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진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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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아를 위시한 수많은 진압군들이 아이작이 점령하고 있는 성을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죽일 듯 노려보며 달려드는 병사들을 보고 아이작의 군대가 택한 전략은 느린 후퇴였다.
아이작의 군대는 수성을 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들의 참모인 이델라 조차 책으로 읽어서 수성의 기법을 알고 있을 뿐이지 제대로된 스승이 없어 시행착오에 대해 알지 못했고, 직접 수성을 경험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따라서 성 위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성이 아예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이 진짜 필요 없었다면 진작에 성을 버리고 야지에서 돌아다니면서 적을 괴롭혔겠지 거북이 처럼 성 안에만 숨어 있었겠는가.
성은 상대의 발을 묶어두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소수의 인원이 성안에 들어가 있으면 적들 입장에서는 무조건 성을 점령하면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 때문에 발이 묶기는 일이 발생한다.
아무리 인원이 적더라도 성은 성, 적들이 성을 제대로 점령하기 위해선 그만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고 그 동안 본대는 뒤쪽 성으로 후퇴하고 아이작을 따르는 기사들이 성을 공략하는 적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전략을 사용했다.
아이작의 전략은 해변의 모래를 앗아가는 파도와 같았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해변의 파도를 조금씩 자신의 품으로 가져간다.
적들을 천천히 줄이며 상대방의 보급로를 넓히며 상대에게 적당한 양의 전공을 넘겨준다.
아이작이 택한 전략은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아이작의 군대는 더 적은 병사를 소모해서 더 많은 상대의 병사를 소모시켰다.
간혹 아이작의 후방에 있는 성을 공격하려 드는 놈들도 있었지만 이델라가 미리 배치해 놓은 무기들을 사용해 주변 성에서 지원이 올 때 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작의 군대 전체가 단 5000명의 병사를 잃고 제도와 북부의 중간지점까지 후퇴할 때 까지 적의 병력 1만명을 깎아 먹었다.
이 중 대부분의 목을 아이작이 베어 냈으니 그의 무력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이 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아이작은 자신보다는 이델라의 전략에 더 감탄했다.
"대단하군."
아이작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대들은 강군이었다.
때때로 물렁한 군사들이 숨어있긴 했지만 자신의 군대를 죽일 듯 노려보며 달려오는 프리스티스의 군대는 어마어마한 강군이었다.
그런 군대를 상대로 10만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무식하게 돌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이작 스스로 소드마스터인데다가 약식으로나마 기사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작이 대단히 활약하며 불리함을 어느 정도 극복해 낼 수 있긴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전멸할 피해를 입고 상대에게도 전멸급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르다.
교환비로만 따지면 이델라도 1:2의 교환비고 아이작도 1:2의 교환비였지만 전자는 둘 모두의 패배였고 후자는 아이작의 승리였다.
이델라의 가치가 다시 한 번 체감되었다.
"더 이상 후퇴를 멈춘다고? 도대체 왜?"
"적들은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많이 지친 상태입니다. 저희가 느린 후퇴 전략을 채택하긴 했지만 이는 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 보다는 느리지만 일반적인 전투에서 성을 두고 버티는 것 보다는 월등히 빠른 속도죠. 적들은 아직 보급로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상태일겁니다. 적들에게도 뛰어난 참모들이 여럿 있으니 미리 구상해 놓은 데로 보급로를 만들고 있겠지만 아직 완전히 완성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반격의 시간이군."
"그렇습니다."
로브의 숨겨진 이델라의 연두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동안 피맛을 많이 못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한 바탕 피의 폭풍을 일으키고 오시지요."
"알았다."
아이작이 자신들의 기사를 챙겼다.
이전에 말했듯이 전장에서 기사가 일반 병사를 기습하는 행위는 어마어마한 불명예다.
대규모 회전에서도 기사단이 일반 병사를 쓸어버리면 욕을 얻어 먹는데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건 이루 말할 것 도 없었다.
프레스티아가 그들의 군대를 기습하고 게릴라 전을 벌일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이 반란군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패널티를 짊어졌다고도 볼 수 있었다.
