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제국에게 충성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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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죽었다고 해서 꼭 제도로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자신이 원한다면 자신의 영지에서 황제가 있는 방향으로 절하며 자신의 영지에 황제가 승하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묵념하게 하는 등의 행동만 취하면 됐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세력들이 더 많았다.
덩치 큰 세력들의 수장들은 그들이 제도로 오는 것만으로도 정치판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고.
덩치가 작은 세력의 수장들은 가봤자 문전박대되는 경우가 많아서 잘 안 가고 다음에 즉위하는 황제에게 막차를 타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황실파에 소속된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황제에 대한 충성이 아주 강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이가 황제의 장례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편지를 여는 즉시 황제의 승하를 전 영지에 알렸고 수하들에게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사를 열게 한 뒤 바로 제도를 향해 움직였다.
'무조건 빨리 움직여야지.'
빠르게 움직여 도착하면 역시 충신! 소리 들을 것을 밍기적거리다가는 괜히 욕을 들을 수가 있다.
각종 마법으로 떡칠이 된 마차를 타고 움직이자 제도까지 가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왔느냐."
"안녕하십니까. 황녀님."
제도에 오자마자 일단 황녀부터 만났다.
언젠가 부터 황실파, 황제에게 충성하는 자라는 것은 1황녀를 따르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실파인 나는 일단 1황녀에게 인사를 하고 시작했어야 했다.
'자기 어머니가 죽었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군.'
겉으로는 슬픔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슬픔이라는 감정따윈 전혀 느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모든 신경이 곤두새워져 있었다.
"플레아, 그대는 내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지금이야 말로 황녀와 나 사이를 끊은 적기라고 생각했다.
제국에 대해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충신이라는 평판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미친 방법이 있었다.
"황녀님 왜람된 말씀이지만 황제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지금은 앞으로 제국을 이끌어 가야할 사람이 아닌 지금까지 제국을 이끌어 주셨던 위대한 분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시간입니다."
내가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자 황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워서 붉어진 것이 아니다.
화가 나서 붉어진 것이다.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아주 당연한 소리를 한 것 뿐인데.
그녀가 화를 낸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반항하는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했고.
그녀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그녀가 황제가 되는 것을 원했다.
내가 그녀에게 하는 말을, 주변 모든 사람들이 들었다.
그들 모두가 황실파라고 불리는 1황녀파였기 때문에 내 말을 듣고 어이 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가 많을 것이다.
다른 상황도 아니고 황녀가 직접 자기가 황제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는데 그 말에 정통으로 반박한 것 처럼 보일테니까.
몇몇 이들은 저 놈이야 말로 진심으로 제국에 충성하는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내 이득을 위해서 제국에 충성을 하는 척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황실파에게 있어서 좋은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 지금은 황제폐하의 장례식이 치뤄지고 있으니,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지."
그녀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이동했다.
짧은 스킨십이었지만 나는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레스티아랑은 안 좋은 쪽으로 차원이 다르네.'
역시 외모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년들은 믿을 수가 없다.
자기한테 조금 방해된 모습을 보이는 것 가지고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황녀한테 미움 받았으면 이제 다 끝났네.'
이건 기점삼아서 천천히 멀어지면 된다.
나는 진심으로 제국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지만 황실파에서 먼저 나에게 벽을 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내 평판은 유지한 체 황실파와는 안녕할 수 있지.
"아이데스 남작님."
황녀가 떠나가고 홀로 남겨진 나에게 청기사단의 단장 크리스틴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단장님."
"아이데스님이 지방으로 내려가시기 전에 봤으니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지요."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은 청기사단장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왜 그러신겁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아까 황녀님께서 하신말에 다른 말을 하셨잖습니까. 아이데스님이 제국에 얼마나 강한 충성심을 가지고 계신지는 잘 알겠지만 황녀님앞에서 그렇게 무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크리스틴의 눈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몰락하면서 자신들에게 쥐여질 돈이 적어지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히 내가 잘못될 것을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정치 초보라고 생각하나본데?'
자기 신념대로만 움직이고 굽힐 줄을 모르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로 모른다.
"단장님, 지금은 황제폐하의 장례가 치뤄지는 날입니다. 아무리 황녀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오늘 같이 중요한 날에는 황제폐하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아이데스님이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말입니까?"
"옳은 말을 해 놓고 불이익을 당하는 처지가 싫긴 하지만, 네,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꼭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크리스틴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일종의 동경이 담겨 있었다.
다른 이들은 제국에 충성한다는 명목으로 1황녀를 따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 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나에게 충고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다가온 것이 아닌가.
반면 나는 제국 그 자체에 충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나에게 동경의 감정을 가지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데스님은 참으로 곧으신 분이시군요. 그 신념이 빛 볼 날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크리스틴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이 있던 자리에 돌아갔다.
'됐다. 청기사단을 확보할 밑 작업이 끝났어.'
단장이 나한테 동경심을 가지고 있으니 적당히 작업만 잘 치면 꿀꺽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장례식장에서 나는 구석으로 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올 사람들이 다 왔다고 판단하자 장례식이 시작되었는데 워낙 힘이 약한 황제였는데다가 다음 황제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에 황제의 장례보다는 자기들끼리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에 대한 회의가 주를 이루었다.
1황녀파, 2황녀파, 2황자파로 나뉘어서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있는 장례식장 안에서 나는 천천히 걸어 황제의 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바로 앞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고 내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 안에서만 움직였다.
털썩!
힘이 빠진 것 처럼 넘어지듯 무릎을 꿇으며 업드리니 생각보다 무릎의 고통이 심했다.
오히려 좋았다.
나는 지금 울어야 했으니까.
"으흑! 흑!"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좋은 추억을 떠올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대한민국의 추억을 떠올렸다.
서로 병신이라고 욕하지만 사실 서로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렸다.
한 방울, 눈물이 흘렀다.
이 정도로는 모자랐다.
황제의 죽음에 실신할 정도로 울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눈물이 필요했다.
나는 가족을 버렸다.
내 입지를 위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를 떠올렸다.
나는 내 추억들을 버렸다.
제국에 충성한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 온갗 슬프고 좋은 추억들을 갈아 넣었다.
나는, 나를 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슬픈 감정들이 내가 잘나가기 위한 감정으로 변했다.
"흐아아악!!"
내 모든 것을 버렸지만 그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울 수 있었다.
황제폐하 왜 제국을 버리고 죽으셨습니까.
황제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 아니었지만 내 슬픔만은 진실이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세 시간.
슬픔이 고갈될 때 마다 나는 내 기억을 버렸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내리 울었을 때, 나는 황제에 죽음에 가장 크게 슬퍼한 충신이 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모두의 미움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싸게 먹힌 거지.
응? 내 추억과 내 기억을 버린 건 아무렇지 않냐고?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군주'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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