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제국에게 충성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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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장례식이 끝났다.
국가의 수장이 죽어버린 파급력이 큰 이벤트 였기 때문에 무려 일주일이나 진행됐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내내 황제의 장례식에서 울었다.
매일 출근하듯이 나와서 8시 부터 20시까지 울었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일주일 내내 울었다.
물을 마시지 못해 목이 갈라지고 피부와 머리가 푸석해 지며 밥을 먹지 못해 몸이 말라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내리 울었다.
이 세계엔 정말 많은 마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사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의 충직함을 의심하지 못했다.
하루 정도 우는 걸 본 사람들은 저 새끼 생쇼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겠지만 일주일을 내내 울고 있는 인간을 보고 감히 의심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위험했어.'
눈물을 훔치는 척 하며 물을 마셨다.
일주일 동안의 갈증에 목이 불타는 것 같았지만 한 번에 많은 물을 마시면 몸에 탈이 날 것 같아서 물에 소금을 살짝 타서 천천히 마셨다.
'이게 되네.'
황제의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게임상에서도 구현이 되어 있는 기능이었다.
캐릭터의 상태에 따라 최대로 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무력수치가 지금 보다 높은 플레아 아이데스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일이었다.
울음이라는 것이 한 번 끊기고 그 다음부터 다시 울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때문에 3일을 내리 울고 하루를 쉰 뒤 다시 3일을 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남녀역전 세계의 플레아 아이데스는 무려 일주일을 쳐 울 수 있었다.
흑마법사의 저주 때문에 육체능력도 약했는데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 정신력 문제지.'
이 몸으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
난세의 플레아가 3일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인 것 처럼 보였다.
목이 아프고 억지로 눈물을 짜내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날을 버티는 것은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넣는 행위였으니까.
게임 캐릭터일 때의 플레아는 3일밖에 버티지 못했지만 나는 일주일을 버텨냈다.
황제의 죽음에 일주일간 내리 운 충신, 그것이 나에 대한 평가였다.
황녀에게 찍혔던 장례식의 첫날과는 다르게 황실파에서 내 입지는 상당히 좋아졌다.
단순히 황녀를 따르는 황실파 중에서는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썩어도 황실파라고 제국에 대한 기본적인 충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주일간 황제를 위해 목놓아 운 나는 단 숨에 황실파에서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의 자리에 올랐다.
어느 역사나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수하가 치고 올라오면 그 수하를 밀어줄 생각을 하지 않고 견제하려고 드는 지도자가 있다.
그것이 황녀였다.
"플레아 아이데스, 그대는 당장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도록."
황녀가 매우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아니, 플레아는 제국에게 충성하는 충신이고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해 냈는데 왜 지방으로 보내려는 거냐는 등의 목소리가 황실파를 가득 매웠다.
"이제부터는 황위를 누가 차지할 지 피튀기는 싸움이 시작되는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플레아 아이데스는 제도에 있는 것 보다 지방에서 우리에게 자금을 대 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야."
말이 좋아 자금을 대는 것이 나에게 전공을 인정해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미래긴 하지만 만약 1황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과 같이 제도에서 싸웠던 이들을 우선시해서 챙겨주겠지.
그리고 나를 천천히 탄압하기 시작할 것이다.
벌써 부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를 지방에 때려박고 시작하는 것을 보면 저년이 황제가 되면 폭군이 될 거라는 건 누구든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황녀에게 항소했다.
나는 정말 충직한 신하라고.
나같은 인간을 믿어야 한다고.
'정말 대단한 충신들이지만.'
놀랍게도 황녀가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제도에 남으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한 동안은 제국에 충성하는 프레임 속에서 살고 싶었지만 제도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정도 프레임은 조금 소모해도 됐다.
황녀는 단순히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나를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었지만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는 말이 있듯 그녀의 조치가 자신과 자신의 세력을 살린 것이다.
'결국엔 멸망할테지만 말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실망한 표정을 냈다.
그리고 바로 가렸다.
마치 실수로 본심이 나왔다는 듯 당황스러운 연기를 하고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황녀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저는 제 영지로 내려가겠습니다."