프레스티아와는 다르게 그들은 반란군의 신분. 반란을 일으킨 주제에 비 숙녀적인 행동을 한다면 여론은 순식간에 나빠질 것이고 대의를 이루는 길이 더더욱 멀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작의 기사단은 적군의 정면으로 아주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당당한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프리스티스의 참모가 아이작을 바라보며 눈을 비볐을 정도였다.
"나, 아이작을 상대할 자 없느냐!"
그의 호통 소리가 적진 전체에 퍼졌다.
4만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모두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른 아이작은 말에서 내려 적군을 향해 걸어갔다.
"몇 명의 기사가 덤벼도 상관 없다! 나를 이겨낼 수 있다면 그냥 물러나 주지.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내 검은 너희 모두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아이작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벌써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그는 기사들 여럿 정도는 혼자서 상대할 수 있었고 적군 전체를 꺽을 자신도 있었다.
그의 당당한 말에 전공을 세우기 위해 중앙측으로 이동한 프레스티아의 수하 에프로트가 몸을 움찔 거리며 앞으로 향하려 했지만 가든이 온몸의 힘을 다해 에프로트를 꽉 잡아채 제지했다.
"지금 아이작에게 덤벼드는 건 멍청한 짓이에요."
"...쳇."
에프로트는 상당히 쉽게 나서는 것을 포기했다.
어쩌면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나, 슈렌 아이라가 상대해 주마!"
'슈렌 아이라?'
익숙한 이름이 프리스티스의 바로 옆에 있는 군대에서 튀워나왔다.
그녀가 아무리 프리스티스의 밑에 붙은 인물이라고 해도 그녀는 나름 한 세력을 이끄는 장이었다.
세력의 장 정도 되면 세력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일기토에 잘 참여하지 않는데, 문제는 상대가 아이작이었다.
적진의 총 사령관이니 이쪽에서도 나름 머리가 굵은 이를 보낼 필요가 있었고 최근에 프리스티스에게 붙어먹으려 하는 슈렌 아이라를 가장 먼저 내 보낸 것이다.
"너는 남자니 내가 초수를 양보하도록 하겠다."
"나에게 초수를 양보하겠다라, 웃기는 군. 그래, 네 목숨 잘 받아가도록하지."
상대가 아이작이 아니었다면 무슨 말을 하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작이 남자치고는 큰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자치고도 큰 키인 슈렌 아이라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고 몸에 다부진 근육이 자리 잡고 있긴 했지만 제국에서 제일이라 여기는 여자의 풍만스런 근육과는 거리가 있는 몸이었으니까.
"푸하 웃기는..."
슈렌 아이라의 말이 끊겼다.
아니.
슈렌 아이라의 몸이 잘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아이작을 비웃으며 웃고 있던 아이라의 몸이 아이작의 검에 의해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공중으로 뜬 아이라의 상체는 천천히 땅으로 떨어졌고 중심을 잃은 하체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나를 상대할자. 아무도 없는가."
아이작의 말에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방금전에 사람 하나를 자르는 미친 짓을 눈으로 목격했다.
상대는 소드마스터였다.
같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면 이겨낼 수 없었다.
"몇명이 와도 상관없다고 했다. 누가 나를 막겠는가."
아이작이 검을 들고 진압군 쪽으로 다가올 때 금발의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총 사령관이 직접 납셨군."
"내가 아니면 널 막을 사람이 없어 보여서 말이야."
그녀가 나오자 마자 프레스티아가 무조건 반사 적으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프리스티스 혼자서는 어차피 아이작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프리스티스는 자기가 죽을 길로 들어가는 여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당당히 나온 다는 것은 아이작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있다는 뜻이며 그렇다면 더더욱 그녀가 혼자 공격하게끔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공을 독차지 하게 해선 안된다.
그런 마음으로 프리스티스의 옆에 섰다.
"너, 프레스티아 헬링이지? 자매가 쌍으로 난리가 났군."
아이작이 씩 미소 지으며 둘을 올려다 봤다.
키는 작아도 그가 풍기는 강력한 기가 두 여성을 감돌았다.
"더 덤빌이가 없다면, 공격하겠다."
"제가 참여하게씁니다!"
멀리 떨어진 부대에서 새빨간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등장했다.
원래부터 얼굴이 빨간 건 아닌 듯 그녀의 몸에서는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는데 몸도 못 가누는 상태에서 검을 뽑는 걸 보니 영 믿음직 스럽지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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