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개선식3
* * *
불안했다.
그냥 불안했다.
'그러고보면 미네타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어.'
시에린같이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애가 아닌 이상 다른 애들은 내가 성향을 안다.
미네타는 일반적인 난세에서도 존재했던 인물이었지만 그녀를 내 밑에 둔 적은 없다.
늘 프레스티아 밑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마저도 자기 이름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죽어버린 자기 언니 대신으로 들어간 거야.'
이 정도면 사실상 난세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무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그녀가 어떻게 상을 받고 싶어하는 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상을 주지 말라고 해서 안주면 그렇다고 안 준다고 맘 상해하는 스타일인지.
상을 주지 말라고 한 상태에서 상을 주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애매하면 주는 게 좋아.'
원하던 걸 주지 않으면 화가 나지만 원치 않던걸 받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 번 더 불러서 상을 줄거라고 말하면 진의를 들을 수 있겠지.'
마지 못해서 받는 모습을 보여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것 같고 끝까지 안 받아도 당장은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다.
나중에 자기랑 비슷한 공, 혹은 더 낮은 공을 새운 사람이 자기보다 더 큰 상을 받는 이상한 상황이 나오기 전까진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겠지.
'일단 개선식부터 생각하자.'
어떤 땅을 받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
눈 앞에 거대한 제도가 보였다.
늘 안에서만 봐서 잘 몰랐지만 정문쪽에서 바라보는 제도는 정말로 멋졌다.
커다란 성벽이 잘 관리되어 있었고 성벽위에는 제도를 지키는 군사들이 우리에게 경례를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전진!"
라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군악단의 악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내 앞에서 걷는 사람은 없었다.
내 뒤에는 내 수하들이 들어서 있었다.
북부 이민족이 처들어왔을 때 아이작의 공을 빼앗은 자들이 생각났다.
개선식에서 가장 앞장서서 걷는 것,
단순히 공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 자리를 아이작에게서 빼앗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마음이 고취됐다.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내가 했던 일이 한가지씩 떠올랐다.
프레스티아가 라이넬을 먹기전에 선빵을 친것, 몸을 지키기 위해 들어간 교양마법수업을 기점으로 시에린을 만난 것 제도 구경간다고 하이네스를 따라갔다가 미네타를 만난 것,
흑마법사를 잡고 꼬마 영웅이라는 호칭을 얻고 훈장을 받은 것. 내 이름을 건 상단을 만든 것
방학 때 우리 마을로 내려가서 라이트와 친분을 쌓은 것, 프레스티아와 신경전을 벌인 것, 제도에서 살기위해서 발품을 팔고 돌아다닌 것, 황녀에게 충성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검을 들고 있던 것.
제도에서 몰래 병력을 키워내고 마법병을 육성한것.
그리고 그 외에의 나의 모든 행동들.
그 일들이 개선식에서 가장 앞에서 걷는다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게 살아왔는가.
플레아라는 입지에서 시작한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난세의 지식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노력이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다른 날도 아니고 개선식에서 가장 먼저 들어가는 중인데 자신감좀 가져도 되는 거 아니겠어?
과거의 생각에 빠져 걷는 와중에 제도의 성문에 도착했다.
절차에 따라 성문 앞에 섰다.
"충성! 위대한 황제폐하의 군신 플레아 아이데스가 황제님의 군대를 대신해 전달합니다. 동부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확성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게 전통이었으니까.
짧은 문장이었지만 목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개선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봐도 무방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조용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으로 말했어도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제군들이 제도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제도에서 엄청난 함성이 울려퍼졌다.
사람들의 소리가 내 심장을 마비시키는 것 만 같았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몸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그래도 걸어야 했다.
나는 제국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이니까.
억지로 한발 한발 내밀어 성문을 넘어갔다.
내가 성문을 넘어가고 나서야 뒤에 있던 병사들이 걷기 시작했다.
