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동부 왕국과의 전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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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왕국은 제국에게 패배한다.
이 당연한 문장은 사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증명되어 있는 말과 다름 없었지만 첫 대규모 회전이 일어난 후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야 동부왕국과의 전쟁에서 제국이 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수준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작정하고 방해하지 않으면 아예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제국의 세력들이나 동부 왕국은 이를 알지 못하고 전력으로 싸우다가 어제 있던 대규모 회전에서 서로의 격차를 확인했다.
제국은 승리를 확신했고 동부왕국은 패배를 확신했다.
서로가 이미 승패를 아는 전쟁은 참 신기하게 돌아갔다.
이미 승패가 결정난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이기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동부 왕국은 항복해도 체면이 깍이지 않을 때 까지 최대한 버티고자 했고 제국측의 세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옆에 있는 이들보다 더 많은 공을 세우고자 했다.
서로 힘을 합치지 않아도 동부 왕국을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새겨진 분위기였던 탓에 일단 자기 세력의 공을 우선시 하는 분위기가 깔리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서로 힘을 합치거나 하지도 않았고 지휘관인 라이트에게도 제대로 된 정보를 넘기지 않는 듯 아주 개판인 상황이 지속됐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렇게 개판이 나는 와중에도 전선은 끊임없이 밀고 적군도 계속 죽였다는 것이었다.
동부왕국과 싸우고 있는 이들은 제국 동부의 세력들이었다. 아무리 망해가는 제국이라고 해도 지방의 경우 제도 상황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데다가 지방들이 강해졌기 때문에 제국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부 왕국은 끝도 없이 후퇴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는 나는 그 공을 인정받았다.
당장 공에 대한 상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라이트가 확실하게 적어 올렸다고 했으니 나중에 논공행상이 치뤄질 때 그에 적합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아이데스님!"
마법병들을 이용하여 적들을 깎아가며 전공 올리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마이테스가 찾아왔다.
하도 자주 찾아와서 이젠 내 가신들이 먼저 인사해줄 수준이 됐는데 이번에도 라이트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모양이어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희 주군인 라이트 리쿠르트님이 부르셨습니다. 급한 일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오늘 방문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왠지 뒷목이 싸악 땡겨오는 느낌이었다.
내 감이 위험함을 울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황자체가 그쪽을 연상하게 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리가 없지.'
라이트 형이 나에게 해꼬지할 일은 절대로 없다.
그와 내가 동맹관계를 맺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이기심을 믿었다.
고작 전공을 많이 쌓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게 해꼬지를 가하기에는 라이트가 잃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지금까지 공을 들여서 관계를 구축한 내가 라이트에게 등을 돌릴 것이고 황녀에게도 찍힐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입으로 앞으로 몰래 협력할 동맹이라고 자신들의 수하에게 다 말해뒀을 텐데 그 와중에 나를 배신한다?
라이트의 수하, 특히 마이테스와 필리엣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아마 속으로는 엄청나게 실망했겠지.
'그래도 압박이나 부탁정도는 넣을 수 있겠네.'
더 이상 공을 세우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나 압박 정도는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동부에서 제대로 된 세력을 쌓은 이라서 공을 많이 세울 필요가 있는 이는 아니었지만 원래 공이라는 건 쌓으면 쌓을 수록 좋은 거니까.
물론 나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추후에 새로 협상을 해야겠지만.
마이테스를 따라 말을 타고 라이트의 막사를 향해 달렸다.
나는 본진에서 거리가 꽤 있는 곳에 막사를 치고 게릴라 전을 적극 사용했기 때문에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인데도 라이트의 막사에 도착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혼자서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령관의 막사라서 그런걸까?
라이트의 막사는 내가 사용하는 막사와는 그 재질이 달랐다.
아무리 좋아도 그저 좋은 천에 좋은 가구 정도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이들의 막사와는 달리 그의 막사는 건물을 통째로 때서 이동한 게 아닌가 싶은 깔끔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컨테이너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 커다란걸 들고 나를 수만 있다면 지휘관의 안전과 위엄은 확실히 강조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세였다.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반말."
