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진격3
* * *
1대 3이었다.
심지어 1은 남자였고 3은 신체 건장한 여성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이런일이 벌어졌다면 여자 세명이서 남자를 핍박하는 거냐면서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자 3명 쪽이 남자 한명의 기에 눌려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소드 익스퍼드 중에서도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이라면 소드마스터에 오른지 아직 얼마되지 않은 아이작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실제로 그게 가능한 것이 그녀들을 각자의 세력에서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 다 대일로 패배하는 가장 흔한 경우는 자신의 주 무장이 잘려 버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나를 두르고 검을 받아내고 마스터가 제대로 마나를 담아서 공격하면 익스퍼드의 검은 쪼개질 수 밖에 없으며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 앞에서 무기 없이 이길 수는 없으니 무기 다음으로 몸이 잘려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세력의 장이었다.
그녀들이 사용하는 모든 무기들은 아주 뛰어난 상급품이었다.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익스퍼트가 사용하는 그녀들의 무기를 깨 부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무기만 버텨준다면 세 명이서도 충분히 아이작을 견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스티아와 프리스티스는 서로 머리를 굴리면서 승산을 계산해 보고 있었지만 아이작은 그런 거 하지 않았다.
결국 붙어보고 나면 내가 이길지, 아니면 상대가 이길 지 알수 있지 않는가.
굳이 탐색전에 신경을 쓸 바에야 그 신경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 더 우선사항에 있는 일이었다.
챙!
아이작의 움직임이 프레스티아에게 막혔다.
아이작에 검에는 소드마스터만의 무기인 푸른색 오라가 감싸져 있었는 데 프레스티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 마나를 가득 담아서 막아내자 검은 물론이고 프레스티아의 몸도 썰리지 않고 막아낼 수 있었다.
물론 아이작이 힘을 조금 더 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검 째로 밀려서 결국 몸이 베이고 말겠지만 아이작의 상대는 프레스티아만이 아니었다.
"히끅!"
술에 취한 여자, 드러큰이 아이작을 공격했다.
그의 실력으로는 가볍게 흘릴 수 있는 일격이었지만 그 공격을 막기 위해선 프레스티아의 검에서 자신의 검을 때야만 했다.
스르르
아이작이 드러큰의 공격을 가볍게 흘러냈다.
그 상태 그대로 드러큰에게 역공을 가하면 그녀를 죽일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아이작은 그녀를 공격하지 못했다.
챙!
아이작의 검은 프리스티스의 검을 막아야만 했으니까.
세명의 군주는 서로 합을 맞춰 본적은 없었지만 굉장히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아이작을 견재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익스퍼트 중에서도 상급에 해당하는 존재가 3명이나 견재 해오니 아이작도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는 아이작의 고질적인 문제기도 했다.
아이작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막 도달한 나마흐나, 데안느였다면 훨씬 더 잘 대처하면서 그녀들을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들을 제대로된 검술을 배우며 자라왔고 비슷한 형식의 검술을 사용하는 적들에 대한 대비도 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아이작은 정식으로 검술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그의 검술은 자유로웠고, 스승 없이 혼자 성장했다.
아이작의 재능은 대단해서 스승없이 배운 검술로도 충분히 강했지만 순수하게 검술의 깊이로만 따지고 보면 아이작은 자신을 견재하는 세 여성 중 가장 실력이 낮은 이와 비교해도 될 정도의 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아이작의 지금까지 상대해 온 적들의 대부분이 아이작과 비슷한 유형의 검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형과 식에 얽매이지 않은 생존형 검술만 상대하다가 전혀 다른 전투 패턴을 지니고 있는 그녀들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제대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상성의 차이로 인해 아이작은 서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망할년들이."
아이작이 이를 까득하고 갈았다.
자신이 틀림 없이 이길 줄 알았다.
이델라의 말대로 이 년들을 살려주고 거래를 시작할지, 아니면 죽여버릴 지 즐거운 고민을 하던 와중이었다.
챙!
저 년들의 연계는 너무나 뛰어났다.
