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승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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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아이작의 군대는 성을 나와서 상대를 공격할 생각이 없었고 진압군도 성을 뚫고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아이작 같이 강력한 기사가 있는 성으로 공격해 가는 것은 부담이 큰 일이었다.
그런 명분을 대며 아이작을 공격하지 않았다.
서로 공격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기를 1주일, 진압군 쪽에서 반란군에게 사신을 보냈다.
너희가 더 이상 우리를 뚫을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은 잘 안다.
그러니 더 이상 노력하지 말고 순순히 포기해라.
너희가 지배한 성들에 대해 지배권을 인정해 줄테니 우리에게 명예를 넘기고 실리만 챙겨라.
라는 말을 아주 길게 늘려 쓴 문서였다.
"우리보고 물러나라는 말이군."
"정확히는 물러나는 척을 하라는 말이죠. 표면적으로는 저희가 패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희는 아직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힘이 남아있고, 언제든 반격의 기회를 노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 상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보고 물러나라 하는 지 알 수가 없군."
"더 이상 전쟁해 봤자 저희가 원래 목표로 했던 일들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상대는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저희가 버티는 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지만 결국 중앙파 귀족들에게 한 방 먹이겠다는 본 목표는 적들이 막아서고 있는 한 절대 불가능하니까요. 어차피 목표도 달성 못하는 거, 자기들은 명예를, 우리는 실리를 챙기면서 그만두자는 겁니다."
"이델라, 너의 생각은 어떻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나?"
이델라가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물러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공격한다고 해도 제도를 뚫는 것은 요원한 일일 뿐이고, 저희 병사가 워낙 강군이어서 지칠 일은 없겠지만 저희가 지배하고 있는 성들의 민심도 더수랄 필요가 있으니 말입니다."
"애초에 지금쯤 물러나려고 했구나?"
아이작이 이델라와 함께 지낸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읇는데 사람인 아이작이 그보다 못할리가 없었다.
이델라는 처음 부터 이쯤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적을 공격한 것이다.
어차피 중앙까지 도달하진 못할 테니 중앙 지역 중에서도 북쪽지역에 지배력을 남겨두고 북부를 완전히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버린 것이다.
애초부터 중앙을 지배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군.
아이작의 물음에 이델라는 작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 이쯤에서 그만 두지. 협상은 너에게 모두 위임하겠다. 우리 세력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 줄것이라 믿는다."
"네, 저만 믿어주세요 아이작님."
협상은 프리스티스의 참모와 이델라가 전담해서 진행했다.
일반적인 협상이라면 서로 원하는 바가 같아서 협상에 한세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프리스티스 쪽이 원하는 것은 북부의 적들을 물리쳤다는 명예고 아이작이 원하는 것은 실질적인 지배권인 실리였기 때문에 서로가 원하는 바를 빠르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결정난 조약은 다음과 같았다.
북부의 아이작은 감히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전에 지었던 모든 전공을 삭제하고 앞으로 지을 모든 전공을 삭제한다. 그 뿐만 아니라 절대로 귀족이 될 수 없다.
본래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킨 장군을 상대로는 당사자의 목 뿐만 아니라 3대를 멸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지만 황제에게 직접적인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중앙파 귀족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일으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주 목적이라는 이유로 정상참작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반란군에 대한 정상 참작이 제국의 지배자인 황제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프레스티스는 중앙파 귀족에게 막대한 뇌물을 지배했고 중앙파 귀족들은 황제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반란군의 죄를 낮출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아이작에 대한 처벌은 내려갔고 공식적인 문서는 진압군이 반란군을 완전히 제압한 것 처럼 진행됐다.
물론 음지에서 쓰여진 문서에는 아이작의 북부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인정해 주고 중아 부 중에서도 북부에 있는 일부 지역에 대해 일정 권한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문서가 쓰여져 있었긴 했지만 이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일반 백성들은 잘 알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중앙의 군대가 북부를 완전히 물리친 사건으로 기록 될것이다.
진압군은 명예를 얻었고 반란군은 실리를 얻었다.
진압군은 얻은 명예를 실리로 변환 할것이다.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를 비롯한 군주들의 명예는 뻥튀기 될 것이고 각자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있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북부의 세력이 강해지고 지방의세력이 힘을 얻는다.
