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모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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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었지만 그랜드 마스터급 인재를 얻을 수 있다면 당장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군주가 직접 찾아가는 것과 군주 휘하의 인물이 찾아가는 것에는 매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으니까.
"이렇게 다같이 움직이는 것도 진짜 오랜만인 것 같아."
미네타가 기지개를 쭉 피면서 말하자 시에린이 옆에서 초를 쳤다.
"할 일은 다 하고 나온 거 맞지? 우리 교수님한테 어느 정도 맡겼다고 해도 네 주 업무는 마법병을 키워 내는 거잖아. 너 없어도 잘 돌아가는 거 맞아?"
"물론이지, 아예 자리를 비우면 난리가 나겠지만 주기적으로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아무런 문제 없어!"
"라이넬은... 할 게 없겠구나?"
"내 일은 플레아를 지키는 것 밖에 없으니까, 프레스티아 헬링의 영지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수련을 할 수가 없어서 실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나중에 수련을 더 많이 해서 채우면 돼."
미네타가 시에린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없으면 가장 문제 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 아니야? 네가 영지 업무의 30%정도를 도 맡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따라와도 되는 거야?"
"문제 없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라일라가 죽을 듯이 고통 받긴 하겠지만 어차피 내가 힘든 것도 아닌데 뭐."
오랜만에 네 명만 나와서 추억을 살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인재에게 한 번에 많은 수하를 끌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땅에 있는 인재였으면 인재의 성격에 따라서 쓸만한 수하들은 다 데려가서 내 세력의 성세를 보여줬을 텐데 안타깝게도 다른 영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덩치가 너무 커지면 프레스티아의 세력에게 들킬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사람의 수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엄선한 것이 우리 4인방이었다.
특히 우리는 지금 데리러 가는 인재의 선배기도 했기에, 어느 저도 안면이 있다는 것도 플러스가 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작전은 있는거야?"
"사람 꼬시는 건 플레아 전문이니까 플레아한테 물어 보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시에린의 말에 미네타가 나를 바라봤다.
"가서 보면 알아. 너희가 할 건 내 뒤에서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만 있으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따라와."
"그냥 여행하는 기분으로 가면 되는거야?"
"여행이 아니라 잠입액션하는 느낌으로 가면 돼."
프레스티아의 영지와 우리 영지가 맞닿아 있는 부분은 아직 개발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몰래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중심 근처로 갈 수록 검문이 빡빡해 질 것이다.
세력과 세력 사이의 전쟁이 만연한 지금 로브를 깊게 눌러 쓰고 도시나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신원이 확인 되지 않은 인원을 도시안에 들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 어느 도시를 가던지 검문이 아주 빡셌다.
그렇다고 해서 얼굴을 까고 들어갈 수는 없다.
일단 손님 취급 받기는 하겠지만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기도 하고 그녀의 앞에서 대 놓고 인재를 빼앗았다간 그녀가 그대로 내 세력에 전쟁을 선포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몰래 인재를 빼온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녀의 인재가 나에게로 향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그 때는 나를 인질로 잡고 지랄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말로 해결 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화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풀려가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의 정체를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가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잠입액션 물 하나를 찍을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라이넬이 훌륭한 기사고 미네타가 대단한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잠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처음 들어가 보는 도시에 잠입할 수 있을까? 미네타까지는 어떻게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가 같이 들어가는 건 무리 인 것같은데?"
"걱정 하지마 내가 특별히 훌륭한 조력자를 하나 데려 왔으니까."
내 말에 시에린이 나의 그림자를 빤히 바라봤다.
"특별하게 데려온 거 맞아? 늘 따라 다니는 애잖아."
"그냥 넘어가자 에린아?"
"알았으, 우리 플레아가 그렇게 자랑하고 싶다는 데 그냥 들어 드려야지."
성에 잠입하는 것은 섀도스탭에게 맡기면 됐으니 우리는 천천히 걸어 도시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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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도시 프레스티아라는 곳이지?"
