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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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물자 장사를 하자고?"
"어, 우리가 다른 세력들이랑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돈을 더 많이 벌고 영향력을 키워나가려면 군수 물자 가지고 장난 치는 게 가장 좋아. 우리한테는 아이데스 상단도 있고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인프라도 뛰어나잖아. 장사 한 번 제대로 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시에린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전시 상황의 군수 물자 처럼 바가지를 잘 칠 수 없는 장사가 없었다.
상대는 자기가 사는 가격이 웃돈을 한 참 더 준 가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높은 가격을 주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돈에서 손해를 좀 보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되겠어?"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군수 물자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스리는 영지는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곳이었고 주변에 철도 잘 나지 않는데다가 모아둔 철도 없다.
병장기를 만드는 기술도 이제서야 천천히 쌓고 있고 병사들을 잔뜩 육성하면서 내 애들 입힐 병기도 부족한데 다른 이들에게 군수물자를 판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군수물자라고 칭하긴 했지만 병장기를 팔 생각은 없어."
"병장기가 아닌 군수물자라고?"
순간적으로 마석을 떠올렸다.
전쟁에서 고위 마법사가 대규모 마법을 사용할 때 필요한 마석은 소모품이긴 하지만 어마어마한 위력을 일으킬 수 있기에 전시 전 보다 가격이 상당히 오르긴 했다.
문제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평소에 구매하던데에서도 자기들이 쓰겠다면서 안 파는 상황이라 우리가 마석을 구해서 어떻게 장난질을 칠 수가 없었다.
"내 미천한 지능으로는 뭔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도대체 뭘 판다는 건지 말해주면 안돼?"
내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묻자 시에린의 얼굴에 함박 미소가 지어졌다.
"전쟁에 필요 한게 뭐야."
"일단 돈이 필요하지."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전쟁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군주, 그런 군주를 믿고 따르는 뛰어난 수하들, 그런 수하들을 믿고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병사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할 병장기."
"거기서 살짝 더 나가봐."
"식량을 팔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에린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식량도 물론 군수 물자긴 하지만 일반적인 군수 물자와는 다르게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게 맞았다.
식량은 군사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소비하니까.
'물론 군주가 세금으로 받은 식량은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한데...'
식량을 군수 물자에 넣을 수 있는지 없는 지를 떠나서 애초에 식량은 우리도 비축하고 있는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 번 말해봐. 어떻게 팔게."
나도 알고 있는 우리 세력 상황을 시에린이 모를리가 없었다.
나는 모르는 방법이 있으니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식량을 팔자고 나서는 걸 것이다.
내 예감이 틀리지 않는지 시에린은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계획을 나에게 읊기 시작했다.
"슬슬 추수철이잖아. 그렇지?"
"그렇지?"
"군주들은 절대로 식량을 팔 생각이 없겠지만 일반 농민들은 또 이야기가 다르단 말이지 그들에게 웃돈을 주고 식량을 구매하면 수량이 꽤 되는 식량들을 싼 값에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들이 식량을 팔까? 이번에 수확한 곡물로 1년을 버텨야 하는데다가 자신의 땅을 지배하고 있는 군주가 전쟁중이라면서 1년을 겨우 버틸 수 있는 양을 제외한 모든 식량을 전부 수탈해 갈텐데 도대체 어떻게 식량을 판다는 거야?"
시에린이 씨익 하고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수탈 당하기 전에 거래를 하면 되지."
"세금을 내기 전에 식량을 사겠다고? 아직 수확되지 않은 곡물을 사서 몰래 털어오기라도 할 생각이야?"
"빙고, 정확히 말하면, 이미 수확을 끝마친 곳에 불을 질러서 그 곡물이 탔다고 속이고 몰래 빼올 생각이야. 당연히 농민한테 돈을 지급할 거고 그 땅의 주인한테 들키지 않도록 할거야."
"들키면 한 순간에 나락 가는 방법인 거 알지?"
식량을 사기 위해서 다른 지역의 농민과 야합해서 그 지역의 군주를 속이고 식량을 얻는다?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수많은 비난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전략이었다.
