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출전1
* * *
사모아 공작은 죽어가는 중이다.
죽는 시간이 정확하게 예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빠르면 몇달, 아무리 늦어도 1년이면 무조건 죽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사모아 공작이 죽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사모아 공작은 기본적으로 제도의 흑막으로서 오랜 시간동안 존재해 온데다가 프레스티아 처럼 떠오르는 세력이 아니라 기성 세력이다 보니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그렇게 들어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세를 처음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사모아 공작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누군데? 로 시작하게 되는 것은 아주 흔한일이었다.
커뮤니티가 제대로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은 초창기에는 사모아 공작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게임에서 사모아 공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자체가 많이 없는데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게 아니라면 미리 약을 먹고 있어서 절대로 각혈을 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갑자기 찾아온다고 해도 그녀가 지금처럼 각혈을 토할 확률은 3%가 되지 않았다.
확률이 이렇게 극악한데 어떻게 그녀가 아프다는 걸 알 수 있겠어.
그냥 죽으니까 죽는 갑다 한거지.
나도 그녀가 직접 피를 내 뿜는 걸 본 건 수백판을 한 다음의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 커뮤니티를 통해 슬쩍 읽어본 결과 그녀가 죽어간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말이야.
'근데 왜 그 3%가 지금 터지냐고요!'
사모아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잘못해서 피가 터진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 피가 터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약한 모습을 본 순간보다 나는 죄인에 준하는 취급을 받게 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더라?'
상당히 위급한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지 커뮤니티에 정리되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커뮤니티 글을 자세히 읽어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기억이 날리가 없었다.
다른 캐릭터는 자주 벌어지는 이벤트라서 몸이 기억을 하는 데 이 인간이 피 토한 건 나도 이번이 두번째니까...
"뭘 그렇게 쳐다보지?"
꺼지라는 건가?
아니면 도와주라는 건가.
꺼지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도와주는 게 맞는 건가?
도와달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꺼지는 게 맞는 건가.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갈대 같아서 방금전까지 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진짜로 안도와주고 꺼지면 도와주는 것 보다 마음을 더 상해하고.
도와달라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괜히 도와주면 약점이 들켜서 더 싫어하는 경우가 있었다.
난세는 기본적으로 게임이다 보니 그런 현상이 좀 더 심하기도 했고.
"도와드릴까요?"
입가에 옅은 비소를 짓고 말했다.
지금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는 몰랐지만 그녀의 성격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순수한 호의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로지 이득과 이득으로 엮여있는 관계만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미 그녀의 약한 모습을 본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 말하지 않는다면서 빌빌 길어봤자 의미가 없다.
"도와줄 필요는 없다."
이런 일이 한두번 있던 것이 아닌 듯 그녀는 자연스럽게 입에 묻어있는 피를 닦아내고 약을 먹었다.
"후우...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군."
"어디가서 이야기 하지는 않겠습니다."
억지로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입꼬리를 꼬았다.
"나는 말을 믿지 않아."
"그러면 뭘 원하십니까? 제가 두눈으로 본 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위해서 대가라도 치뤄야 합니까? 어이가 없군요."
내 말투가 상당히 사나워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그녀에게 뇌물이나 주는 을이였지만 지금은 내가 갑이었으니까.
그녀가 나를 죽일 수는 없었다.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라이넬은 내 명령 한 번이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라이넬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나를 죽일 수 없었다.
나는 황녀의 총애를 받는 몸이었으니까.
물론 그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라면 황녀의 분노를 받아내면서 까지 나를 죽일 능력은 있었겠지만 고작 자기가 피 토한 걸 본 것 가지고 그 정도의 부담을 가져가는 건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행위였다.
"네 입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돈을 쥐여주지. 네가 누군가에게 방금봤던 일을 말한다면 내가 준 돈의 열 배를 위약금으로 물어야 할거야."
전형적인 사모아 공작식 협상이었다.
