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인세지옥2
* * *
"흐아아앙!!"
부모를 잃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주변을 모두 잠식했지만 그 누구도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없었으니까.
거들먹 거리며 다녔던 병사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전쟁에 의해 지치고 지쳐서 상대와 합의하에 전투하는 척만 하는 경우가 많았고 평민 어른들은 자신또한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아이를 도와줄 수 없었다.
시민들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시민단체들은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한 단체로 변모했다.
누가 잘못한 것일까.
아이를 못 본 척 피해가는 어른들이 잘못한 것일까?
전쟁을 치루고 있는 병사들이 잘못한 것일까.
전쟁을 일으킨 황족들이 잘못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사모아가 잘못한 것일까.
"그야말로 지옥이군."
제도에 막 발을 들인 프로트라인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영지의 일이 너무 바빠 황제의 장례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숨진 것 보다 더 큰 일이 제도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병사를 이끌고 제도에 도달했다.
그녀는 일단 황실파로서 1황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을 이끌고 1황녀가 점거하고 있는 황궁으로 이동했다.
"프로트라인경! 잘 왔네!"
1황녀는 그녀를 반갑게 맡아주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병사들의 수가 워낙 많고 강하기도 했고 그녀 스스로도 소드마스터의 자리를 넘볼 수 있을 만큼 강한 기사였기 때문에 그녀의 합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전력의 증강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네의 스승님은 같이 오시지 않았나?"
"네, 저희 스승님은 영지를 지키시고 계십니다."
"아쉽군.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있었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2황녀님과 치열하게 전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순순히 굴복하면 모두 편한 일을 괜히 시간을 끌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있지. 아버지께 다음 세대의 황제로 임명된 사람은 나인데 괜히 자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깝치는 것이야... 일단 바로 이동하게 손 하나가 급한 상황이야."
"그런데 황녀님, 제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시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녀의 물음에 1황녀가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들의 고통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네?"
"지금 제도가 치르고 있는 고통은 내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더 성장하게 될 제국이 겪는 성장통과도 같아. 그런 성장통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시민들이 있다고 해도 그건 내가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아니야."
프로트라인의 마음속에 열불이 확하고 뻗쳤다.
시민들의 고통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니.
어찌 황제가 될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냔 말인가.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전투를 준비하게,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이 아주 많아."
"저는 시민들을 구호하겠습니다."
"뭣이?"
1황녀가 어이 없다는 듯 프로트 라인을 바라보자 프로트 라인은 굳센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 봤다.
1황녀는 황제가 될 수 있는 재목이 아니다.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충신인 플레아 아이데스를 지방에 박히게 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부터 어느 정도 감을 잡긴 했는데 눈 앞에 서 있는 여인은 폭군이 될 여자였다.
그것도 충신이 아닌 간신들을 옆에 두고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 먹을 자.
제국을 좀먹을 자!
"저는 더 이상 1황녀님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2황녀를 따르겠다는건가? 아니면 3황녀? 2황자?"
"그들을 따르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제도에서 시민들을 구호하겠습니다. 인세의 지옥이 된 이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프로트라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뒤로 돌아 황궁을 벗어났다.
"저년을!"
"진정히시지요. 프로트라인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제도의 상황은 그만큼 안 좋으니까요."
"제도의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만큼 전쟁을 빨리 끝내면 되는 일이다. 본질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고 이상한 곳에서 문제를 찾으니 내가 답답해 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 것 같나."
사모아가 없었다면 1황녀의 주장도 옳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모아가 전쟁을 끝내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의 주장은 단순히 이상으로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배식을 진행하겠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오래 살릴 수 있도록 가장 빠듯하게 식량을 배식하도록."
프로트라인은 자신의 군사들에게 돌아오자마자 자기들을 먹을 식량을 아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진지를 만들어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호받는 시민들끼리 싸움이 나려고 하면 병사들이 개입해서 싸움을 막았다.
그녀가 시민들을 보호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녀에게 몰려왔다.
시민들은 세력들간의 전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괜히 싸움에 휩쓸려서 죽으면 미래의 제도에 손해가 되니 일부러 죽일 필요는 전혀 없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프로트라인의 진영은 그 누구에게도 공격 당하지 않았다.
2황녀는 프로트 라인이 갑자기 1황녀측에 합류해서 역공을 가할 수도 있다는 신하의 의견을 기각했다.
살기 점점 힘들어 지는 제도를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서는 프로트라인 같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시민들은 프로트라인을 시민들의 영웅이라 칭했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등진 영웅.
제도가 비참해져 가는 만큼 프로트라인의 이름값은 높아져만갔다.
하지만 프로트라인이 가지고있는 식량은 무한이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의 병사들이 먹을 것을 상정하고 가지고 온 것이었는데 그보다 몇십배는 많은 인파가 모이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식량이 동나기 시작했다.
배식을 줄일 대로 줄였다.
여기서 더 줄인다면 아사하는 사람의 수가 급증할 것이 분명했다.
방법이 없었다.
'처음부터 사람을 가려서 받아야 했던 것인가.'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일단 받아놓고 생각을 하다보니 식량이 부족해 진 것인가.
식량의 소모량을 생각하면서 사람을 받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적은 인원이라도 확실하게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지금 후회한다고 해도 이미 사용한 식량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절그덕, 절그덕.
"프로트라인님이 여기 계시가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도의 시민들이 일용할 양식을 가져오는 중에 프로트라인님께서 시민들을 보호해 주시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의 뒤에서는 3개의 마차가 무언가를 가득 실고 있었다.
"제가 가지고 온 식량입니다. 잘 말려서 영양가가 압축되어 있는 식량이니 만 명이서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이걸 왜 저한테..."
"제가 직접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보다는 프로트라인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프로트라인은 감격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제국에 이런 사람이 남아있구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양의 식량을 지원할 수 있는 선인이 남아있었구나.
그는 로브를 아주 두껍게 쓰고 목소리를 변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트라인은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아주 작은 키를 가지고 있고 가슴이 나와있지 않은 것을 보아 남자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 밖에 없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배급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싶지만 프로트라인님이 보호하고 계시는 시민들의 수를 헤아려 볼 때, 저는 바로 이동해서 새 식량을 가지고 와야 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프로트라인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아닌 시민들을 살리는 것으로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으시다니, 사람들이 왜 프로트라인님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지 알 것 같습니다. 저 보다는 프로트라인님이 훨씬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많이 부족한 인간입니다."
프로트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은인의 성함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앞에서 이름을 밝힐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사람은 아닙니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도 겸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그래 이런 사람도 있기 때문에 제국에 희망이 있는 거지.
"그러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금방 식량을 가지고 올테니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은인."
프로트라인의 배웅을 받은 로브의 남자는 성문쪽으로 움직이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혼자만 방향을 꺾어 황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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