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동부 왕국과의 전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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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최고 전공을 세우기 위해선 마법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시에린이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하자 나를 포함한 모든 참모진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애초에 전선에 오기 전에도 몇번이고 강조한 만큼 마법병을 기반으로 한 작전을 짜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참모진은 없었다.
"... 죄송합니다. 제대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분위기 풀려고 장난 좀 쳐봤습니다."
"괜찮다."
"분위기를 싸해지게 만들긴 했지만 마디안의 말이 맞습니다. 마법병을 아주 끝장나게 잘 이용해야죠. 그리고 100명밖에 없는 마법병을 최대한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게릴라전이라고 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대로 된 귀족 출신 마법사가 병사들을 습격하는 건 전장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우리가 데리고 있는 것은 100명의 마볍병들이었다.
미네타가 그들을 지휘하긴 하겠지만 그녀는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니 암묵적인 약속을 어길 일도 없었다.
"그러니 좀 어렵더라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독립부대의 권한을 얻어내셔야 합니다."
"이미 얻어냈다. 내가 말 안했던가?"
"말 안하셨습니다."
이건 일종의 쇼였다.
시에린에게는 말한 적이 있었지만 다른 참모진들에게는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에린이 모른 척 하고 다른 참모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이쪽으로 진행시킨 것 뿐이었다.
다른 참모들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충직한 심복인 시에린에게 먼저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삐질 수도 있으니까.
확률이 낮아서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긴 했지만 진짜 운이 나쁘면 이런 사소한 일에 삐져서 지력이 개판이 날수도 있기 때문에 사소한 점에서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100명 규모가 아니라 우리가 데리고 온 모든 병사에 대해서 독립부대 권한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거 얻어내느라 진짜 죽을 뻔했다.
아무리 나와 라이트가 친한 사이라고 해도 윗대가리의 명령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부대를 만드는 대가는 비싸게 지불해야 했다.
일단 전장에서 철저하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내 컨셉을 버리고 둘이서 만나는 자리에선 라이트 형이라고 불러야 했으며 최고 전공자로 서게 되면 받게될 상 중 물질적인 것의 절반을 라이트에게 바치리라 계약했다.
그것도 모라자 꽁꽁 아껴놨던 하이네스의 꿀까지 가져다 바치니 그제서야 완전한 독립부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마저도 내가 라이트와 친해서 가능했던 일이지 내가 라이트와 미리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불한 대가에 배를 내놓아도 100명 단위의 독립부대를 얻기도 힘들었을 거다.
게다가 100명의 독립부대를 만드는 대가로 나머지 천 명의 병사를 데려가서 고기 방패로 쓰겠지.
'역시 라이트랑 친해진 건 신의 한수야.'
사람은 능력있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딱히 수고한 건 없다."
"그러면 저희가 완전히 독립부대가 된 것이니 움직임이 아주 자유롭겠군요."
라일라가 눈을 빛내며 지도를 바라봤다.
일반적인 행정인력의 역할도 충분히 잘 해줄 수 있는 라일라였지만 그녀의 주특기는 군사전략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력 중 마법병 100기라는 그녀조차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전력이 있긴 했지만 그녀라면 아주 완벽한 정보를 짜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군에 대한 정보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적군에 대한 정보 말인가?"
미리 챙겨놨던 종이를 펴서 탁자위에 깔아놨다.
"이게... 뭡니까?"
"동부왕국의 대 전략이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이런 고급정보들은 다 암호화 해서 저장하고 있을 텐데..."
"암호를 푸는 데 아주 적합한 인재가 하나 있지 않나."
"자칭 수학자가 일을 잘하는 군요... 이 문서 하나를 해석한 것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전공입니다."
문서를 입수하는 데에도 꽤 많은 고생이 들어갔다.
제도에서 자기 정보원들을 육성하고 있는 섀도스탭을 전장까지 데려와서 동부 왕국에 침입시킨 후 적에게 들키지 않게 문서만 필사해서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섀도스탭이 문서를 입수하고 티아나가 문서를 해독했다.
그리고 그 문서를 이용해 라일라가 최선의 전략을 도출한다.
'내가 부하들은 끝장나게 잘 뽑았단 말이지.'
