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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36화 (236/312)

〈 236화 〉 황제가 되는 길

* * *

어제 아둔한테서 편지가 왔다.

짐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제도로 올라가서 자신을 받들라, 는 내용의 편지였다.

당연히 찢어서 버렸다.

아둔은 분명히 능력이 있는 군주였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힘과 상황은 전 황제만도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 황제는 힘은 약했어도 안정적인 상태에서 자리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황제로서의 자리는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고 지방파 귀족들도 황제가 약하다고 무시는 할 지언정 황제를 따르지 않겠다고 대 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아둔의 상황은 그때보다 더 심각했다.

제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일단 기존의 신하들을 전부 잘라버리고 자신의 인간들로 채운 것 까지는 괜찮은 행보를 보였지만 중앙만의 힘으로는 지방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가 힘이 더 강했더라면 납짝 엎드렸을 인간들도 내전 속에서 겨우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간을 제대로 된 황제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특히 헬링가나 히스토리아 가문 같이 덩치가 있는 가문들이 앞장서서 중앙파의 말을 무시하고 있으니 다른 지방파 세력들도 그를 황제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그나마 황실파였던 인간들을 모아서 반등을 노리는 것 같은데 가라앉을 것이 확실한 배에는 타지 않는 것이 옳았다.

제도에서 내전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난세라고 불러도 무방했지만 지방끼리 제대로 맞붙기 시작하는 건 그의 세력이 몰락한 이후였으니까.

사모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죽는 것 처럼.

황녀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아둔에게 그 자리를 뺏기는 것 처럼.

아둔이 몰락하는 것은 운명이었다.

플레이어가 그의 곁에서 엄청난 충성을 쌓은 신하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이 세계의 플레이어는 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편지를 찢고 절대로 당신한테는 충성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냈지.

명분은 간단했다.

당신은 황실의 적통이 아니다.

전전대 황제의 적통 아들이긴 하지만 이미 전 황제가 올라갔으니 당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옳지 않다.

거기에 더해 당신은 제국을 아끼지 않는다. 진정으로 제국을 아끼는 이였다면 내전이 발생하자마자 그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찾아왔을 것이다.

내 질문에 혹자는 물을 수 있다.

대체 누구를 황제로 옹호해야 하는 것이냐고.

1황녀와 2황녀조차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서 제도의 사람들을 희생시켰는데 도대체 누구를 따라야 하냐고.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곳의 음식이 황녀님의 입맛에 맛으실지 걱정되어 바라본 것 뿐입니다."

우리 막내 황녀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리고 순수하고 사람을 잘 믿어서 그렇지 능력 자체는 매우 뛰어난 편이다.

나는 막내 황녀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막내 황녀를 지지한다고 세상에 공표했다.

그녀는 내가 아둔을 따르지 않고도 제국에 충성한다는 내 기본 슬로건을 충족시켜줄 존재다.

이제 자기 성별도 밝혔으니 그녀가 황제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다.

내가 원하는 것은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프레스티아를 지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황제를 다른 사람으로 세운다?

물론 그녀를 황제로 세운다면 내가 비선실세로서 크게 활약하게 되겠지만 결국 황제가 되지 못한다면 시간이 흐르고 대가 거듭해 가면서 가문의 영향력은 약화되어만 갈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를 지지한다고 공표했는가.

'시간을 끌기 위해서지.'

나는 아직 충분한 세력을 키우지 못했다.

좋은 영토를 하사 받아 자금에서 부족한 점은 없지만 병사는 적고 쓸만한 무기를 생산하는 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

막내 황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황녀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있었다.

그 영향력이 나의 우산이 되어 줄 것이다.

그녀의 영향력이 우산의 천 부분이라면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제국에 대한 충성은 우산의 살과 같았다.

이 우산은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우산이다.

나 정도 되는 충성심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황녀를 데리고 겁박하여 자신의 원하는 데로 제국을 주무를 것이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다른 이들이 명분을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한테는 그게 안되지.'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이 황실에 대한 나의 충성을 의심할 수가 있겠는가.