내가 프레스티아나 제이어처럼 얼굴에 철판을 깔고 움직이는 세력이었다면 들켜도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었지만 내 세력은 체면이라는 게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세력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래에 황제의 자리에 오를 아렌 황녀를 모시고 있는 데다가 제국의 충성을 하는 스탠스를 강하게 잡고 있어서 나를 따르는 이들도 많은 데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 내 세력은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들키면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가야지. 중앙파 출신 군주나 황제에게 자주 반항했던 이들을 주로 털어 먹으면, 나중에 들켜도 벌을 내렸다는 식으로 무마할 수 있을 거야."
시에린의 말에 완벽하게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보험은 되어 있는 것 같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그래, 네가 진행하는 거니까 어지간하면 큰 문제 없겠지. 실행해."
"아직 다 안 끝났어."
시에린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까지 옅은 미소만 짓고 이야기 하다가 이제서야 저런 미소를 짓는 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악랄한 계획이 시에린의 머릿속에 들어있다는 의미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거야?"
"응? 내가 뭐 이상한 일 했나?"
시에린이 입을 가리고 호호 하고 웃었다.
'얘 여자 맞아?'
전생에서 여자가 저랬으면 장난으로 저렇게 웃는 구나 싶었을텐데 이 세계에서 여자가 저렇게 웃으니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쉽게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일단 계속 말해봐."
"수확철이 끝나고 겨울이 찾아오면 각 지역의 식량창고를 모두 불태울 거야. 식량의 가치를 강제로 올려 버리는 거지."
그녀의 전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미친..."
발상자체는 아주 간단한 전략이었다.
적의 식량을 태운다.
식량이 줄어드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양의 식량의 가치가 폭등한다.
이 얼마나 간단한 발상인가.
애한테 물어봐도 나올 수 있는 이 간단한 발상은 쉬운 발상과는 다르게 직접 사용하려고 하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은 발상이었다.
일단 어떻게 식량을 태울 것인가가 첫번째 문제다.
식량은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그런 식량을 대충 보관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들켰을 경우의 문제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커진다.
농민들의 식량을 몰래 사 가는 건 그래도 비난을 덜 받을 일인데 내가 식량창고를 불태우면서 남의 식량을 거덜낸다면, 그 여파로 죽어나갈 병사들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제국에 반한 벌이라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일반 병사들이 짊어져서 죽는 것은 상당히 과한 처사고, 내 세력은 순식간에 분열 될 것이다.
'얘 지금 우리 세력이 프레스티아네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런 전략을 쓸 수 있는 건 독불 장군인 프레스티아네 세력밖에...
"너 설마..."
"내 기억이 맞다면, 플레아 너는 하이네스 선배한테 소원권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때? 다른 지역의 식량을 모두 태우는 일을 프레스티아에게 허락 맡고 시행하는 정도라면 소원 갚어치를 충분히 하지 않겠어?"
"하이네스가 이런 소원까지 들어줄까?"
"하이네스선배는 입이 무거운 여자야, 그 때 어떤 소원이든 상관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 이 정도 소원은 충분히 들어주고도 남아."
"우리가 행했다는 걸 하이네스가 알게 되겠지. 그리고 프레스티아도 눈치 상으로 알 수도 있어."
"아니, 모를 거야. 하이네스 선배가 우리 말을 듣고 프레스티아 헬링한테 직접 작전을 건의할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 아무리 프레스티아 헬링이라고 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까지 예상하고 대처할 수는 없어. 그리고 설령 알게 된다고 해도 상관 없어. 그 누가 그녀의 말을 믿겠어? 심지어 그녀의 말도 추측을 뿐이고."
잠깐 말을 멈추고 있자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사족을 붙이기 시작했다.
"하이네스가 일을 다 벌이고 우리가 시킨 일이라고 만천하에 알려도 상관 없어. 그렇게 하면 누가 봐도 우리를 모함하는 거야. 하이네스가 약속에 목숨을 건 사람이라서 우리 말을 따르는 게 이상한 거지 다른 사람이 보면 누가 다른 세력의 말을 듣고 그렇게 위험 부담이 큰 행동을 하려고 하겠어?"
"변명하지 않아도 돼, 시에린. 진짜 좋은 생각 같으니까."
나에게 말한 내용은 꽤 거친 내용의 전략이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잘 다듬어져 있겠지.
하이네스가 말을 안 들을 것 같으면 첫 번째 전략만 실행하고 멈추든 아니면 다른 대안을 세워놨든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르는 전략이야. 그래도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지."
어차피 내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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