입을 열면서 천천히 말의 떨림을 줄여나갔다.
"황녀님의 말이 옳습니다. 제도에 남는 것은 저에게 영광을 가져다 주겠지만 제 영지로 내려가는 것은 황녀전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결과를 낳겠지요. 제 영광보다 황녀님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시는 것을 당연히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거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쿵! 쿵!!
그리고는 전력으로 바닥을 찍었다.
언제 한 번 이런일이 생길 것 같아서 미네타를 통해 만들어 둔 큐브를 이용해 확성마법을 전개했다.
내 힘이 원체 약하다 보니 전력으로 찍어도 소리가 그리 크게 나지 않아 편법을 사용한 것인데 미네타급 되는 강자가 작정하고 마법의 여파를 숨기기 위해 만든 마법이다 보니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내 힘이 아무리 약해도 내 육체또한 그 만큼 약했기 때문에 전력으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있으니 순식간에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치면 정신을 잃을 것 같이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만하십쇼!"
누군가가 나를 말려줄 거라는 걸 알았거든.
청기사단장 크리스틴이 나를 막아섰다.
만약 이곳에 프로트라인이 있었다면 그녀가 나를 가장 먼저 막았겠지만 그녀는 황실파이긴 하나 그녀 영지 주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관계로 제도에 올라오지 못했다.
"아닙니다. 저는 제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으려 하니 크리스틴이 나를 꼭 안아 제압했다.
"그만하도록, 나는 네가 땅에 머리를 박게 하고 싶어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알았다면 그 죄를 스스로 갚아나가면 되지 머리를 바닥에 찍는 무식한 방법으로 갚아 나가서는 안된다."
와.
'병신.'
진짜 병신이네.
'자기 입으로 내가 지은 걸 잘못이라고 언급한다고?'
내가 내 입으로 내 행동을 잘못이라고 지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조금 오버 스럽긴 하지만 자아 비판이 심한 충신 정도로 취급 받을테니까.
하지만 군주가 그런 수하의 행동을 보고 이를 잘못이라고 언급하면 안됐다.
내가 한 게 뭐가 있어. 누가봐도 나를 쳐내려는 것 처럼 보이는 황녀에게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가, 바로 정신을 고쳐 먹은 모습을 보인 것 뿐인데.
심지어 실망한 기색을 살짝 보였을 뿐이지 가기 싫다고도 한 적이 없다.
땅에 머리를 박는 건 좀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주일 동안 황제앞에서 쳐 울던 다음이니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고.
때문에 내 행동을 잘못으로 취급했다간 1황녀만 이상해진다.
충신을 죄인취급하다니, 신뢰를 잃어도 단단히 잃을 발언이지.
실제로 그녀가 나를 죄인으로 취급한 순간 주변의 인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게 네 한계다.'
여기서 군주로서의 포용력을 보여줬다면 일이 훨씬 깔끔하게 돌아갔을 텐데.
'하긴, 네가 그게 됐으면 수도 없이 플레이 되는 난세 속에서 한 번 정도는 황제가 됐겠지.'
"아이데스를 데리고 가서 치료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크리스틴이 상당히 차가워진 눈빛으로 황녀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나를 부축하고 황궁 내에 있는 치료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의 눈빛이 아주 세차게 흔들렸다.
제국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황실파의 지지를 받는 1황녀를 밀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폭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녀 스스로도 많이 고민이 될거다.
'이 때를 노려야지.'
"황녀님을 미워하지 마십쇼."
"네?"
내가 갑자기 이야기 할 줄은 몰랐는지 크리스틴의 눈이 땡그랗게 띄여졌다.
"황녀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그런 걸 겁니다. 저는 제국이 다시 살아날 수만 있따면 제가 어떤 취급을 당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단장님은 황녀님을 믿고 끝까지 따라가 주시길 바랍니다."
크리스틴이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다.
이성과 이성으로 반한 것이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반했다는 듯한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맴돌았다.
"아이데스님, 당신은 진정한 충신입니다."
됐다. 넘어왔다.
이제 제국이 망하면 이 년을 낙아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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