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 거래
* * *
"돈이 부족해."
시에린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 보다는 내 뒤에 서서 호위를 해주고 있던 라이넬이 먼저 반응해서 물었다.
"사업을 줄이던가, 새로 돈 나올 구멍을 찾던가 해야지. 이대로 가다간 적자 난다고."
마법병을 비롯한 다양한 병사들을 키우고, 기사 훈련소를 만들어서 기사단을 만들 준비를 하고 해군 기지를 만들어서 해군을 키우고.
전부 세력의 성장에 밀접하게 관련 있는 일이긴 했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병사를 육성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비용도 꽤 됐고 무엇보다도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봉급은 기본이고 식비에 장비 관리비 까지 따로 지급해야 했으니까.
"상단이 많이 커졌다면서, 그걸로는 안되는 거야?"
해상에서 들어오는 무역물을 아이데스 상단이 독점해서 운송하기 시작하자 꽤 많은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 영지와 독점적으로 거래하는 해상왕국이 하나 있어서 중간에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었거든.
"그걸로는 부족해. 병사들을 끊임 없이 늘릴 건데 이대로 가다간 금방 적자가 날게 분명하다고."
"돈 나올 구멍은 시에린 네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 참모진이잖아."
"안 그래도 그래서 온 거야."
시에린이 내 앞에 있는 소파에 턱하고 걸터 앉았다.
"지금 우리 영지의 제일 큰 문제점은 병사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거야. 애초에 싸우기 위해서 만든 병사인데 그들을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놀리고 있으니까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거지."
"해군들은 나중에 약탈할 때 써먹으면 되지만 그냥 군인들은 돈 나올 때가 없지 않아?"
"없긴 왜 없어, 산적으로 위장시키고 주변 영지에 보내면 되지."
"뭐?"
라이넬이 어이 없다는 듯 말했지만 육군을 산적처럼 운영하는 전략은 꽤 효용성 있는 전력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마이너스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소한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었고 산적으로 위장해서 적진에 침투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옆 영지가 군사력이 좀 약하더라고, 잘만하면 꽤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좋은 생각 같아. 대신 사람은 죽이지 말고 철저하게 돈만 노리라고 해. 내가 군인들을 산적으로 다른 영지를 공격했다는 소문이 나더라도 최대한 피해가 덜 가게 말이야."
"롸져~"
시에린이 그말을 끝으로 나갔다가 3분만에 돌아왔다.
"또 무슨 일이야?"
"손님이 찾아오셨다는데?"
"누가?"
지금 시점에 우리 영지에 찾아올 만한 사람이 있나?
'슬슬 지방 세력들의 싸움이 시작될 시기니까 미리 나한테 동맹을 맺으러 왔나?'
"1황녀가 찾아왔어."
"직접?"
"어, 직접."
부하를 보낸 것도 아니고 직접 찾아와?
'많이 급했나 보네.'
현 제도의 상황에서 수장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상당한 도박이다.
그런 도박을 하면서 까지 나에게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원하는 게 있다는 거지.
"모셔와. 뭐라고 하는지나 좀 들어보게."
"알겠어."
시에린이 황녀를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황녀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한 번 숙이며 인사를 했다.
"미리 언질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다면 황녀님을 맡을 준비를 했을 텐데요"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되는 상화이라서 그랬다."
황녀가 자연스럽게 내 자리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이유로 저희의 영지에 찾아오셨는지요."
"다시 내 밑으로 들어와라."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기울어 가는 세력이라서 도망간 것 같은데, 아둔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걸 거부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아둔 황제폐하께서 승하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전혀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래, 그가 정기적으로 활용했던 연락처를 통해서도 연락을 보내지 않고 제도에서 보내는 모든 말에 응답도 하지 않는다. 죽은 게 아니라고 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상황에 처한 거지. 아둔에게 사모아 세력이 갈갈히 찢어졌으니 이제 제도에 남은 것은 나와 2황녀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너만 나에게 지지를 보내준다면 내가 제도를 먹을 수 있다. 황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녀의 말은 얼핏들으면 꽤 합리적으로 들렸다.
