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개선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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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내가 말을 타고 앞장서고 기사들이 병사들에게 보조를 맞춰줬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에 제도에서 출발할 때와 비교해도 전혀 줄어줄지 않은 나의 군사들이 보였다.
모든 전투를 철저하게 마법병 위주로 진행한 데다가 마법병만으로도 높은 전공을 올릴 수 있었으니 일반 병사를 무리하게 굴릴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부상자 3명 사망자 0명.
여기에 더해 공까지 크게 세웠으니 이번 전쟁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시선을 조금더 옮기니 저 멀리에서 병사들을 따라오고 있는 플린이 보였다.
처음엔 플린이 잘 따올 수 있을지 걱정도 했다.
아무리 어머니한테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플린은 아직 어린애였으니까.
장거리 행군을 쉽게 따라올 수 있을까?
낙오하면 병사들 보고 들고 오라고 해야하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 걱정은 모두 기우였다.
플린은 다른 병사들보다도 더 잘 따라왔다.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기사인 우리 어머니께 어릴 때 부터 단련을 받고 자라오기도 했고 다른 병사들과는 다르게 군장도 들고 있지 않았다.
제도에서 출발할 땐 시간에 맞춰서 갈 필요가 있어서 빠르게 걸었지만 병사들도 전쟁을 치르느라 지치기도 했고 나에게 공을 새우게 해준 공신들에게 빨리 걸으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제도에서 출발할 때에 비하면 훨씬 느린 속도로 걸어가고 있기도 했다.
그 덕분에 플린은 오히려 다른 병사들보다 훨씬 한가한 표정으로 행군을 따라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1차 집결지입니다."
뒤에서 라이넬이 말을 몰아 나에게 다가와 말해줬다.
다른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보니 당연히 개선식이 있었다.
개선식의 특성상 모두 동시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제도의 밖에서 1차적으로 모인 뒤 제도로 진입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 일단 동부 왕국을 막던 군사들 전부가 일차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바로 1차 집결지였다.
아마 북부 반란을 진압할 때도 이런 자리가 있었을것이다.
"개선식이 취소된다는 소식은 없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제국의 이름으로 다른 왕국과 싸웠는데 개선식이 없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라이넬, 너는 주군의 농담도 못 알아듣는거야?"
시에린의 놀림에 주변에 작은 웃음이 퍼져갔다.
전쟁 기간동안 가신들도 병사들과 나름 가까워졌기 때문에 처음에 유지했던 딱딱한 분위기를 계속 고수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농담이 아닐 수 있다는 게 더 충격적이지만.'
동부왕국과의 전쟁은 아이작의 난과 비교하면 아주 초라하고 작은 전쟁이다.
제국내에서 일어난 반란이 다른 나라랑 싸우는 것 보다 더 부담이 크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원래 제국이라는 게 그런 나라였다.
여하튼 그렇게 작은 전쟁이라는 이유로 개선식 자체를 없애 버리고 논공행상에서 받을 공을 크게 줄이려는 인간들이 존재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제국 내의 알력싸움에 의해서 그런 의견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30%정도의 확률로 개선식이 진짜 취소되는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장에 가기 전이나 전쟁 중에 제도에 사람을 파견해서 개선식이 일어날 확률을 올려야 하는데 나는 굳이 그런짓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녀가 내 편이니까.
황녀가 힘이 많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개선식 하나 제대로 열 수 있게 할 능력정도는 충분히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나는 잘생겨서 총애 해줬더니 어느 순간 세력을 키우고 전쟁에 참여해서 큰 공을 세운 인간이었으니 무조건 나를 밀어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1차 집결지에 도착하자, 우리 말고도 다양한 세력이 도착해 있었다.
개 중에는 작년에 동부에서 열린 사교파티에서 만난 이들도 있었고 만나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이곳에서도 외교 활동을 할까 고민하다 역시 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그렇게 강한 세력이 많지도 않았고 어느 정도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라이트와 적대적인 관계나 껄끄러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동맹은 받앙들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암묵적으로 우리는 동지였으니까.
동지가 자신의 적과 가까이 있으면 라이트가 무슨 의심을 하겠어.
내가 최고전공자이긴 했지만 아무도 쓰지 않던 마법병으로 만들어 낸 공에 라이트의 밀어주기가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최고 전공자 정도 되면 집결지의 중앙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있어도 되는 데 우리는 다른이들의 눈치에 밀려 구석에 박혀있었다.
"플레아 아이데스님. 잠시 말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생쥐와 같은 인상.
장사꾼 같은 몸짓과 목소리.
비굴하게 숙이고 있는 목.
누가봐도 일단 얕볼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온몸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십니까?"
"크로프 알레아 남작이라고 합니다. 작은 군대를 이끌고 동부왕국과의 전쟁에 참여했던이입니다."
크로프 알레아.
생쥐 같은 인상에 비굴해 보이는 인상.
누구에게나 다 고개를 숙여서 박쥐같은 행동을 할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는 그렇게 가볍게 볼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지금은 작은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게 전부지만 난세가 진행됨과 동시에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세력의 장이다.
그가 비굴해 보이는 것은 진짜로 성격이 비굴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상대를 방심시키기위한 수에 불과했다.
난세는 아주 오래 지속된다.
헬링 자매가 그렇게 강력한데도.
아이작이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로 활동했음에도.
히스토리아가 음지에서 모든것을 장악했으려 함에도.
수많은 세력간의 균형의 추가 맞춰져 난세는 유지됐다.
그리고 크로프 알레아는 수많은 세력에 속하는 이들 중에서도 탑티어 급에 있는 이였다.
시드빨이 잘 맞으면 헬링 자매도 때려잡고 좀 덜 풀려도 최종전 직전까지는 그 세력을 유지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생긴것과 달리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지.'
작은 땅을 가지고 있는 남작에서 시작해서 제국 전체를 노린다.
적으로 강하게 등장하는 만큼 플레이어가 골랐을 때 난이도도 높은 편이라서 쥐를 닮은 인상의 남캐인데도 불구하고 인기도가 상당히 높다.
"무슨 일이십니까?"
"플레아 아이데스님이 사용하신 마법병을 보고 깊은 감명을 얻었습니다. 괜찮다면 저도 같은 병종을 사용해도 될까요?"
그가 사람좋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는 왜 굳이 나에게 마법병에 대해 물은 것일까?
마법병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져다 쓰면 되는 걸텐데.
'유저들이 도출한 정석은 마법병을 사용할 다른 이들에게 심리적인 우위를 점하고 싶어서였지.'
같은 마법병을 사용한다고 해도 내 마법병은 마법병들의 근본 취급을 받을 것이다.
다른 세력들의 우상이 될테고 그들이 내 마법병들을 닮고자할테지.
최초로 마법병을 만든 건 유저기 때문에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지만 최초 제안자인 나한테 허가를 맡고 병종을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이들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유저들이 도출하낸 정설이었다.
"안된다고 하시면 어떡하실겁니까?"
"원하시는 만큼 액수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적으로 삼겠습니다.
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됐습니다. 그냥 마음대로 만드십시오. 뛰어난 병종을 모방하는 것은 하나의 세력으로 아주 당연한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플레아 아이데스님."
이제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얻고 싶었을 모든 것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나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한 것 만으로 제국에서 두번째로 마법병을 사용했다는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가 두번째로 마법병을 사용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정식적으로 허락을 맡은 것이니 사람들의 뇌리에 그렇게 박히게 되겠지.
그렇게 대단한 이점도 아니었지만 나와 말 몇 마디 한 것 정도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고 생각하면 그의 행동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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