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몸집 불리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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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모으기 힘든 제도에서 가장 쉽게 병사를 육성하는 방법은 조폭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암흑가에서 돌아다니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제도의 다른 세력의 눈을 쉽게 피할 수도 있고 나름 기초 체력도 있다.
제대로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긴 한데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군단장님이 할 거니까 상관 없지.
조폭들을 군사로 만드는 것도 생 난세에서는 걸리는 점이 많았다.
일단 플레아의 매력이 지금 나만큼 높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초기에는 반란이 많이 일어난다.
지금은 내가 매력 99라는 미친 아우라로 병사들을 제압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말 없이 잘 따랐지만 난세에서는 제대로 병사를 운용하기 전까지 크고 작은 반란만 5번을 넘게 겪어야했다.
남녀역전이라서 생기는 이득도 있었다.
조폭들 특징이 성격이 사납고 여성을 깔보는 것이 일상화된 인간들이기 때문에 가장 처음 고용한 내 기사 라이넬이랑 훈련대장으로 여자기사를 데려가면 여자가 무슨 우리를 가르치냐면서 반항도 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 여기는 남녀역전 세계다.
조폭들 입장에서도 같은 여성이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니 반항이 이전만큼 심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100명이라는 초기 병력을 키우는 것을 아무런 트러블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라일라는 이를 보고 몸집불리기라고 명명했는데 지금까지 고급인재들로만 이루어져 뼈대만 탄탄했던 내 세력을 일반적인 병사들을 채워넣음으로서 세력으로서의 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세력을 다루려면 몸 뿐만 아니라 땅의 역할을 할 신민들도 있어야 했지만 그걸 구하기 위해서 일단 몸을 만들고 있는거니까.
참고로 라일라는 개학을 한 이후에도 시에린의 집에 지내고 있다.
초반에는 시에린이 없는 집에서 혼자 있기 눈치 보이고 불편했다고 하는데 어차피 시에린네 가족들은 시에린보다 먼저 나가서 늦게 돌아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편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여담으로는 라일라는 우리 어머니의 이름과 같다.
아주 미세한 tmi지?
첫 100명의 병사를 제대로 키우고 400명의 병사를 추가로 받아들여 5인 1조로 만든 뒤 최종적으로는 1000명까지 몸집을 불릴 예정이다.
짧은 시간안에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전쟁에 나갈 때 까지는 1년이나 남아있다.
이 정도만 훈련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1주일쯤 지났나?
평화롭게 훈련하던 나에게 황녀의 호출이 왔다.
아무리 이빨이 빠졌다고 해도 황실은 황실, 게다가 내가 황실파였기 때문에 그 수장인 그녀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몸을 움직여서 황궁으로 이동하니 그녀가 멋진 기사복을 입고 나를 보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황녀님."
"그래, 내가 너를 불렀다."
황녀가 내 앞에서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았다.
"황녀님?"
"그대가 보기엔 이 옷이 어떻게 보이는가?"
"황녀님에 걸맞게 아주 멋진 옷입니다."
또 시작이구만.
황녀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고 황가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불리는 것도 맞지만 자신에게 가해진 부담탓인지 아니면 천성인지 쓸 데 없는 허세를 부리고 자신을 치장하기 좋아하는 성질이 있다.
이미 그녀의 몸에 딱맞는 맞춤 기사복이 여벌까지 준비된 채 있는 데 굳이 새 기사복을 장만하는 건 아무런 위엄도 없고 황실의 인력과 재화를 낭비하는 행위에 불과하것만 이렇게 새 옷을 뽑아서 나한테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참 잘 뽑았단 말이지. 그래서 이 옷을 디자인하고 만든 자에게 포상금을 내렸다."
"적합한 보상을 내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감언이설을 내뱉었다.
진실로 황실을 위하는 자라면 그녀에게 그런 사소한 일로 황실의 돈을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곳에 사용하라고 넌지시 말했지만 나는 황실의 존망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혹여나 나중에 누군가가 나보고 간신이라 말한다고 해도 할 말이 있었다.
일단 죽지 않아야 그녀의 옆에 붙어 있는 충신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이런 사사로운 것에서 그녀에게 마이너스한 감정을 쌓아두었다가 진짜 큰 일이 발생했을 때 충언을 내 뱉었다가 목이 잘리면 어떡하겠냐고.