초기 비용을 지불하여 입을 막고 만약 억지로 막은 입이 풀린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철저하게 받아내는 방식이었다.
"얼마나 주실 건데요?"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투자했던 뇌물의 절반을 회수할 수 있었다.
'개꿀!'
이미 알고 있던 정보를 숨기는 대가로 뇌물에 쓸 돈이 절반이 줄어들다니 얼마나 기쁜일이야.
이 돈은 철저하게 내 개인 자금으로 사용할 거다.
내가 번 돈이니까 내가 쓸 거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렇게 큰 돈을 세력 단위에서 쓰기 시작하면 다른 세력에게 자금의 흐름을 들킬 수 밖에 없고 뇌물을 쓰고도 돈이 이만큼 남는 것에 의문을 가진 이들에 의하여 내가 사모아 공작에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당장 쓸 일은 없지만 나중에 애들 장비나 사줘야지.
***
동부 왕국이 제국을 공격했다.
자기나라가 침략당한 아주 큰 사건이었지만 진심으로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각자 대비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감히 동부 왕국이 우리 제국을 침입하다니!"
물론 실제로 느끼는 감각과 겉으로 보여지는 쇼맨십은 다른 법이었다.
윗대가리 분들은 민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화가 난 척을 할 필요가 있었고, 이미 물밑에서 각자 어디로 갈지 다 결론이 났지만 회의를 하는 척을 하면서 각자의 명분을 세우고 황제의 이름으로 자리를 배정받았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위치에서 벌어졌고 전선도 작았던 북부반란과는 달리 동부는 전선도 멀고 거리도 멀었기 때문에 제국에 다같이 모여서 이동하는 막장짓은 안했다.
애초에 동부 왕국과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제국의 동부에 관련있는 자들뿐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미 자기 지역에 있는 군사를 끌고 가면 됐지 굳이 제도에서 출발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황실파는 똥줄 좀 타겠는데?'
북부 반란을 지방파 귀족들이 제압하면서 몇몇 지방파 세력이 미친듯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화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동부 왕국과의 전쟁또한 지방파 귀족들이 공을 가져가게 된다면 제국은 더욱 빨리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황제보다 강한 세력이 많은 제국이 존속될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자네가 큰 공을 세워줘야 하네."
그렇기에 황실파는 나를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동부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겉으로라도 제국에 충성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멀리 떨어져서 말로만 할 뿐 진짜로 믿을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반면 나는 제도에서 오랜 시간동안 지내며 황실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으니 그들의 입장에선 나만 믿고 나를 위해 투자할 수 밖에 없었다.
병사를 지원해 주면 티도 많이 나는데다가 기존 병사들이랑 섞여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유로 현물을 많이 받아왔다.
보급품으로 쓸 수 있는 장비들과 골드를 챙겼다.
황녀는 고작 돈밖에 지원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돈이 아니라 병사를 지원해 주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나한테 사과했지만 나한테는 그녀의 휘하에 있는 만명의 병사를 지원 받는 것 보다 1골드가 더 가치 있었다.
애초에 남의 병사가 1만명 정도 내 휘하에 들어온다는 건 명백하게 손해가 되는 일이었다.
"다들 모였나?"
임시로 만든 단산위에 올라가서 병사들을 쭉 훑어봤다.
천명이 살짝 안되는 병사들
짧은 시간이지만 제도를 이잡듯이 뒤져 겨우 만들어낸 천명의 병사였다.
이전에 라이트 형한테 받은 병장기들까지 입혀 놓으니 조폭출신들이긴 해도 제대로 된 병사티가 났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내 친구들이 있었다.
라이넬, 미네타, 시에린.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
그 뒤에는 핵심인력들이 있었다.
안나와 라일라등을 비롯한 우리 세력의 핵심 인력들.
그 뒤에는 아카데미에서 영입한 일반 인재들이 있었다.
이 많은 이들이 나를 따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