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인세지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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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난세 난세 거렸지만 진정한 난세는 황제가 죽으면서 시작된다.
플레아가 아리나 성으로 내려와서 황녀에게 돈을 보내기도 전에 사건이 터졌다.
2황녀 쪽에 속한 사모아 공작이 1황녀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황제의 서신을 태우려고 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다 쇼지.'
사모아 공작 같은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들키는 지극히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었다.
없애려고 했다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없애고 2황녀를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난세를 원했기 때문이다.
2황녀가 중앙파 귀족들의 입김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면 그녀는 전대의 황제와 마찬가지로 중앙파 귀족의 꼭두각시로 살 것이다.
사모아 공작이 병으로 죽더라도 그녀의 딸이 사모아 공작의 자리에 올라 다시끔 비선 실세의 자리에 오르겠지만 사모아는 그것이 싫었다.
'나는 황제보다 더 강력한 권력과 힘을 가졌다.'
그런 내가 황제가 되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모아 였지만 그녀 스스로가 황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황제가 된다고 일어서면 모든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그녀를 끌어 내릴 것이다.
그녀는 제국에서 가장 큰 가문을 이끌고 있었지만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가문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때를 노렸다.
황제가 죽게 될 때를,
그리고 황위 계승권을 놓고 엄청난 전쟁이 일어날 때를 말이다.
그렇기에 마치 실수인 양 황제의 유서를 태우는 것을 들켰다.
모두가 황위 계승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제압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이 몰락하기를 기대하면서.
"쿨럭!"
그녀가 작게 기침하자 입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죽을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그녀는 기뻤다.
이 정도면 자신의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 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위에 오른 자신이라니, 꿈만 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오려고 하고 있다.
자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딸도, 손녀도 증손녀도, 대대손손 황가를 유지할 것이다.
그녀의 작은 계략은 제도 전체에 큰 전쟁을 불러왔다.
그녀가 일처리를 잘 했다면 2황녀가 무난히 승리했을 텐데 일부러 1황녀측과 2황녀측의 싸움을 조장하면서 모든 세력이 약화되기를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황녀전하. 신에게는 군사가 천명 밖에 없습니다. 제도에 존재하는 모든 귀족들은 일정 수 이상의 병력을 소유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눈에 빤한 거짓말이었다.
법적으로는 제도의 귀족은 병사를 육성할 수 없지만 그것을 지키는 귀족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녀는 제국에서 가장 큰 성세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었으니 병력이 없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2황녀는 그냥 넘어갔다.
사모아의 병력이 없어도 1황녀를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를 벌려두기도 했고 그녀로서는 아무리 사모아의 야욕이 뛰어나다고 해도 황제에게 칼을 들 정도로 미친년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군대 없이 나섰다.
그녀가 2황녀의 먼 친척이었다는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녀의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너, 여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지?"
자신들을 급습한 청기사단을 보고 2황녀의 직속 기사단인 백기사단장이 호통을 쳤다.
분명 자신들은 기습을 하는 입장이었다. 상대가 모르는 틈을 타서 공격해 적을 무력화 할 계획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청기사단이 자신을 먼저 습격한것이 아닌가.
"순순히 투항하라. 우리나 자네들이나 황실에 충성을 해야 하는 황실 기사단이 아닌가. 1황녀님은 적법한 후계자다. 반란을 일으킨 2황녀 밑에 있지 말고 우리 쪽으로 들어오도록."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크리스틴! 세력이 약한 1황녀가 황제에 올라봤자 다른 귀족들에게 위협당할 거다. 더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2황녀님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옳아!"
"전황제폐하께서는 1황녀님을 차기 황제로 지목하셨다. 너는 황제폐하의 명에 반하려는 것이냐?"
"시끄럽다! 비겁하게 기습을 가한 너희와 할 이야기는 없다!"
크리스틴 또한 그녀 나름대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1황녀의 말을 듣고 움직인 것 뿐인데 백기사단이 있었다.
'1황녀님의 정보력이 그렇게 대단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까지 높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백기사단이 있는 곳에 자신을 보낼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의심스러운 것이 있어도 기사는 주군의 검인 법, 더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백기사단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내 쫓았다.
이런 일이 제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모아가 1황녀측에 심어둔 스파이를 이용해 2황녀측의 정보를 보내기 시작하니2황녀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견됐던 전쟁은 팽팽하게 기울고 있었다.
누구 하나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불러오기 시작했는데 3황녀와 2황자까지 후계자 전쟁에 참여한 것이었다.
언니 둘이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동생들이 뭘하냐 싶을 수도 있지만 역으로 서로에게 온 힘을 쏟아 붙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전쟁에 뛰어든 것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황제로서의 능력보다는 더 많은 귀족에게 선택받는 쪽이 황제가 될 수 있는 현 시국의 특성상 이미 콘크리트 처럼 지지층이 굳어 있는 언니들 보다는 자신들을 선택할 귀족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나의 제도를 두고 싸우는 4개의 거대한 세력.
두 개의 세력은 약했지만 다른 두 개의 세려은 매우 강했고 그들이 제도 내에서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며 전쟁을 벌이자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었다.
"이봐! 방금 뭘 숨긴거지?"
"제발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일주일 째 빵 한조각을 가지고 아껴먹었단 말입니다."
병사가 남자를 발로 차자 그가 멀찍히 날아가며 벽에 부딪혔다.
나름 황녀의 병사로서 단련된 여성이 연약한 남자를 발로 차버렸으니 남자의 상처는 어마어마했다.
"커헉!"
"아빠!"
그의 자식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그의 몸을 흔들었지만 그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니 내장에 상처가 생긴 것 같은 데 제도에는 그를 구해줄 사람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건 내가 가져가지. 1황녀님의 병사를 위해 쓴 것이니 아까워하지 말거라."
병사는 그가 지키고 있던 빵을 가지고 다시끔 길을 떠났다.
고작 빵 하나 때문에 남자를 발로 찬 것인데 남자는 병사의 발길질 때문에 거의 죽어가는 상황에 놓였다.
"아빠아아!!"
졸지에 자신의 아버지를 잃게 된 아이들이 그의 몸을 잡고 울부짖었지만 각박해진 제도에서 그들을 지켜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모아의 환상적인 밸런스 조절덕에 전쟁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진행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었지만 사모아는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제도에서 그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을 때 까지 전쟁을 길게 끌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될 지라도 상관 없었다.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 보다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화르르륵!!
"안 돼! 안돼애애!!"
제도 한 복판에서 화염마법을 사용한 마법사의 불똥이 대성당에 튀었다.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불똥은 천천히 불길을 키워갔고 순식간에 대성당 전체를 태울 정도로 큰 불꽃으로 번져갔다.
불이 천천히 번졌기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오래 전 신과 인간들이 연결되어 있을 때를 회상할 수 있는 대성당이 불에 타버린 것은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제도를 두고 싸우고 있는 그 어떤 세력도 대성당이 불 탄 것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모두가 황제의 자리에 혈안이 되어 대성당 같은 역사적 가치밖에 없는 건물이 불타는 것 따위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
세력에 소속된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대성당이 무너진 것을 보고 깊은 탄식을 금치 못했지만 그들 각각은 하나의 세력에 속한 인물이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있을 수가 없었다.
아름답고 화려했던 제도에 피가 차오르고 파괴 감성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귀족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시민 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했고 그 시민단체들은 다른 시민들 배척하며 자신들이 살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제도는, 지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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