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캐를 꼬시는 법-211화 (211/312)

〈 211화 〉 출전­4

* * *

라이트의 가신이 찾아왔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라이트의 가신이 다 온 것은 아니었다.

마이테스와 필리엣,

나에게 반한 것 처럼 보였던 두 사람만 우리 막사에 찾아왔다.

"아이데스님!"

내가 앞에 나서자 마이테스와 필리엣이 나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반갑습니다. 마이테스님, 필리엣님, 리쿠르트님의 가신분들이 이곳엔 왠일이신지요?"

표정을 거의 굳힌 채 딱딱한 말투로 그들을 대하니 그들의 표정도 같이 굳었다.

얘가 내가 아는 아이데스가 맞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다고 해도 나는 표정을 풀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주군인 리쿠르트에게도 철저하게 사무적인 어투로 대했는데 그의 가신들한테는 편하게 대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저... 아이데스님?"

"네, 마이테스님."

내가 계속 딱딱하게 굴자 필리엣은 무언가를 알아차렸는지 마이테스를 툭툭 치며 눈치를 줬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이데스님, 저희가 결례를 저질렀군요."

자신의 친우인 필리엣마저 표정을 굳히 사무적인 어투를 내 뱉으니 마이테스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죄송합니다.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네요."

공적인 자리에서 서로 예를 차리는 아주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건데도 마이테스는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필리엣이 완벽하게 진정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과는 대조되어있는 모습이었다.

"괜찮습니다.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저에게 찾아오셨다면 충분히 대접을 해 드려야죠.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그들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솔직한 말로는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걸 텐데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서로 눈치를 볼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더 몰아 붙이면 역효과가 나겠지?'

라이트가 거의 내 편이고, 그녀들도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압박한 것도 아닌 축에속하는 이 정도로 큰 문제가 벌어질 확률은 낮았지만 굳이 개인적으로 감정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아, 혹시 리쿠르트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훈련장 이용허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러 오신 겁니까?"

"네?"

"맞습니다!"

얼타고 있는 마이테스와는 다르게 필리엣이 바로 대답했다.

"저희 주군이 아이데스님의 군대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안 쓰는 훈련장을 이용하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장소로 안내해 드리기 위해 저희가 온 겁니다."

필리엣은 내 말을 아주 잘 알아들었다.

자신은 언급 받은 적도 없는 훈련장 사용허가에 대해 말하러 온 것 처럼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이년은 저 오는 김에 같이 데려온 겁니다. 그래서 왜 여기에 왔는지 알지도 못하죠."

"그렇군요. 리쿠르트 님께 지도를 받았으니 안내는 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를 위해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자 필리엣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희는 주군의 명을 받들었을 뿐이니까요."

그리고는 슬 마이테스의 눈치를 보더니 천천히 뒷걸음 질 쳤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네, 그 때 뵙도록 하죠."

그렇게 필리엣과 마이테스는 자신들이 타고온 말에 올라타 도망쳤다.

"신기한 사람들이네요. 자기들이 총사령관의 가신이라는 걸 좀 기억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에요. 제가 저 사람들 입장이었으면 훨씬 더 과격하게 밀고 들어왔을 거에요."

옆에서 라일라가 궁시렁 걸렸다.

"그럴 성격이 못되는 데 어떡하냐."

"그나저나. 안 쓰는 훈련장을 제공받았다는 게 무슨 소리에요?"

"내가 리쿠르트랑은 개인적인 친분이 좀 있거든. 공터에서 막사치고 잔다고 하니까 편하게 지내라고 안쓰는 훈련장을 제공해 줬어. 관리가 안돼 있긴 하겠지만 맨 땅에 막사치고자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할거야."

"좋아요."

라일라가 다른 가신들에게 눈치를 주니 바로 밑으로 이야기가 전달됐다.

"막사 접어라! 실내에서 잔다!"

병사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몇몇 기사들이 즐겁게 말하자 조금 더 밝은 분위기에서 막사를 거둘 수 있었다.