"왜 불렀어?"
그의 막사안에는 그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장에서 총 사령관이 자신의 옆에 아무런 호위도 두고 있지 않는다?
그가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너, 공 세우는 거에 완전 혈안이 되어 있더라?"
역시 이쪽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거였나?
꿀 몇병 바쳐야 하나.
"지금까지 각 지휘관들이 쌓은 공을 제도쪽에 올려 보냈는데 네 공에 대해서 아무도 반발을 가지지 않더라고 그제서야 깨달았지. 너, 이번 전쟁에 작정하고 참여했구나?"
"그렇지."
뭐지? 어차피 몸 좀 사리라고 할거면 저렇게 말할 필요가 없을텐데?
"내가 도와줄게. 없는 공을 만들어 줄 순 없지만 있는 공을 부풀리거나 네가 공을 더 잘 쌓을 수 있는 환경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뭐지?
저 인간이 왜 나한테 이 정도까지 호의를 주는 거지?
일단 의심부터 들었다
내가 라이트와 사적으로 친한사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나에게 제안한것은 일반적인 수준의 호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사령관이 된 입장에서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국이 망해가는 와중이라서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대가를 치뤄야 얻을까 말까한 수준의 일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나한테 지원해 줬던 장소, 병장기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위 티어에 있는 이야기였다.
"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가 나를 도와주는 당위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황녀한테 어마어마한 뇌물을 미리 받았나?
"우리는 '동맹'이잖아?"
라이트가 동맹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나한테 왜 이정도까지 호의를 보이는지 알았다.
'아예 제대로 손을 잡자는 거군.'
지금까지 나와 라이트는 사적에서만 친한 관계를 유지할 뿐 세력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황실파였고 그는 지방파였으니까.
게다가 그가 제국의 존속에 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조사해도 나올 정도로 접근이 쉬운 정보였기 때문에 그와 가까이 지낼 수 없었다.
그런데 라이트가 이번에 내 공을 미뤄주면서 동맹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제대로 동맹의 연을 맺자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었다.
암묵적인 동맹 말고 다른이들에게 공표할 수 있는 동맹.
서로의 세력으로 가서 자신들의 세력을 어떤 방법으로 설득할지는 각자의 역량에 맡겨두고서라도 일단 표면적으로는 동맹을 하자는 말이다.
그가 내 공을 작정하고 미뤄준다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최고 전공자의 자리에 올라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모아에게 바칠 추가적인 뇌물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일의 난이도가 쉬워지는 걸 고려하면 손해보는 것도 아니었다.
라이트가 나에게 해주려는 일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왜지?'
그가 왜 나랑 동맹을 하기 위해서 이런 강수를 던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만큼 잠재력이 있는 존재인가?
그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제도에서 꼬마 영웅으로 불리는 아무것도 없던 작은 꼬마에 불과했다.
그 꼬마의 뭘 보고 나와동맹을 맺고자 하는 거지?
"대체 왜?"
궁금한 건 묻지 않고는 알 수 없는법.
"왜 나랑 동맹을 맺지 못해서 안달이야? 나는 작은 세력에 불과한데."
"첫째, 지금은 작은 세력이지만 이번에 큰 전공을 세우면 작은 세력이 아니게 돼. 그리고 둘째,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어."
그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남자의 미소는 좀 역겹긴 했지만 그래도 라이트 정도면 미소년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부족함이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 역함이 좀 덜했다.
"고작 1년 만에 너는 아무것도 없는 꼬마에서 여기까지 왔어. 그런 네가 1년이 더 지나면, 2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미래를 보고 너를 지원하는 거야."
"선구안 납시셨네요."
"그래서, 어떡할거야. 내 손을 잡을 거야?"
라이트가 나에게 오른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오른 손을 뻗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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