게 입어도 귀티가 난다... 분위기 때문인가?"

"내 생각에는 몸매 때문인거 같아. 누가봐도 인부가 아니라 인부코스프레한 도련님 느낌인데? 우리가 아니더라도 아마 다 그렇게 느낄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마나를 써서 변장하는 방식은 성문의검열에서 들킬확률이 너무 높았기에 미네타의 마법을 사용해서 변장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안 들키기를 비는 수 밖에. 누구냐고 물으면 성노예 출신이라서 몸만 이렇게 좋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속여도 얼추 믿을 것 같기는 하네."

애들이 마차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라이넬은 마차를 지키는 호위로 변장했으며 다른 둘은 나와 거의 비슷한 옷을 입고 인부 처럼 변장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거 맞아?"

"네 그 정도 하셨으면 아마 충분히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변장을 했어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얼굴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인부를 볼 때 그렇게 자세히 보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얼굴을 알고 있다고 해도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한 번에 한 명씩만 나타나면 그렇게 생각할 텐데 다 같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티가 나지 않을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애초에 병사들이 여러분의 얼굴을 알고 있을 확률도 희박합니다. 마차가 들어가는 입구와 일반인들을 보는 입구가 다른데 마차 쪽 검문관들은 주요 세력의 장의 얼굴은 얼추 알고 있어도 모든 수하의 얼굴을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섀도스탭이 시에린의 모든 의문을 풀어주자 시에린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면 걱정 없이 들어갈 수 있겠네."

그렇게 마차를 타고 성문으로 다가갔다.

변장이 완벽한지 확실하지 않아 꽤 걱정했는데 경비는 상단주의 신원만 확인하고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우리의 몸과 마차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물품들은 일일히 검토하는 세심함을 보였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는 반쪽짜리 검문일 뿐이었다.

"그런데 에프로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는 거야?"

"네, 압니다."

시에린이 나를 바라보고 물었지만 마차를 끌고 가고 있던 섀도스탭이 대신 답했다.

"요원들의 정보에 따르면 다른 도시로 향한 건 아니고 최근 프레스티아와 약간의 불화가 있어서 자신의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두 세 번 정도 프레스티아의 사람이 그녀에게 찾아가 그녀를 설득한다는 말이 있지만 거의 일정한 시간에 찾아가기 때문에 그 시간만 피하면 될겁니다."

"에프로트 정도 되는 인력이라면 주변의 마법의 눈이 가득 깔려 있을 텐데?"

"그 눈을 무력화할 방법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셔 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공간이동 정도의 큰 마법은 바로 들키겠지만 작은 범위만 작용하는 세심한 마법이라면 충분히 안걸릴 수 있다.

미네타 정도의 실력이라면 마법으로 만들어진 눈들을 무력화 시키는 게 아니라 조작해서 자신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속이는 것 까지 여유롭게 가능할테니 아무한테도 들키기지 않고 에프로트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는 쉬웠다.

'문제는 그녀를 꼬시는 법이지.'

그녀가 지금 프레스티아와 사이가 안 좋은 것도 그녀가 초창기에 자신의 세력을 세우는 걸 도와달라고 했던 부탁을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둘 때까지 이루어 줄 생각이 없는 것 처럼 지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를 우리 세력으로 완전히 집어 넣으려면 일단 언젠가 네 세력을 가지게 해준다고 속이고 나중에 나한테 완전히 감화시켜서 혼자 세력을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프레스티아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작업 했다가 그녀를 완전히 매료시키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잘못 접근한건 아니고 프레스티아 정도의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군주기 때문에 난동을 안피우고 조용히앉아서 시위만 하는 거였지 어지간한 세력이었으면 전부 뒤집어 엎고 탈주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문제가 두 가지 생기는 데 한 가지는 프레스티아조차 매료 시키지 못하는 그녀를 어떻게 나에게 완전히 묶어둘까에 대한 것이고 두번째는 이미 프레스티아에게도 배신당한 그녀를 어떻게 우리 쪽으로 다시 데려올 수 있을까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프레스티아에 대한 일말의 충성을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로 날리고 나면 그녀는 프레스티아에게 정말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고 프레스티아가 자신을 꼬셨을 때와 똑같이 접근하는 나에게도 경계심을 가질 것이다.

그런 그녀를 설득하고 내 세력으로 일단 들어오게 만드는 것도 문제였고, 우리 세력에서 나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고 내 밑에 들게 하는 것도 문제였다.

여기서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나는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의 성향과는 차이가 좀 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처들어 가보자.

상대와 대면하기 전에 내 패를 어디까지 까보일까 고민하는 것 보다는 상대를 앞에 세워놓고 간을 보면서 내 패를 공개하는 게 훨씬 옳은 일이었다.

­띵동!

미네타가 주변의 수많은 감시 장치를 무력화한 걸 확인하자마자 초인종을 눌렀다.

성문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나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플레아 아이데스로의 변신을 마쳤다.

"오늘은 굉장히 일찍 왔네. 나는 너희들이랑 할말이 없다고 말... 했을 텐데."

그녀의 눈빛이 땡그래졌다.

이곳에서 나올리 없는 사람들이 그녀의 눈앞에 등장하니 말문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우리가 누군지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아카데미 시절 때 꽤 유명하신 선배님이기도 했고, 헬링과 굉장히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잖아?"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면서 눈을 불태웠다.

"나 혼자 있다는 걸 알고 나를 죽이려고 찾아왔나? 나 하나 죽인다고 한 세력의 군주 까지 찾아오다니 믿을 수가 없군."

그녀가 등에 꽃혀 있던 창을 뽑아 들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너를 죽이러 온게 아니야."

"그러면 뭐하러 나를 찾아왔지?"

"너를 영입하러 찾아왔지."

내가 입을 열자 마자 그녀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우리가 그녀를 죽이러 온 것으로 알고 있을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녀를 영입한다고 하니 저렇게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죽이는 것 보다 영입하려고 하는 것을 훨씬 싫어 할 정도로 그녀는 독립을 원했다.

프레스티아에게만 기대고 있어도 독립하는 게 힘들텐데 갑자기 우리가 다가와서 영입한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기차 차는 일이겠지.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좀 들어봐. 너한테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 될테니까."

그녀를 영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렌 황녀님, 이름 좀 가져다 쓸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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