사모아의 잔당이 새로운 리더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세력이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가 꽤 먼 상황이었고 내가 그녀를 도와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데 도움을 준다면 긴 시간동안 대우를 받을 테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년아.'
그녀가 먼저 나를 버렸고, 나 또한 그녀를 버렸다.
1황녀의 마음은 모기 똥만큼 작은 데 어떻게 자신을 배신한자를 용서하고 이끌어 주겠는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나를 천천히 견제하기 시작해서 내 자식 내지는 손주뻘 시기에 완전히 끊어 버릴 것이다.
"저는 1황녀님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이미 아렌님을 모시고 있으니까요."
"아렌이 황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년은 황제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황제가 될 수 있는 자질은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정은 그렇게 할 수가 없죠. 황녀님, 당신이 황제의 자리에 온전히 오르면 폭군이 되실 겁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지?"
"지금까지 쌓아오신 업보가 있으시지 않습니까. 업보는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청산할 수 있지만 그 업보를 쌓은 성정이 변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변하신다고 해도 아렌황녀님보다 나은 성정을 지니실 수 있을지는 미지수군요."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툭 터 놓고 말해보자.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한테서 있어서도 나한테 붙는 게 훨씬 빠르고 좋잖아. 네가 말하는 그 잘난 황제의 자리에 더 어울리는 이가 아렌이라고 치더라도 그 자리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나 아니야?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너 부터 죽일 것 같아서 그래?"
"제국을 위해서입니다."
황녀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당신이 황제가 되는 것 보다 아렌님이 황제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국의 안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걸 어찌 네가 판단할 수 있지? 한낯 남작따위가 어느 후계자가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판단할 자격이 있나?"
"제가 감히 누가 황제가 될 것이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제가 누구를 지지하는 지 정도는 저의 주관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나를 노려보고 있는 황녀의 모습에 싸늘한 시선으로 응대해 줬다.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황녀님을 도와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녀가 차게 식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뒤에 서 있던 라이넬이 아니었다면 여기서 나를 때려 죽일 지도 모른다는 강한 압박감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서로 윈윈하는 거래 정도라면 충분히 해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거래? 너와 내가 도대체 무슨 거래를 한다는 거지?"
"아둔이 죽었다고 해도 2황녀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병사가 필요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둔때문에 두 분 모두 남아있는 전력이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고양이 손이라도 보태시면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네 병사를 용병으로 쓰라는 거냐?"
"이해가 빠르시군요."
마침 놀고 있는 군사가 많은 데 잘 됐다.
"나는 용병에 큰 돈을 쓸 생각이 없다. 나에게 충성하는 이를 만들면 병력을 공짜로 부릴 수 있는데 내가 왜 돈을 써야 하지?"
"돈을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제도에서 내전이 일어나긴 했지만 중심가가 아닌 외곽은 괜찮게 남아있는 곳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알라마하 미술관에 있는 미술품들을 저에게 모두 넘겨 주신다면, 2황녀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1만에 달하는 병력을 빌려 드리도록 하죠."
"알라마하 미술관? 그게 어딘데?"
"제도 외곽에 있는 작은 미술관입니다."
황녀로서는 어리 둥절 할 것이다.
제도 중심부에 있는 큰 미술관도 아니고 알라마하 미술관은 정말 작은 미술관이었으니까.
작은 미술관이다보니 가치 있는 미술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말이야.'
모든 미술품은 아니었지만 몇몇 미술품은 몇 년만 지나도 가치가 크게 뛴다.
그 중 하나만 팔아도 병사를 빌려 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메꿀 수 있으니 오히려 나한테 남는 장사다.
'당장 벌어오는 돈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사람을 쓰면 1년 내로 작품의 진가를 찾아 가치를 크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제도에 있는 미술관 중에 예전 이름이 알라마하 미술관이었던 미술관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제도 외곽에 있는 아주 작은 미술관입니다."
1황녀가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보면 뭐 어쩔건데?'
당장 힘이 없어서 이렇게 직접 행차하셨는데 병사들을 거저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안 받을거야?
"그래. 네 제안을 받아드리도록 하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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