힘들게 친 막사를 모두 거두라는 명령은 병사들 입장에선 하늘이 떨어지는 듯 아찔한 명령이었지만 그 이유가 편하게 자기 위함이니 그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막사를 거뒀다.

막사를 다 접자마자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도시를 기준으로 잡으면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도시 밖에서 출발하는 만큼 도시에서 가는 것 보다는 빠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깨끗한데? 안 쓰는 훈련장이라고 해서 완전히 방치 됐을 줄 알았는데 주기적으로 관리하긴 했나봐."

훈련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깨끗했다.

넓게 펼쳐져 있는 공터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훈련장 옆에 지어진 건물의 우리의 관심처 였는데 천 명 정도의 병사는 충분히 누워서 잘 수 있는 데다가 냉난방 마법도 아직 작동하고 있는 등 생각보다 훨씬 좋은 쉼터가 될 수 있는 걸로 보였다.

다른 것 없이 땅바닥에 천 쪼가리, 그리고 그 위에 얇은 이불 하나 올려놓고 잘 뻔했던 병사들에게 딱딱하긴 하지만 방의 바닥에서, 그것도 두꺼운 이불을 올려 놓고 잘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었다.

"제대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여기서 지내면 되는 건가?"

"어, 아예 라이트 형한테 허락을 맞고 일종의 기지 역할을 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여기서 전장이 될 곳 까지 그렇게 먼거리가 아니잖아."

리쿠르트가 괜히 변경백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지는 제국의 동부에서도 최고로 동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 말인즉, 동부 왕국과의 전장이 될 장소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불과 20km정도만 동쪽으로 향하면 거대한 성벽이 쳐져 있었다.

오래전 제국이 전성기를 맞이할 때 세워놓은 성벽이었는데 그 성벽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이 메인 전장이 될 예정이었다.

리쿠르트 변경백령 말고도 다른 영지에도 동부 왕국의 전력이 쳐들어오지만 동부 왕국이 주로 노리는 곳은 리쿠르트 변경백령이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리쿠르트 변경백령 근처의 성벽으로 쳐들어 올 것이며그 만큼 더 많은 수의 적을 죽여 공을 세울 수 있는 곳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줄 하나는 정말 잘 탔단 말이지."

내가 라이트와 친하지 않았다면 이런 메인 전장이 아니라 구석 전장에 짜져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흘러가기를 가만히 두지는 않을 테니 결국 이쪽 전장으로 오기는 했겠지만 낙하산으로 박힌 것 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역시 친구는 잘 사귀어 두면 쓸 대가 많다니까, 그를 처음 만난 것이 거의 1년 전이니 1년만의 존버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적이 움직이는 기색이 보이자 마자 성벽으로 이동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동부 왕국도 워낙 밍기적 거리는 애들이라서 병력을 움직이는 데만 해도 2주일 이상은 더 걸릴 거다.

'아예 겨울전을 염두에 두는 걸 수도 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엔 어차피 동부 왕국의 침공은 난세를 일으키기 위한 트리거 중 하나로 밖에 작용하지 않는데 그렇게 세세한 설정까지 짜 뒀을 것 같진 않다.

병사들이 행복하게 군장을 풀고 쉬는 걸 보니 나까지 다 행복해졌다.

***

훈련장에 도착한 이후부터 병사들이 할 것은 없었다.

전장이 코 앞에 있는 데 훈련을 진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었고 오랫동안 행군한 병사들에겐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한 병사들이 전장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물론 진짜 강군은 오랜 시간동안 행군하자마자 바로 전쟁에 투입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아직 나의 병력들은 긴 행군 뒤에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병사들이 할 건 없었지만 간부들이 할 것은 많았다.

주변에 우리들 말고 어떤 군대가 왔는지.

그들과 우리들간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그 새끼들은 왜 저기서 알짱대?"

"그걸 나한테 묻는 다고 아냐? 쟤네들이 한다는 데 내가 그걸 어떻게 막아!"

참모진 중 가장 상위에 있는 라일라와 시에린을 구경하며 나는 팝콘이나 뜯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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