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동부 왕국과의 전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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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트 변경백령의 성벽에서 한참은 떨어져 있는 거대한 평지.
넓은 평지에서 두 세력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제대로 회전을 벌이기 전까지는 서로 음지에서 습격하고 보급로 끊어 먹고 개지랄을 떨고 있던 두 세력이었지만 평지에서 마주 보고 있을 때는 서로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이렇게 대규모 병력이 맞붙고 있는 데 그 어떤 모략도 일어나지 않는 건 난세 세계관에서 유구하게 내려오는 암묵적인 약속 덕분이었는데 그 덕분에 전쟁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라 볼 수 있는 대규모 회전을 쓸 데 없는 방해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난세가 가속화 되면서 사라지는 풍조긴 하지만 지금은 참 낭만적이군.'
모두에 대하여 모두가 적인 난세가 다가오면 회전에서 서로에게 잡기술을 쓰지 않는다는 낭만은 사라져 버린다.
제국이 존재할 땐 다른 세력들의 비난이 크게 다가오지만 어차피 모두 갈갈히 찢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비난의 힘이 약해진다.
비난만하고 결국 처들어 오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블래트 왕국의 왕실기사, 헤이트다! 내 검을 받을 자가있는가!"
대규모 회전에선 필수품 처럼 따라다니는 결투가 시작됐다.
서로 자신있는 기사들을 내보내 그들의 실력을 겨루어 보는 단계였는데 난세가 본격적으로 찾아오지 않는 지금시기의 결투는 서로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 것이 암묵적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부상까지는 사지 결손 정도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지만 고의로 목숨을 잃게 할 경우 그 기사는 자기 세력에게서도 쫓겨나는 대단한 비난을 받게 된다.
물론 싸움이 심화되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혹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크게 다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져 상대를 죽였을 경우에는 자신의 세력에게서 쫓겨날 정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를 포함해서 주변 세력들이 전부다 그를 비난할 테니 그걸 감수하는 게 좋겠지.
그래서 결투는 자신이 죽지 않는 것 보다 상대를 죽이지 않게 노력하면서 싸우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생사결과는 그 괘를 달리했다.
"리쿠르트 백작님의 기사, 나 필리엣이 상대해 주겠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필리엣이 앞으로 나섰다.
장래에 소드마스터가 될 것이 분명한 필리엣 답게 상대 기사를 쉽게 제압했다.
동부 왕국이 블래트 왕국이 아니라 그냥 동부 왕국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일반 병사의 질은 비슷하다고 해도 기사나 마법사 같은 고급 병종간의 차이가 제국이랑 상당히 많이 났다.
필리엣은 이어진 결투에서도 연전연승했다. 홀로 3명의 기사를 잡은 다음에야 겨우 패배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세를 올릴 수 있었다.
'회전은 지금 시대가 더 낭만적이지만 결투는 난세가 더 낭만적이군.'
난세가 찾아오면 서로의 목을 노리고 벌어지는 진짜 결투가 벌어진다.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본격적인 난세가 도래했을 때의 결투는 혼자서 여러명을 잡는 기행을 벌일 수가 없다.
자신과 비슷한, 혹은 한 수 아래의 기사와 생사결을 벌였는데 어떻게 몸이 멀쩡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여러번 결투가 벌어지지도 않는다.
자신의 세력의 기사가 죽은 것이다.
자신의 세력의 기사가 살대를 죽인 것이다.
그런 긴장감과 흥분 속에서 두번째 결투가 일어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결투는 3대 18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리가 승리했다.
결투에만 한 시간씩 사용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든 우리를 이겨보겠다고 기사를 투자하니 그만큼 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서로의 기사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풀어져 있던 병사들이 자세를 다잡고 서로를 노려봤다.
병사들도 이제는 자신들의 차례라는 걸 알았다.
기사들이 사기를 가져오기 위해서 적들을 쓰러뜨린 것 처럼, 이제 병사들이 상대의 병사를 죽일 차례였다.
천천히, 천천히 다가갔다.
창병으로 이루어진 중앙이 천천히 다가가는 동안 기병들이 양옆에서 상대를 에워쌌다.
물론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제작된 창을 세워 말을 막기도 하고 그 쪽 방면으로 화살을 날리기도 하면서 기병을 견제했다.