앞으로 생길 내 정적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방법이겠지만 나마흐 같은 진성 황실파가 자네 요즘 왜 그러나? 로 시작되는 말을 하면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그러면 가슴을 퍽퍽치면서 황실이 망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하면서 탄식하며 나에게는 딱히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북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평소라면 기사복 하나 입은 걸 보여주고 끝냈을 양반이 자신이 지금까지 부린 모든 사치를 일일이 다 보여준 후에야 나를 풀어줬다.
마음속의 상실감을 자신의 사치를 나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풀려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군주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 치고는 굉장히 건전하게 상실감을 푼 거다.
난세의 군주 중에는 마음이 안 좋으면 이성을 강간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들도 많았으니까.
그렇게 그녀에게 이끌려서 한참 동안 사치의 결과물들을 보고 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내가 그녀의 명령때문에 하도 많이 황궁 안에 들락날락 거리다 보니 이젠 기사들도 내가 지나다니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오늘은 그녀가 기분이 좋았는 지 기사보고 나를 호위하라는 명령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황궁 안에서 자유의 몸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는데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는 법,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 위주로 돌아다녔다.
난세를 플레이 할 때는 황궁을 전장으로 삼아본 적이 거의 없어서 구조를 잘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곳을 내 눈에 담아두겠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작은 정자를 발견했는데 그곳에 누군가가 홀로 앉아있었다.
정자에 혼자 앉아있는 시점에서 이미 병사나 기사는 아니라는 게 확실하기 때문에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바로 뒤를 돌았다.
"누구신가요?"
그를 보자마자 바로 뒤돌았음에도 그는 나를 알아차린 듯 나를 향해 말했다.
황실의 정자에 홀로 나와있을 정도면 황족이 아니어도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일 확률이 높았다
바로 뒤로 돌아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플레아 아이데스라고 합니다."
"플레아 아이데스? 꼬마 영웅님이신가요?"
이젠 내 활약상도 거의 다 잊혀져 가는 시기인데 왜 꼬마영웅이라는 명칭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까?
상대가 높으신 분이신데 아니라고 잡아땔 수도 없었기 때문에 맞다고 대답했다.
"이리로 와주세요. 꼬마 영웅님의 얼굴을 보고 싶네요."
그의 곁으로 다가가니 정자의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이 보였다.
뽀얀 얼굴에 붉은 머리카락, 아직 앳된 티가 나는 귀여운 소년,
"가면, 벗어 주실 수 있어요?"
으로 위장하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가면을 벗으니 그의 볼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얘가 왜 여기서 나와...'
난세에서 주로 다뤄지는 황족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 누나들이다.
그런 그 중에서 황제의 계승권을 두고 싸우는 이들은 1황녀와 1황자, 2황녀 2황자 정도인데 1황자는 남녀역전이 일어나면서 사실상 힘을 잃었고 남녀역전에서는 1황녀,2황녀,3황녀, 그리고 2황자가 싸우는 중이었다.
다만 남녀역전이 일어나면서 세세한 설정에도 차이가 생긴 건지 1황녀가 가장 계승 서열이 높다.
아마 다른 자식들이 중앙파 귀족들이랑 가까워서 그렇겠지.
그런데 이렇게 메인으로 나오는 황족들을 제외한 다른 황족들도 있었는데 그게 내 눈앞에 계신 황자인 척 하고 있는 황녀님이시다.
난세 본판에서는 황녀로 등장하는 사람이 왜 황자로 변장하고 나타났는지는 추측조차 할 필요 없었다.
그녀가 황위를 계승할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기 위해서 남장을 시키고 남자로 자라게 하는 거지.
이렇게 자라다가 누구 하나가 황위를 이으면 그제서야 원래 성별로 돌아오고 다른 형제 밑에서 장군을 하든 아니면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여지든 할거다.
"같은 남자가 봐도 진짜 예쁘세요."
자기가 남자라고 떳떳히 주장하고 있는 그의 앞에서 너, 여자잖아.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만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렇게 만났다면 그녀와 안면을 틀어놓는게 좋았으니까.
그녀는 황실의 적통이었다.
황제와 황비가 낳은 막내였다.
그녀와 친해진다면 다른 모든 황족들이 힘을 잃었을 때 나에게 강력한 명분을 안겨다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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