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출전3
* * *
"아들아!"
울음기 있던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꼭 껴안을 때가 되니 완전히 울먹이는 어투로 바뀌어 있었다.
플린이 옆에 있었다면 그 나이먹고도 울고 싶냐고 장난을 쳤겠지만 플린은 저 멀리에서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네 ,어머니."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어머니가 나를 꼭 껴안아 주셨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거대한 가슴이 내 얼굴을 짓눌렀지만 육체적으로 어머니라서 그런지 성욕같은 것은 하나도 일지 않았다.
"전부 너의 병사들이냐?"
"네, 전부 저의 병사들이고 저의 가신들입니다."
내 뒤로 도열해 있는 천명의 병사들이 전부 나의 사람들이었다.
나를 위해서 전장에서 나서고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충직한 부하들이었다.
"네가 정말, 정말 자랑스럽다."
"울지 마세요. 어머니."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작년에 아카데미로 떠난 아들래미가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사람을 모아 동부로 왔다.
그런 병사의 수가 천명이 넘으니 어머니된 자의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워 보일지는 감히 상상히 가지 않았다.
물론 내가 남자기 때문에 걱정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거친 세상속에서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내가 병사들을 잘 지휘하고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 걱정도 많이 되시겠지.
'결과로 보여드리면돼.'
앞으로 써 내려가질 내 신화를 보여드린다면 그녀의 걱정도 한 꺼풀 사그라 들것이다.
"오빠!"
한참뒤에서 뛰어 오고 있던 플린이 나와 어머니 품안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꼭 껴안았다.
어린애라 그런걸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 엄청 컸다.
"플린."
"오빠도 전장에 나가는 거야?"
"어, 전장에 나가야지. 우리 마을을 지켜야지."
플린이 감동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어머니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바로 갈거야?"
"네, 바로 갈거에요. 병사들을 여기서 계속 기다리게 둘 수도 없으니까요."
"전쟁이 끝나면, 꼭 마을에 다시 들려라."
"전쟁이 끝나기 전에도 몇번 찾아올 거에요. 원래 전쟁이라는 게 늘 팽팽하게 진행되는 게 아니니까요."
어머니와 플린의 품안에서 벗어난 뒤 마을을 향해 다가갔다.
"아이데스 마을의 아들 플레아 아이데스입니다! 제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마을에 동부 왕국이 발을 들이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앞으로는 두 발 쭉 뻗고 생활하십쇼!"
마법까지 써 가며 성량을 확대해서 마을 전체에 소리를 지르니 마을 안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나와 친했던 애들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내 눈에서 알 수 없는 액체가 흐를 정도였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몸 조심해서 다녀와라... 마음만 같아서는 나도 너를 따라가고 싶지만..."
"압니다. 어머니는 쿨리온가의 가신으로서 아이데스 마을을 지키셔야 한다는 걸 말이에요."
"미안하다."
"미안해 하실 것 없어요.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어머니의 숭고한 임무를 짊어지시는 거니까요."
"고맙다."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포옹을 나누고 플린과도 다시 포옹을 한 후 뒤돌아 섰다.
어머니와 플린을 바라보던 시선이 떨어지자마자 내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갔다.
흐르는 눈물을 마법을 통해서 말렸다.
감동적으로 변하려는 얼굴을 억지로 바로 잡았다.
그 얼굴 그대로 병사들에게 걸어갔다.
"자네들의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다. 행군을 재개하도록 하겠다."
"""충성!!!"""
병사들이 평소보다 훨씬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여기까지 걸어 오느라 많이 피곤했을 텐데 내 뒤에 서 계시는 어머니에게 나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가자!"
"""알겠습니다!!"""
병사들의 우레와 같은 대답을 들으며 말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며 전선으로 나아갔다.
***
"오랜만이다."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나와서 나를 반겨주는 이와 가볍게 포옹을 했다.
아까 어머니와 했던 포옹만큼 가슴을 간지르는 무언가는 없었지만 사나이끼리의 뜨거운 포옹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리쿠르트 지휘관님."