난세가 시작되는 첫 단추가 끼워지게 된 것이다.
***
"내일 개선식이라는 데, 갈거야?"
"벌써 개선식인가?"
생각보다 개선식이 훨씬 빨리 찾아왔다.
난세에서 아이작이 난을 일으키고 제압당하는 데에 걸린 시간만 따지면 지금보다도 훨씬 빠르게 종식됐다.
이 양반이 뒤도 안 보고 제도로 무턱대고 돌진했거든.
뒤의 성에서 양면으로 공격해 오고 거의 완벽할 정도의 수성전을 펼치는 진압군에게 밀려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후퇴하고 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작의 강함이 크게 알려지긴 한다.
아이작 혼자서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 그리고 드러큰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라는 사실이 제국 전체에 알려지고 황제를 죽이려 한 반란군이기 때문에 숙청령이 내려졌지만 그 누구도 아이작의 목을 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이작의 위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전방의 소식이 들려오고, 긴박하게 전투가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로 걸린 시간은 난세가 더 짧다고 해도 체감으로 따지고 보면 난세가 짧게 느껴졌다.
아이작의 강함이 제도를 한번 휩쓸기도 했고 프레스티아의 선전도 제도를 휩쓸었지만 드라마틱한 수준의 정보가 공급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갈거야 말거야."
"안 갈거야."
제도에 퍼진 분위기로 보나 난세의 결과로 보나 가장 큰 전공을 새운 사람은 프레스티아로 선정 될 것이다.
가든이 다른 참모에 비해서 행동력이 무지막지하게 빠르거든.
아이작이 느린 후퇴 전략을 사용할 때 가장 먼저 따라 붙은 것도 프레스티아 세력이고 어차피 내려올 생각도 없는 아이작 세력 앞에서 껄쩍 댄 것만으로도 남하를 막았다는 명예를 얻기도 했고 아이작이 날 뛸 때 아이작을 막은 사람 중 한 명이 프레스티아였으니 아마 개선식에서 가장 앞에 서서 올 것이다. 뇌물을 많이 줬기 때문에 전공을 그대로 인정받을 것이고 남부든 어디든 간에 프레스티아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영지를 받고 그곳에서 세력을 키워나가겠지.
난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흐름이었다.
이델라가 아이작의 세력에 존재하게 되면서 반란군의 수장으로 현상수배가 걸려야 했을 아이작에게 현상수배가 걸리지 않았고 북부의 세력이 강해졌다.
그 와중에 다른 지방파 세력은 난세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전공을 인정 받을 테니 난세 본판 보다 더 빨리 난세가 찾아올 것은 자명했다.
'슬슬 흑마법사도 날 뛸 때가 왔는데 말이지.'
난장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플레아!"
"라이넬, 그렇게 안 뛰어도 네 목소리 커서 다 들리거든?"
"뛰어서 와서 말할 정도로 급한 일이라 그렇지."
"뭔데?"
"이번 개선식에서 플레아 네가 황녀님 옆에서 참여하라는데?"
개같은거.
내 얼굴이 흔치 않게 찌그러졌다.
***
개선식 당일.
저번 개선식에서 병사들이 한 번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병사들을 제도 안으로 들이는 데에 말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 때는 중앙파 귀족들의 병사가 주를 이루어서 난리를 피운 것이고 지금은 지방파 귀족들의 병사라는 점.
이미 시민들이 한 번 일어나서 난리를 피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개선식이 진행될 거라고 믿을 법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높은 전공을 새운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그런 개선식에서 나는 황녀의 옆옆옆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바로 옆에 붙어있으면 의심을 받는 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 앉혀 놨건만 황녀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꾸 나에게 다가오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프레스티아 헬링님 아닙니까."
"맞다. 그녀가 있었기에 아이작을 막을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그렇게 황녀의 말에 대꾸를 해주고 있으니 개선식이 시작됐다.
성에서 부터 황궁 앞까지 걸어온 개선식 행렬의 가장 앞에 서 있던 프레스티악가 황녀의 근처에 있는 나를 보고는 눈에 불을 태우며 나를 노려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