"쏘라!!"
라이트의 신호가 들려왔다.
"다들, 준비한 마법 발사해."
마법진의 모양으로 서 있던 마법사들의 아래가 빛났다.
100명이 반년동안 매일 3시간씩 연습했고 오늘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1시간을 추가로 고생한 대규모 마법이 일어났다.
고위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주변의 마나가 싸악 끌려 가는 것이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법진은 끊임 없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곧 마법병들의 머리 위에 거대한 불꽃의 공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저 년들을 막아라!"
이런 대규모 마법을 실행하고 있는데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었다.
적의 궁수들, 기병들이 마법병들을 방해하기 위해서 이쪽으로 빠르게 뛰어왔지만 이미 막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이었다.
저렇게 거대한 불꽃을 오래 띄워놓고 있으면 적이 공격하기 딱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네타가 마법진 단계에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쾅!!!
거대한 불꽃이 적진 정가운데에 박혔다.
적들이 데리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고위 마법사가 부랴부랴 막기 위해서 방어막을 펼쳤지만 아무리 고위 마법사라고 해도 급조한 마법으로는 마법병들이 만들어낸 불꽃을 막을 수 없었다.
거대한 폭발이 적진의 중앙에서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맡이했다.
몇명이나 죽었을까.
몇백명?
어쩌면 천명 단위에 이를지도 모른다.
적들의 창병은 아주 빽빽하게 붙어있었으니까.
"비겁한 놈들! 신성한 회전에서 고위 마법사를 사용하다니!"
적군의 장군이 화낼만한 일이었다.
두 세력이 처음 회전을 벌일 때는 병사들만 사용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적들의 마법사가 우리가 아무런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고.
"우리는 고위 마법사를 사용한 적이 없다. 우리가 사용한 건 일정 기간 동안 교육받은 마법병들이다."
라이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마법병의 활약으로 적이 천명이나 죽었는데 저렇게 웃음기 있는 말을 할 수 있다니, 역시 라이트 형도 전장에 나서면 사이코가 되는 모양이었다.
"주군. 입을 다무시지요. 주군이 웃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만 이곳에서 웃으시면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내가 웃었어 마디안?"
"네, 입이 찢어져라 웃고 계셨습니다."
천명의 병사를 죽이고 상대의 기를 죽여버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기뻐서 웃음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해 좀 해줘라.
이러려고 반년간 고생고생 해서 마법병 키운 거니까.
"그래 입 간수 잘하도록 하지."
"입 간수 말고 얼굴도 잘 간수하시죠. 다른 세력이 주군의 얼굴을 보고 탐을 낼까 두렵습니다."
"나는 내 군사를 이끈 시점부터 다시는 가면을 쓰지 않고자 마음 먹었다. 다른 이들에게 내 얼굴을 보이기 두렵다고 해서 나를 가장 신뢰해야할 병사들에게도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니까."
"주군의 말이 옳습니다."
왠지 반박시 네 말이 옳음 당한 기분인데.
아직도 찔끔찔끔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 누르고 전장을 살펴봤다.
적진 한 가운데에 뚫린 거대한 검은색 구멍.
여기까지 느껴지는 시체 타는 냄새.
사기를 잃어버린 적의 군사들까지.
마법병이 태워버린 곳은 전체 중에 일부에 불과했다.
상대도 적어도 수만, 많으면 십만이 넘는 병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명의 병사가 타 버린 것은 전장 전체에서 받을 때는 크게 들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옆에 서 있었던 병사가 한 순간에 타버리고 자신의 몸에화상을 입은 채 괴로워 하고 있는 자가 바로 옆에 있으니 파이어볼이 박힌 곳 부터 사기가 저하되기 시작했고 곧 전장 전체를 암울한 기운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후퇴한다!"
적들이 천천히 빠지다가 점점 속도를 높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메뉴얼대로 안전히 후퇴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멘탈이 터진 병사들이 뛰기 시작하고 옆에 사람이 뛰니까 같이 뛰는 병사들 탓에 제대로 된 후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기병이 있었나?"
"없습니다. 주군."
"아쉽네."
도망가는 적들 썰어버리는 게 그렇게 전공에 도움이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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