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원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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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의 군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처음 중앙을 침공한 만명의 군사에 더해 10만의 군사가 아이작에게 새로 합류했다.
프레스티아가 그랬던 것 처럼 게릴라 전으로 병력을 깎아먹는 전술을 활용한 이들에게 전력이 좀 깎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10만명의 군세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반란을 진압하러 온 이들은 20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십개로 쪼개진 독립부대들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사상으로 뭉친 아이작의 군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진압군의 대장인 프리스티스의 역량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때, 그녀는 군수품들을 빼돌리고 있었다.
자신의 세력이 이용할 최소한의 군수품들은 모든 세력이 각자 가져왔지만 중앙쪽에서 지원해 주는 군수품의 양도 상당히 많았다.
병사들을 먹일 식량부터 시작해서 기사를 기사답게 만들어 줄 말들, 병장기, 마법사들이 사용할 마석과 마법품들, 수많은 군수품들이 군대에 모였고 이를 분배하는 것은 프리스티스의 역량이었다.
반란을 막고자 모인 이들이 모두 하나의 세력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정말 당연하게도 군수품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원래 지원해줘야 하는 규모의 반의 반토막으로 깎아서 보냈고 상대 세력이 항의 하면 고작 50%를 더 붙여서 줬다.
만약 그녀의 부하가 자신의 군대를 통치하는 상황에서 이런 장난질을 쳤다면 당장 극형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꿀리는 게 없었다.
자기는 중앙파에 상당 수준으로 로비를 해서 이 자리를 얻어냈고 로비를 한 만큼 전쟁에서 얻어내는 것도 있어야 했다.
게다가 지금 같이 싸우는 이들은 잠재젹인 적이 아닌가.
자기 뱃속도 채우고 경쟁자의 전공도 줄일 수 있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효율적인 전략이 없었다.
물론 그녀라고 모든 군수품들을 꼴깍한 건 아니었다.
중앙파 쪽에 로비를 많이 한 이들에게는 중앙파가 직접 제대로 지급하라고 언급했기에 장난질을 칠 수가 없었고 프리스티스에게 호의적인 세력에게까지 장난질을 쳤다가는 평판이 떨어질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장난을 칠 수도 없었다.
때문에 그녀가 가져갈 군수품은 전체 군수품의 50%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중앙파 귀족들이 전쟁에 나서면 군수품의 90%는 자기 주머니로 들어가는 걸 생각하면 프리스티스 입장에서는 아주 배가 아픈 일이었지.
그녀가 군수품을 독차지 하고 있었지만 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국은 이미 뇌물을 제대로 바치지 않으면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것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대부분의 군대들이 자기가 먹고 잘 수 있는 분량의 군수품들은 챙겨 왔기 때문에 군수품이 모자라서 허우적 되는 이는 없었다.
"후우..."
그녀가 긴 한숨을 내뱉자 검은색에 가까운 연기가 빠져나갔다.
주변에 서 있던 시종이 독해서 기침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독한 담배를 피우던 프리스티스는 그대로 고개를 꺾어 자신의 수하를 바라봤다.
"젤리가 우리 귀여운 동생한테 붙잡혔다고?"
"네, 전쟁 중에 자신을 노리려고 한 죄는 묻지 않겠다면서 막대한 금액의 보석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대가 별 볼일 없는 세력의 인물이었다면 보석금같은 거 주지 않고 그냥 뺏어오면 그만이었다.
내가 젤리를 시켜서 그를 암살하려 했는지 증명할 방법이 어딨어?
아무리 제대로된 장비를 들고 입증하려고 해도 그녀가 투자한 뇌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중앙은 그녀의 편을 들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자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아닌가.
그녀또한 자신 못지 않은 막대한 뇌물을 중앙에 바쳤으니 그녀가 젤리를 시켜 프레스티아의 목숨을 노렸다는 걸 입증하기는 쉬울 것이다.
프레스티아도 그걸 아니까 돈만 받고 젤리를 넘겨준다고 하는 건데...
"웃기고 자빠졌네. 내 말을 이행하지 못 하는 부하는 필요 없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겉으로 보면 자신의 수하가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내쳐 버리는 사나운 군주처럼 보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었다.
젤리는 어차피 킬러로 키운 인재다.