아둔에게 나는 이제 부터 막내황녀를 따른다고 적어서 보냈으니 내가 막내 황녀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전 제국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건 시간 문제겠지.

"맛있어요! 괜찮아요!"

막내 황녀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뇨, 미래에 황제가 되실 몸 아니십니까."

"...제가 진짜 황제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절대로.'

"네, 황제가 되실 수 있으실겁니다. 아니, 막내 황녀님을 제외하면 이 제국에 황제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희 언니 들이랑 아둔 삼촌이 있잖아요. 그 분이 황제를 하면 안되는 거에요?"

"황녀님은 아직 어리셔서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그 분들은 상당한 양의 업보를 가지고 계십니다. 군주된 자가 백성을 져버린 업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 인간들한테 어찌 황제의 자리를 맡기겠습니까."

"하지만 언니들에 비하면 제 능력은 없는 거나 다름 없는 수준인걸요."

"능력이 모자라면 배우면 됩니다. 막내 황녀님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신 분이니,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이데스님 말처럼 되려면 라일라 언니가 해주시는 교육을 열심히 들어야 겠죠?"

"물론이죠."

막내 황녀가 빠르게 밥을 해치운 뒤 일어났다.

"그러면 저는 공부하러 가볼게요!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꾸준히 성장해야죠!"

황녀의 씩씩한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가십니까, 황녀님?"

타이밍 맞게 식당으로 들어오던 시에린이 황녀를 보고는 멈춰섰다.

"공부하러 가요! 아이데스님의 기대에 보답하려면 열심히 해야죠!"

"수고가 많으십니다."

시에린이 황녀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주자 황녀가 밝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나중에 봐요!"

"네, 나중에 봬요 황녀님."

황녀가 완전히 나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시에린이 나에게 다가와 앉아있는 내 어깨에 슬쩍 손을 올렸다.

근래 들어서 시에린이 나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는데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연기하느라 고생이 많다."

"전 제국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데 아직 어린 황녀 하나 속이는 게 어려운 일일 것 같아? 고생이 아니라 놀이 수준이지."

"저 황녀도 불쌍하네, 제도에 있는 가족들은 자기 언니들이랑 삼촌빼고 전부 다 죽어버린 상태에서 우리한테 겨우 기댔더니 결국 배신당하고 죽임을 당할 운명이잖아."

막내 황녀는 아주 씩씩한 사람이었다.

제도에 있던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전부다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하루 정도 방에서 엉엉 우는 것으로 모든 슬픔을 극복해냈다.

그녀에게는 군주가 될 자질이 있다.

벌써부터 내 세력 안에서 그녀를 따르는 자들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내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내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황족이 단 한 명도 남지 않아야 하니까.

당연히 내가 황녀를 죽였다고 세상에 공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가 황녀를 죽였고 그 때문에 내가 분노했다고 발표가 나겠지만 그녀를 죽이는 과정을 실행하는 건 나겠지.

"괜히 정 안 들게 조심해, 네 진의를 알고 있는 다른 애들한테도 황녀한테 절대 정을 가지지 말라고 하고, 괜히 인간의 정 같은 걸 가졌다가는 중요한 상황 때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걱정 하지 마. 처음 황녀를 데려올 때 부터 개한테 정을 붙일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황녀는 내가 가는 길을 밝혀줄 도구일뿐이다.

내가 걱정해야 하는 건 그녀에게 정을 붙이는 게 아니라 그녀의 머리가 내 생각보다 훨씬 똑똑해서 그녀를 죽일 것이라는 내 진의를 알아차리게 되는 상황이다.

아직 플린 나이 또래임에도 저 정도 되는 능력을 보이는 걸 보면 10년 쯤 뒤에는 아무리 못해도 시에린 급의 머리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황제가 되는 길은 이토록 멀고도 복잡한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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