플레아! 플레아! 플레아!
뭔가,
뭔가 이상했다.
'왜 내 이름이 불려지지?'
원래 개선식에선 황제의 이름이 불려야 한다.
요즘엔 황제의 힘이 약해져서 소리가 약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아닌 내 이름이 불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당황한 척 하지 않고 여유롭게 주변을 쓸어봤다.
제도의 초입에 있던 시민들은 나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꼬마 영웅이라 불리던 이가 진짜로 외부의 적과 싸워 이긴 영웅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기쁨일까?
'선동꾼이 있다.'
아무리 평민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스스로 내 이름을 외칠 수는 없다.
필요할 때만 황제의 편을 드는 중앙파 귀족들과 황실파 귀족들이 지랄지랄 할게 뻔하니까.
'왜 선동했지?'
차가워지려는 가슴이 자꾸 불려지는 내 이름 탓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었다.
'시발 모르겠다. 일단 즐기자.'
어차피 지금 배후를 알아낸 다고 해도 마땅히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을 즐기며 걸어가면 되겠지.
한참을 걸어가다가 행군과 황궁과의 거리가 절반 정도 남았을 때 멈춰선 뒤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대로 대기하고 있다가 황궁쪽에서 황제의 허가가 내려졌다는 신호가 전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펑!
신호탄이 터지는 작은 소리가 들리자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플레아! 플레아!
내 목소리가 울리는 광장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황궁에 도착했다.
황궁의 앞 논공행상을 위해 특별히 건설된 임시 건물에는 얼굴을 가린 황제와 황실파 무리들, 그리고 중앙파 무리들이 보였다.
'황녀가 한 짓인가 보네.'
다른 사람에 비해 얼굴이 너무나 밝았다.
게다가 아직 상이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나 잘했지?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내 이름을 부르게 한 건 그녀의 아이디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전날까지 연락이 없었다?'
서프라이즈라면 나름 훌륭했다.
내 이름을 연호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내 가슴도 뜨거워졌으니까.
조용.
황제의 옆에 서 있던 황제의 비서의 말에 광장엔 순식간에 엄숙함이 감돌았다.
개미 눈알 굴러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전군, 황제폐하께 경례."
충성!!
큰 소리가 광장 전체를 매꿨다.
제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제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황제의 비서가 황제의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체면을 올려주고 듣는사람의 가슴을 고양시키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한참동안 한 후 드디어 본 게임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논공행상을 시작한다. 플레아 아이데스, 앞으로 나오도록.
앞으로 나가서 광장의 완벽한 중앙에 섰다.
내가 다가갈 수 있는 기점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 황제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
그때 황제가 비서에게 무어라 전달했다.
논공행상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을 주는 것 뿐인 행사.
황제가 굳이 입을 열 필요 없는 행사인데도 불구하고 비서에게 말을 건 것이다.
플레아 아이데스, 황제폐하가 왜 청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있는 지 물어보신다.
개선식이라는 중요한 날이었지만 나는 청기사단의 명예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된 정복을 맞출 시간과 돈이 없어서 이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었다.
황제에게 그 누구보다 충성하는 청기사단의 옷을 입음으로서 황제에 대한 나의 충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공을 쌓고 제도로 들어오는 데 청기사단의 정복을 입고 들어오는 것은 스스로의 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냐고.
자신의 격을 낮추는 건 아주 멍청한 일일 뿐이라고.
그것이 내 노림수였다.
내 격을 낮춰가면서 까지 제국에 대한 충성을 표현한다면 다른 사람한테는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제국에 대한 충성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릴 수 있으니까.
"저는 제국과 황제폐하께 충성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직책이 황제폐하께 충성하는 청기사단의 명예기사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청기사단의 제복을 입었습니다."
소리지르느라 목이 나간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소리쳐야 하니 최대한 짧게 말했다.
알았다. 그럼 이제 플레아 아이데스가 받을 상을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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