젤리가 아이작을 암살할 정도의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젤리가 맡을 의뢰는 프레스티아로 국한 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쓸 일도 없는 인재인데 그를 당장 구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전장이 끝나갈 때 쯤 공을 논의하면서 헐값에 받아와도 되고 중간에 틈을 노려서 물리적으로 빼내와도 됐다.
프레스티아가 젤리를 죽일 일은 없었다.
당장 금화로 바꾸지 못한다고 해도 젤리를 프리스티스 세력에 넘기는 것 만으로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까.
전쟁 끝날 때 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신경쓰고 있으라지.
그렇게 수하를 내 보낸 후 자신의 막사에서 시종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래도 흉포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지만 막사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는 그 성격이 더욱 난폭해 져서 하루밤 사이에 시종 하나가 죽어나가는 일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상처 투성이가 되어 시체가 된 시종을 처리한 뒤 막사밖으로 나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밤을 새 버린 그녀였지만 몸은 오히려 쌩쌩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일어났다."
그녀의 충직한 수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종이 두 번 울렸다.
프리스티스의 진지에서 종이 두 번 울렸다는 것은 외부의 손님이 찾아왔다는 의미, 평소라면 수하들에게 맡길 일이었겠지만 오늘 따라 기분이 쎄했다.
달궈진 몸을 선선하게 식혀주는 아침바람을 즐겁게 느껴야 했는 데 왠지 모르게 몸에서 땀이나고 피부가 따금거리는 등, 불길한 증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가보지."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면 이런 감각도 금방 사그러 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장서서 손님을 맡이하러 갔다.
프리스티스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녀의 눈에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귀여운 여동생의 가장 충직한 심복인 벨리아였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사령관님."
"그래, 아침 댓바람부터 여긴 무슨 일이지?"
"간밤에 저희 주군을 공격한 자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녀가 나무 상자 하나를 프리스티스에게 건냈다.
그 상자를 받아들고 안에서 흔들리는 미묘한 감각을 받은 순간 그녀는 상자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 상자를 열였다.
"헉..."
주변의 병사들이 놀라서 숨을 들이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감히 프레스티아 헬링님의 목숨을 노린 자의 수급입니다. 전장에서 지휘관을 공격하려고 한 이니 사령관님이 아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그자의 수급을 챙겨왔습니다."
"네가 나를 능멸하려 드는 구나."
프리스티스가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고 말했다.
상자의 안에는 젤리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목과 몸이 깔끔하게 분리되어 있는 상태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신의 수하가 남의 손에 목이 잘려서 왔다는 것에 프리스티스의 머리까지 분노가 꽉꽉 들어찼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저는 제 주군을 암살하려고 한자의 목을 베어 왔을 뿐입니다."
킬러라는 특수한 역할 때문에 젤리는 표면적으로 프리스티스의 부하 취급을 받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정체를 숨기고 다녔고, 그녀의 얼굴을 본 자는 모두 죽였기 때문에 그녀의 신분이 들키지도 않았는데 프레스티아는 어릴 때 부터 젤리의 옆에서 살아오다보니 젤리가 프리스티스의 부하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가 아끼는 수하의 목을 잘라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정식적으로 처벌할 길이 없었다.
젤리가 그녀의 수하라고 만천하에 밝히면 그동안 그녀가 했던 수많은 암살 혐의를 프리스티스가 쓰게 되는 것이고 이는 정치적으로 대단한 흠이 될테니까.
"주군, 참으셔야 합니다!"
프리스티스의 분노에 급히 일어난 그녀의 참모가 호통 치듯 말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참모라도 자신에게 큰 소리를 내 질렀으니 그의 뺨을 후려쳤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호통소리였다.
"그래, 이 수급은 내가 보관하고 있도록 하지. 프레스티아 헬링에게 몸 조리 잘하라고 전해주게."
"사령관님의 호의에 감사를 표합니다."
벨리아는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짓고 떠났다.
자신의 수하의 목을 베었으니 똑같이 벨리아의 목을 잘라 복수하고 싶었지만 젤리는 비공인 인원이었고 벨리아는 공인된 수하였다.
쾅!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닥을 강하게 걷어찼다.
폭탄 터지듯 강력한 소리가 나면서 땅이 터져나왔다.
"오늘의 치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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