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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04화 (204/312)

〈 204화 〉 승전­2

* * *

상당히 먼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프레스티아였지만 그녀의 눈에 담긴 분노를 똑똑히 엿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분노의 원인을 짚어보자면 당연히 내 옆에 계신 황녀님 때문일 탓일 확률이 높았다.

황녀와 나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고 만약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면 나는 황녀의 옆에 앉아있었을 테니까.

프레스티아가 분노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자기는 쇠빠지게 전쟁을 치르고 왔는데 나란 놈은 황녀의 옆에 서 있으니 그만큼 기분나쁜 게 없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녀에게 동정을 빼앗긴 사람이었다.

그런 인간이 다른 여자 옆에 붙어있어?

지금 내가 있는 장소가 황실파들의 회의라던가, 연회같은 황녀의 옆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행사였다면 그녀도 분노가 덜했을 것이다.

불가항력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개선식에서 내가 황녀의 근처에 있을 필요는 절대 없었다.

그런데도 황녀의 옆에 꼭 붙어있다니, 배신감 쩔겠네.

"지금부터 논공행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프레스티아가 분노하든 말든 개선식은 계속 진행됐다.

개선식에서 그 공이 불릴 자격이 있는 자들 중 가장 낮은 공을 세운 자들부터 시작해 논공행상이 이루어 졌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프레스티아가 불리기 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는데 나는 그 동안 계속 그녀의따가운 눈빛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의 시선에 물리력이 있었다면 이미 몸에 구멍이 뚫렸을 정도의 강한 시선을 계속 받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프레스티아 헬링, 자네에게는 제국 남부에 있는 콜리오 영지를 하사하겠다!"

'역시 콜리오 영지구만.'

프레스티아는 아이작과의 전쟁에서 1위의 공적을 가져갔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플레이어가 개입했을 때 밖에 없는 데 나는 이번 전쟁에서 입닥치고 가만히 있었다.

늘 같은 전공을 가져가는 프레스티아다 보니 늘 비슷한 영지를 상으로 받아갔는데 늘 가져가는 영지 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영지가 콜리오 영지였다.

서부에도 좋은 땅이 많지만 그녀의 본가인 헬링 후작가가 옆에 있기 때문에 가까이 붙여 둘 수 없었고 동부에는 그녀의 전공에 맞는 좋은 땅은 이미 지배자가 확고한 편이라서 그녀에게 주어쥘 수 없었다.

결국 남부로 눈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데 프레스티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영지가 콜리오 영지였다.

넓기는 드럽게 넓고 나름 발전도도 괜찮다. 모든 발전도가 동쪽 끝에 몰려 있고 미 개척지가 많긴 하지만 원체 땅이 넓은 만큼 잠재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황실 입장에서도 프레스티아에게 이런땅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장 너무 좋은 땅을 하사해 버리면 프레스티아가 너무 빠르게 성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레스티아가 하사 받은 것은 비단 영지 뿐만이 아니었다.

기사단을 꾸릴 수 있는 권한과 일정 병력을 가지고 독립부대를 만들 수 있는 권한또한 하사받았다.

물론 다른 중앙파의 감시 때문에 몰래 사병을 키울 수 없는 제도와 달리 지방의 경우는 병사를 숨겨두기 편하기 때문에 독립부대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권한이긴 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걸려 개선식이 끝났다.

병사들은 하루동안 제도안에서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고, 중앙파 병사들과는 다른 진짜 병사들이 자신들의 윗대가리의 통제를 따르며 적당히 놀기 시작하자 들 뜬 분위기가 제도 전체를 뒤덮었다.

얼추 개선식이 끝났으니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 있나 싶었는데...

"잠깐 나 좀 보지."

프레스티아 한테 손목이 잡혀 버렸다.

내 옆에 라이넬이 호위로 있긴 했지만 프레스티아가 나를 죽이려고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니 라이넬의 호위를 만류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오랜만입니다. 헬링님."

"그래, 오랜만이군.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헬링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제 아랫도리를 놀리진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시 않으셔도 됍니다."

내가 먼저 성적인 이야기를 꺼낼줄은 몰랐던 걸까? 그녀의 공세가 잠깐 꺽여들어갔다.

"그건 당연한 거고, 나 없는 동안 뭘했지?"