메인으로 기용한 부하들이 자신의 몫을 200% 이상 발휘하고 있었으니 내가 동부왕국과의 전쟁에서 최고전공자가 되는 것은 확실한 일이었다.
변수는 없었다.
몇번을 뒤져봐도 나를 막아설 수 있는 세력은 동부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중앙이나 다른 지역의 세력이 동부왕국과의 전쟁에 크게 눈독들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이겼다.
***
"공격이다!"
목 놓아 소리치며 적의 침입을 알린 병사가 그 상태 그대로 불타 죽었다.
마법 중에선 상당히 하위로 취급되는 파이어볼이었지만 그런 파이어볼으로도 일반 병사는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공격해라! 최대한 많은 적을 잡아 죽여라!"
가만히 앉아있던 적을 기습하긴했지만 공격자들에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미네타를 제외하면 전부 일반병에 속하는 이들이기도 했고 미네타는 마법수정구를 들고 자신들의 전공을 기록하고 있을 뿐 전투에 참여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전장의 압묵적인 약속을 깨 버린 것도 아니었다.
"공격하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진영을 다잡는 적들의 중간에 100개의 파이어 볼이 떨어졌다.
병사들의 마법은 명중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100개 정도 떨어져 내리니 명중률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 불의 세례가 떨어져 내리니 수많은 적군들이 사망했다.
불에 직격한 이는 끽 소리도 못내고 바로 사망해 버렸고 주변에 있다가 화염에 휩쓸려 죽은이도 많았다.
마법병의 마법은 철저하게 병사들만 노렸다.
기사들을 상대로 1~2서클의 낮은 마법을 사용해 봤자 그들의 마나 저항력에 의해 막혀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병사만 집요하게 공격하여 적군을 몰살시키고 마나가 다 떨어지자마자 머리를 돌려 전장을 빠져 나왔다.
적군들이 자신들을 따라오긴 했지만 마나를 남겨 놓은 소수의 마법병들이 견제용 마법을 몇번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소규모의 추적은 따돌릴 수 있었다.
미네타는 바로 마법병들을 데리고 자신들의 막사로 이동했다.
"적군들을 몰살시키고 왔습니다. 영상이 담긴 마법구입니다."
"그래. 잘했다."
마법병들을 이용한 게릴라 전으로 상대와 대규모 회전이 벌어지기 전 적의 전력을 최대한 깍는다는 아주 단순한 작전은 잘 시행되고 있었다.
미네타와 마법병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적군들을 공격했고 한 번 공격 할 때 마다 못해도 300명은 되는 적들을 깎아냈다.
그렇게 죽인 적들의수가 무려 5천 명이었으니 제대로 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지을 수 있는 최대 수준의 공을 세운 것이다.
"가면 갈 수록 적들의 대비가 삼엄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놈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마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병사들 끼리 거리를 두고 서기도 했고 병사들 사이사이에 기사가 끼어들어가 마법을 없애 버리는 걸 시도하는 적들도 있었다.
당장 이번 전투에서도 병사들이 넓게 퍼져 있어서 병사가 마법에 직격할 확률이 많이 떨어져서 효율이 떨어졌으니 상대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아이데스 님은 어디계십니까."
마법병들의 마나를 모두 회복시킨 뒤 다시 전투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마이테스가 플레아의 막사에 다가왔다.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라이트 리쿠트르님이 서신을 보내라 명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플레아가 마이테스가 내민 서신을 받아 읽었다.
아우야, 곧 대규모 회전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구나, 게릴라 전으로 상대의 전력을 깍는 것도 좋지만 대규모 회전에서 활약해야 제대로 된 공을 세울 수 있지 않겠니. 너에게 독립적인 지휘권을 줬으니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되도록이면 대규모 회전에 참여해서 네가 만든 비밀 병기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해 줬으면 좋겠다.
'이 양반이 걱정이 심하네.'
내가 설마 회전에 참여를 안하겠어?
마법병이 게릴라 전에 특히 강한 병사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회전에 약한 이들도 아니었다.
"원하는 대로 해드린다고 전해주십쇼."
"알겠습니다. 아이데스님."
마이테스가 나를 몇번 빤히 바라보다가 겨우 몸을 돌려 우리의 막사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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