"하아... 전장도 공석이라는 거냐?"
물론이지.
전장만큼 공적인 자리가 어딨어.
나라와 나라끼리 싸우는 전쟁이고, 제국 동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력들이 한 군데에 모이고 있는 건데 당연히 존댓말을 해야지.
"어차피 주변엔 아무도 없어. 너랑 나 밖에 없는 데 왜 존댓말을 쓰는 거야?"
1차 집결지인 리하트 변경백령에 모인 우리들이었지만 병사들 전부가 리쿠르트 변경백령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아직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병사들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성을 눈앞에 두고 오늘 밤 지낼 막사를 치고 있을 병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긴 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의 병사를 성 안에 들이는 건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당연히 존댓말을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리하트님은 저희 직속 상관이시니까요."
".... 그래, 알았다. 나중에 사적인 자리를 만들 테니까 그 때 다시 이야기 하자."
라이트가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라이트는 동부 왕국과의 정쟁에서 총 사령관을 맡은 아주 높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건 절대로 이로운일이 아니었지만 그와 내가 무슨 사이인가.
그가 자신들의 가신을 모아놓고 즐기는 파자마 파티에까지 참여한 사이가 아니던가.
이 정도로는 조금 삐지는 것에서 끝나지 절대로 나에게 불이익을 줄리는 없을 것이다.
"병사는 얼마나 대려왔지?"
내가 계속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자 라이트가 형식적으로라도 딱딱한 말을 쓰면서 나를 말을 이어나갔다.
"1100명의 일반 군사와 18명의 장교급 병력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정확히 얼마나 데리고 왔는지는 문서를 통해 확인했다. 그 병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리쿠르트 성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공터에서 막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 보도록."
라이트가 자신의 서랍을 뒤지더니 리쿠르트 성 주변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꺼냈다.
"여기로 가면 우리가 예전에 쓰던 훈련장이 하나 있다. 안 쓴지 1년 가까이 돼서 관리가 미흡하긴 하겠지만 아마 막사에서 자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게 잘 수 있을거야. 거기서 지내도록."
무심코 입을 벌리고 놀랄 뻔 했다.
아무리 안 쓰는 훈련장이라고 해도 막사와 건물은 차원이 달랐다.
안 그래도 오랜 시간 행군으로 고생한 병사들을 막사에서 재우는 것이 미안했는데 훈련장을 빌려준다니,
아무리 라이트와 내가 친하다고 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호의다.
그의 입장에선 그저 안쓰는 훈련장을 빌려준거라고는 해도 이곳에 모일 수많은 군대 중 나 하나에게만 훈련장을 빌려주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좀 편하게 대하든가."
라이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팔꿈치를 올리는 모션을 취했다.
"들을 거 다 들었고 말할 거 다 말했으니까 내가 알려준 훈련장에 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오늘과 내일은 푹 쉬고 내일 모레 아침에 여기로 다시 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리쿠르트님."
"이름으로 불러!"
그의 호통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내 병사들에게 이 기쁜 일을 말해주고 싶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밖에 대기시켜 놨던 말을 타고 병사들이 막사를 치고 있는 공터를 향해서 미친 듯이 내달렸다.
2km나 되는 거리였지만 말을 타고 달리니 그 정도 거리를 주파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데스님은 이곳에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내가 말을 다룰 수 있는 한계까지 몸을 움직여 가며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막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라이넬을 비롯한 기사진들이 앞으로 나와 누군가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나는 라이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예의 없는 자가 내가 없다는 것을 알고도 계속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라이넬의 성격상 저 정도 어투에서 끝날리가 없었다.
저것보다 열배는 강력한 목소리로 돌아가기를 종용해야 정상인데 그녀의 말투는 상황치고는 너무 온화했다.
알 수 없는 의문을 가지며 그들에게 가까이 가니 왜 라이넬의 반응이 그렇게 온순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 아이데스님!"
"마이테스님?"
우리 막사에 찾아온 것은 라이트의 가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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