아리나 영지라는 이름과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남겨둔 나와는 달리 프레스티아는 자신이 지배한 지역의 이름을 철저하게 변화 시켰다.
자신이 이 영지의 지배자라는 의미와 동시에 자신의 세력의 중심이 이곳이라는 것을 도시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녀가 워낙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 효과가 상당했다.
"어떻게 들어갈 거야?"
시에린이 상당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세력의 중심 도시인 만큼 경비가 엄청나게 삼엄했다.
병사들이 사각 없이 순찰을 도는 것은 물론이고 성문의 검문도 엄청나게 빡빡했다.
여기서 끝이라면 미네타 정도는 들어갈 수 있겠지만 성벽 전체에 경비 마법이 달려 있는 데다가 내부에는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마나 감지기가 있어 누군가가 공간이동으로 성에 들어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어지간해서는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오늘의 선생님, 나와 주세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내 그림자 속에서 섀도스탭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다. 거리로 따지면 늘 가깝게 지내는 데 이렇게 얼굴 본 건 진짜 오랜만인 것 같네. 잘 지내지?"
"잘 지내지 않았으면 제가 지금 주군을 지켜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섀도스탭이 무덤덤하게 대꾸하고는 성벽을 바라봤다.
"경비가 꽤나 삼엄하군요."
"못 들어가?"
"저 혼자 들어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지만, 모든 분들을 한 번에 모시고 가는 건 꽤 힘들일일지도 모릅니다."
"가능은 하다는거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쉬운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죠."
섀도스탭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양심에 상당한 가책을 느끼실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양심의 가책?"
시에린이 우습다는 듯 말했다.
"너 진짜 웃긴 소리한다. 우리 너 같은 요원인 줄 알아? 세력의 이득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한 세력의 수뇌부들이야.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이 어지간한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 같아."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섀도스탭의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소규모 상단을 공격해서 그들을 전부 죽인 다음 우리가 그들로 변장해서 프레스티아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전략이라고 내 놓았다.
변장을 잘만 할 수 있다면 정말 안정적인 방법이겠지만 우리가 그들로 완벽하게 변장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여러분 들은 상단원 하나하나로 완벽하게 변장하시긴 힘들 겁니다. 특히 플레아님의 외모는 너무나 빛나서 절대로 다른 사람으로 변장할 수 없죠."
"그러면 어쩌라는 거야?"
"성벽의 검문은, 모든 사람과 상단의 물건을 대상으로 실행되지만, 사람 중 자세히 보는 것은 상단주 하나 뿐입니다. 즉, 상단주 하나만 이미 증명이 되어 있는 사람으로 변장하면, 저희는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그 상단주를 하겠다는 거지?"
섀도스탭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 방법이면 무난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네."
시에린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뭐하고 있어? 상단주 역할은 네가 한다면서? 마차 안 구해 올거야?"
"금방 구해오겠습니다."
"잠깐."
라이넬이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진정 이 방법 밖에 없어? 고작 성에 안 들키고 들어가는 걸 목적으로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전혀 옳은 일이 아니지."
시에린이 바닥에 누워서 나즈막히 중얼 거렸다.
"그런데 해야 돼. 우리 세력을 위한 거잖아. 장차 마스터급, 나아가서는 그랜드 마스터급까지 노릴 수 있는 인재는 한 세력에 어마어마한 힘이 될 수 있어. 그런 인재를 얻는 건 어지간한 전쟁을 치뤄서 얻을 수 있는 가치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행위야. 전쟁에는 잘만 참여하면서 이런 일에는 죄책감을 갖는 건 위선에 불과해 라이넬."
시에린의 말에 라이넬은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좋게 생각해, 어차피 플레아가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이상 우리는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밀 수 밖에 없어, 그 모든 것에 죄책감을 가진다면, 그때는 기사가 아니라 농부를 해야지. 안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시에린. 전쟁을 벌이는 것에는 죄책감을 안 가지면서 이런 일에는 죄책감을 가지다니..."
라이넬의 말투가 참 무거웠다.
"그러면 저는 마차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져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섀도 스탭이 마차를 가지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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