"저희는 다른 세력입니다. 헬링님, 기밀을 그렇게 쉽게 알려 하시면 안되죠."

"다른 세력이라."

프레스티아가 나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너, 이제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네?"

"너는 황제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내 밑으로 들어오길 거부했지. 맞나?"

"저는 제국의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내 덤덤한 말에 프레스티아가 비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나도 그 말을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네 말을 믿을 수가 없더군. 너는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세력을 키우고 있어. 황제에게 충성한다는 놈은 너 같이 세력을 키우지 않아."

"황제님의 밑에도 제대로된 세력이."

"닥쳐."

프레스티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놓고 무릎을 굽혀 나와시선을 마주쳤다.

"너 같이 똑똑한 놈이 황제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리가 없어. 너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척 꿍꿍이를 피고 있는거야."

들켰구만.

그래도 끝까지 잡아때야겠지?

"아닙니다. 저는 황제님께..."

"그래, 인정할 생각이 없나보군...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내 눈을 직시하는 그녀의 눈빛은 사나웠다.

당장이라도 내 목을 잡아 뜯을 듯 어둡고 무서운 눈빛이었다.

"내가 남부에 영지를 얻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알지. 논공행상 과정 때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세력을 키울 것이다.이제 아카데미엔 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너랑 만날 수 있는 날도 줄어들 것이다. 너 같이 유능한 인재를 데려가기 위해선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야."

"죄송합니다."

내 어깨를 잡은 그녀의 손에 강한 압력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깨 뼈가 으스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압력이었지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저는 제 뜻이 있습니다. 헬링님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 잘난 뜻이 뭔데!"

그녀가 격하게 내 어깨를 잡아뜯었따.

팔에 피가 통하지 않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너를 지배하는 것.'

"제국을 다시 되살리는 것입니다."

"그깟제국이 뭐라고! 나를 포기한단 말인가!!"

그녀가 자신의 이마와 나의 이마를 마주댔다.

이마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녀의 눈빛은 물론이고 그녀의 격한 숨결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덜덜 떨며 땀을 흘리고 있는 프레스티아를 보고 생각한건 정말 어처구나 없는 것이었다.

'프레스티아, 생각보다 얼굴이 크구나.'

내 얼굴보다 1.3배는 큰 것 같았다.

당연했다.

그녀는 나보다 머리 3개 정도는 더 컸으니까.

난세가 삼국지를 본따서 만들어 진거라 그런 걸까?

이 세계의 무장들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컸다.

"그깟제국이라뇨. 이 제국은 제가 태어날..."

그녀가 내 어깨를 잡고 격하게 흔드는 바람에 내 말이 끊겨 버렸다

"그딴 말도 안되는 이유를 묻는 게 아니다."

프레스티아의 눈은 시뻘겠다.

그녀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프레스티아 입장에서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내가 황실에 충성을 바치고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짐작하고 있는 이상, 내가 그녀를 따라가지 않는 이유를 떠올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제국을 먹고 싶습니다."

"뭐?"

드디어 이유같은 이유를 말해서일까? 내 어깨에 가해지던 압력이 줄어들었다.

"모든 제국의 땅을 제 이름 아래에 하나로 통일하고 싶습니다."

"뭐?"

프레스티아도 당황을 하는 구나.

그래도 뭐, 뭐, 밖에 못 말할 정도로 망가질 줄은 몰랐는데?

"제국을 제 이름 아래에 하나로 통일시키고, 프레스티아님도 제 아래로 들이고 싶습니다."

그녀를 보고 처음, 프레스티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반 정도 기분파로 사용한 것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제 슬슬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지 않겠어?

"프레스티아님이 저를 지배하는 관계는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힘으로, 프레스티아님을 꺾어서 제 아래에 들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프레스티아님의 밑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이가 없군...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가?"

"될지 안될지는 해봐야 아는 거 아닙니까?"

프레스티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라면 이 정도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분노로 가득차 있던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온순해 졌고 입가에는 흥미를 가득 담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내가 너에게 패배했다고 여기면, 그 때는 너의 밑으로 들어가 주지. 하지만 네가 나에게 패배한다면."

"압니다. 제가 프레스티아님의 밑으로 들어가야죠."

그녀가 씩 웃으며 나를 풀어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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