아이작이 제대로된 공격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고 끊임 없이 그를 몰아 붙였다.
그녀들의 공격으로 아이작을 죽일 수는 없겠지만 아이작또한 그녀들을 죽일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어 갔다.
그들의 싸움은 무려 15분간 진행되었다.
펑!
뒤에서 신호탄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을 불러들이는 이델라의 신호였다.
'내가, 물러나?'
아이작의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신을 막기 위해 3명의 사람이 붙었다.
그런데 그 사람 중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머리는 늘 차갑게 유지하셔야 합니다.
당장이라도 분노에 몸을 맞겨 검을 휘두르려는 그 때 이델라의 목소리가 아이작의 머리에 울렸다.
언제나 머리를 차갑게 유지하라. 그녀가 늘 하던 말이었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늘 같은 말을 하다보니 아이작에게도 세뇌가 될 정도로 강하게 남은 말이었다.
'그래, 오늘은 물러나 주지.'
다음에 하나하나 잡아서 죽여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자로고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는 말이 있었다.
방금전에 벌어진 일을 지금 복수할 필요는 없다.
아이작이 그녀들을 견제하며 천천히 후퇴했다.
그 스스로는 꼴 사납게 패배해서 도망가는 것이라 여겼지만 진압군 입장에선 아이작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제대로된 데뷔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들 진영에서 가장 강하다고 봐도 무방한 사람 3명이 동시에 달라 붙었는데도 아이작은 여유롭게 막아냈고 신호에 의해서 물러났다.
물론 제도로 돌아가면 아이작을 단 세 명의 익스퍼트로 막아냈다고 소문을 퍼뜨릴 것이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사실상 패배한 것과다름이 없었다.
"잘참으셨습니다."
"네가 하도 머리를 차갑게 하라고 해서, 겨우 멈췄지. 아마 네가 없었으면 저 년들 목 하나는 베고 돌아왔을 거야."
"아이작님은 분명히 적의 목을 밸 수 있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전쟁에서 적의 목을 베는 것은 능사가 아닙니다. 제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을 압도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아이작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델라가 그렇게 말하니 맞는 말이겠지.
"다음 전략은 무엇인가?"
"기사단을 이끌고 적의 일반 병력을 쓸어버리시면 됩니다. 저희는 이미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아이작님이 그토록 즐기시는 학살을 만끽하십쇼."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아이작이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아이작의 말은 거대한 체구와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흑색의 말이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위압감이 강했는지 일반 병사가 보면 실금을 저릴 정도였다. 전설속의 환수 바로 아랫등급 정도에 있는 아이작의 말은 혼자서 기사 하나를 상대 할 수 있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의 명마였다.
"나의 기사들이여. 검을 뽑아들어라! 중앙파 귀족들의 개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자!"
우아아아아!!
기사들도 눈이 있는 존재였다.
방금전에 자신의 주군이 적진으로 들어가 3명의 적을 무력화 시키고 돌아왔으니 그 만큼 사기가 올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아이작의 기사들이 빠르게 진격했다.
그들의 최 전선에는 아이작이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가든이 프레스티아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나를 시험하려 드는 거냐?"
"그저 주군의 생각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적들을 막지 않는다. 어차피 기사단을 막을 수 있는 건 기사단 밖에 없다. 우리가 움직인다고 해서 아이작을 막을 수는 없어. 그걸 다른 년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우리가 나서지 않을 명분은 충분하지. 아이작놈의 기세를 보면 전면에 있는 건 무엇이든 부술 것 같은데 그들과 싸워봤자 손해만 보지 않겠나."
프레스티아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이작이라는 강자와 싸우며 목숨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떠는 걸까?
아니다.
프레스티아는 그렇게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떠는 이유는 아이작의 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언젠가는 얻게 될 소드마스터의 강함.
그 강함에 매료되어 몸을 떨고 있던 것이다.
"곧 전쟁이 끝나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둘 중 하나 죽을 각오로 전쟁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굉장히 심심하게 끝날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